2010. 11. 13. 14:26ㆍBook
정치포장 벗긴 ‘본디의 공자’ 만나보시라 | |
사마천 ‘사기’에 그려진 모습 뒤집어 “묵묵히 제 갈길 간 성실한 구도자” 자공·안회 등 제자들 언행도 재해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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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평전>(The Authentic Confucius)의 번역 출간 여부를 검토해 달라는 출판사 요청을 받고 역사학자 김기협이 두말없이 ‘해 보자’는 의견을 낸 것은 이 책 지은이가 청대 고증학 연구자 안핑친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계 미국인 안핑친(金安平)은 이 책 옮긴이 김기협이 “현존하는 중국사 연구자 가운데 단연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은 조너선 스펜스 미 예일대 석좌교수의 아내다. 실은 바로 이 사실, 즉 옮긴이가 “20여년 전부터 내 마음속의 스승”으로 여겨온 스펜스의 아내가 안핑친이라는 사실이 번역 수락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그는 밝혔다. 그때까지 그는 스펜스의 부인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천하의 스펜스 교수가 읽을 만한 책 쓸 줄 모르는 사람과 같이 살겠나? 읽을 만하지 못한 책을 아내가 내도록 놔두겠는가?”
안핑친이 보기에 공자(기원전 551~479년)는 원래 명성을 얻기 어려운 유형의 사람이었다. 삶의 어려움을 덜어주지도, 죽음의 두려움을 위로해주지도 못하는 자기 탐구와 자기 개혁에 평생을 바친, 말하자면 즉각적인 효용을 기대하는 대중들에겐 별 호소력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몰락 양반쯤에 해당하는 미천한 출신에다 제후국 귀족집안 창고지기와 가축관리인, 토목담당관 등을 거쳐 올라간 벼슬(노나라 대사구)도 신통찮았다. 그나마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도 않았으며, 혼란스런 정치상황을 피해 거의 쫓기다시피 외유길에 나섰을 때(기원전 497년) 그를 따른 제자도 몇 명 되지 않았다. 14년간(기원전 485년까지) 이 나라 저 나라(4개국)를 떠돈 끝에 제자들 주선으로 노나라로 되돌아와 5년 뒤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공자가 이룬 것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별 출세랄 것도 성공이랄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공자는 그의 사후 지금까지 2500여년간 중국 역사와 거의 등치될 정도의 명성과 권위를 누려왔다. ‘멸청흥한’(滅淸興漢)의 근대혁명 시기와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를 빼면, 아니 그 시기까지 포함해서 공자는 중국 안팎에서 “중국의 모든 현상이 그 한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인 양” ‘오해’받을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한때 잠시 이 땅에서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구호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지금 공자는 세계 54개국 156곳에 개설된 ‘공자학원’이 상징하듯 거대 중국의 등장과 함께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현실의 막대한 권위와 보잘것없는 세속적 삶의 족적이라는 엄청난 간극이 자아내는 이런 의문 또는 호기심의 근저에는 ‘진짜’ 공자에 대한 무지가 가로놓여 있다. 우리는 실상 공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안핑친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정보량으로만 따지면 우리는 공자에 대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유교경전을 비롯한 유가 쪽의 셀 수도 없는 전적들과 연구문헌들, 지금까지 중국 역사서술의 표준으로 남아 있는 사마천 <사기>의 공자전 등 숱한 전기류들. 안핑친은 특히 대중적 영향력이 큰 사마천의 공자전을 문제삼는다. 공자의 남다른 재능과 명예, 영광을 드러내는 활약상을 매끄럽게 꿰고 있는 사마천의 글은 실은 확실한 고증보다는 약간의 사실과 풍부한 상상력에 의존한 것이었다.
안핑친은 사마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논어> <춘추좌씨전> <장자> <맹자> <순자> 등의 전적들을 다시 꼼꼼히 살피고 1990년대에 새로 발견된 다량의 죽간(기원전 300년 무렵의 전국시대 후기)들 연구성과까지 참고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공자 평전>은 매끈한 사마천과는 달리 오히려 구멍투성이다. 숭숭 뚫린 구멍으로 드러난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래도 믿을 만하다고 보는 사실들을 토대로 문학적 해석을 가미해서 재구성한 바로 그 점이 이 깐깐한 고증학 연구자 버전 공자 일대기의 장점이다.
책은 공자가 54살 나이에 아직도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은 이유로 노나라를 떠나 14년간의 주유 끝에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다. 자공, 안회, 자로 등 그의 주요 제자들 언행도 정치사회적 배경과 함께 재해석한다. 끝에 공자와 유교에 대한 상반된 이미지와 유파를 낳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두 후계자, 맹자와 순자를 분석하는 장을 따로 붙였다. ‘역성혁명’ 등과 함께 진보적 이미지와 곧잘 엮이는 맹자는 실은 주류가 환영해마지 않았던 보수에 가깝고, 한때 공자 사당에서도 쫓겨났고 절대왕정의 옹호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성악설’의 순자야말로 진짜 공자에 더 가깝다는 지은이의 시각이 흥미롭다. 공자를 ‘보수’라는 고정이미지에 가두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안핑친의 책은 그런 기성관념의 공자 이미지를 보기좋게 해체해버린다. 그렇다고 공자를 진보의 투사쯤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진짜 공자는 명망가나 달변가를 누구보다 싫어한, 묵묵히 제 갈 길을 간 진지하고 성실한 구도자, 삶이 곧 가르침이었던 인생의 교사상에 가깝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기사등록 : 2010-11-12 오후 08:54: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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