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2. 14:51ㆍBook
‘신대륙 발견사’를 뒤엎은 고지도 한장 | |
15C 초 그려진 ‘천하제번식공도’ 5대륙·남북극·그린란드 선명히 콜럼버스 ‘대발견’보다 74년 앞서 “투영도법 중국선 11C 이전 존재” 색다른 분석…주관적 추론 한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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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의 비밀
류강 지음·이재훈 옮김/글항아리·4만5000원
고지도에 남다른 애착을 지닌 수집가요 지도역사학 연구자인 베이징대 법학과 출신 변호사 류강. 2001년 상하이로 출장간 그는 둥타이루(동대로)의 골동품 가게에서 ‘천하전여총도’(天下全與總圖)라는 이름이 적힌 옛 지도 하나를 입수했다. “건륭 계미년 중추월에 명나라 영락 16년에 간행된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를 모사했습니다”, “신(臣), 막역동이 그렸습니다”라는 주석이 붙은 이 지도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줄 류강은 그때까진 몰랐다.
주석 내용은 그 지도가 1418년에 그려진 ‘천하제번식공도’를 1763년에 막역동이란 신하가 그대로 베껴 그린 것(모사)이라는 걸 얘기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지도엔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모든 대륙과 대양, 심지어 남극과 북극, 그린란드까지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1418년이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1492년보다 74년이나 앞서고, 포르투갈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처음으로 지나간 1487년보다도 근 70년이나 이르다. 3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유럽 출발지로 되돌아온 마젤란 선단이 항해를 시작한 것은 1519년이었다. 따라서 만일 주석 내용이 사실이라면 역사책에서 배워 온 서양의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이란 완전 허구가 아닌가? 중국인들은 그 훨씬 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다!
혹시 주석 내용과는 달리 지도가 지리상 발견 이후에 전해진 여러 새로운 사실들을 짜깁기해 후대에 날조한 가짜가 아닐까? 류강은 우선 종이의 변색, 냄새, 바싹거리는 정도, 사용된 물감, 글씨체와 서법 등을 일차적으로 살핀 뒤 적어도 그 지도의 모사 시기만큼은 주석 내용과 일치한다는 확신을 갖고 본격적인 진위 확인작업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양의 ‘지리상의 발견’ 이전에 중국인들이 천하제번식공도에 그려진 지리적 사실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1405년 명 영락제의 명으로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원정을 떠난 환관 정화가 세계를 일주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게 됐다고 류강은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걸 누가 믿어주겠는가? 머뭇거리던 이 아마추어 연구자를 바깥세상으로 끌어낸 사람은 영국 해군장교 출신의 또 한 사람의 아마추어 역사연구자 개빈 멘지스였다. 멘지스는 1412년에 제작된 고지도에 그려진 대서양상의 섬 4개를 실마리 삼아 120여국 900여곳의 도서관과 박물관 등을 찾아헤맨 끝에 정화가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추론을 끌어냈고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조행복 옮김, 사계절, 2004)에 그 내용을 담았다. 류강은 자신이 산 고지도 사진을 멘지스에게 보냈고 멘지스는 베이징까지 찾아와 모사본을 직접 살펴보고 흥분하더니 세상에 공개하자고 했다. 2006년 1월 천하제번식공도가 공개됐고 중국 안팎에서 큰 반향이 일었다. 멘지스의 추론으로는, 1433년까지 28년 동안 모두 7차례에 걸쳐 ‘대항해’를 떠난 정화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1421~1423년 무렵. 그렇다면 정화 역시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아니다. 1418년에 그려진 천하제번식공도는 정화의 발견 이전에 이미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셈이며, 정화는 그 사실을 알고 원정을 떠난 것이다.
<고지도의 비밀>은 이와 같은 추론이 직관이나 빈약한 몇가지 사실이 아니라 방대한 문헌과 풍부한 사실들을 토대로 한 나름의 치밀한 고증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발트제뮐러의 세계지도(1507), 마르텔루스의 지도(1489), 비르가의 지도(1415), 마우로의 지도(1459), 14~15세기의 포르톨라노 해도, 대명혼일도(1389),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 조선사람 김사형과 이무의 공동작품. 일본 류코쿠대 소장), 황여전람도(1717), 천하전도(1722), 피리 레이스의 지도(1513), 빈란드의 지도(1440), 도팽 지도(1545),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1602) 등의 문헌을 비교 분석하고 당시의 시대배경, 과학 및 종교 상황 등을 살핀다.
1971년 베이징 북서쪽의 한 고성 터에서 1093년에 조성된 장광정이란 사람의 무덤이 발견됐다. 무덤 천정에는 별자리 그림(성상도)과 함께 세계지도의 윤곽이 발견됐다. 그것은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윤곽이 선명한 1722년 제작 천하전도와 매우 비슷하다고 류강은 주장한다.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기본골격은 문제의 천하제번식공도와도 분명 닮았다. 그렇다면 이미 11세기에 천하제번식공도의 모본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천하제번식공도 같은 세계지도를 그리려면 세계가 평면이 아니라 공 모양이라는 것, 공 모양의 표면을 평면에 옮기는 데 필요한 투영도법과 고도의 수학적 연산, 또 세계 각 대륙의 실제 지리상황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발견 및 발전은 유럽에서 이뤄진 것임을 천하가 알고 있고 중국은 17세기에야 서양의 지도제작기술을 받아들였는데 무슨 황당한 얘기냐? 중국엔 11세기 이전, 심지어 기원전부터 이미 투영도법이 존재했다고 보는 류강은 바로 그런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어버린다. 지도제작 기술과 그 토대가 된 과학은 서양에서 중국으로 전수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서양으로 전수된 동학서진(東學西進)이었다고.
류강은 지도학뿐만 아니라 화약, 나침반, 종이, 인쇄술을 포함한 중국의 자연과학적 성취는, 예컨대 장생불사의 선약 제조를 향한 열망이 화약의 발명을 낳았듯이, 자연의 이법(도)을 추구한 도교 철학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본다. 원·명 이후 중국의 자연과학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통치 편의를 위해 자연 이법을 추구하는 ‘외단술’보다 내면 추구에 집착하는 ‘내단술’ 위주로 도교의 교리를 유도하면서 충효 중심의 유교를 진작시킨 통치자들 정책 탓이라는 류강의 분석은 흥미롭다.
<고지도의 비밀>은 멘지스의 책, 지도를 통해 유럽 이전에 초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찰스 햅굿의 주장을 담은 <고대 해양왕의 지도>(김병화 옮김, 김영사, 2005) 등 서양 기원론에 반기를 든 최근 비주류 지도학 연구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류강이나 멘지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확고한 증거는 없으며, 적어도 아직까지는 주관이 많이 개입된 추론일 뿐이라는 점이다. 아메리카나 오세아니아나 아프리카를 그토록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면 바로 인근의 고려·조선이나 일본도 그렇게 엉뚱하게 그리진 않았을 텐데,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해제를 쓴 정인철 부산대 교수(지리교육과)는 류강의 주장의 의미와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입론과정에 다양하게 동원되는 풍성한 정보와 지식, 상상력, 논법 등을 높이 평가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기사등록 : 2011-01-07 오후 08:28: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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