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기획 중국의 길-실험과 도전] 2부 ② 신세대 농민공

2011. 1. 18. 12:07discourse & issue

 

 

저항 눈뜬 젊은 농민공, 변화의 바람이 분다
[2011 기획 중국의 길-실험과 도전] 2부 ② 신세대 농민공
80년대 이후 출생 신세대가 농민공의 60% 차지
열악한 노동현실에 파업·정부에 불만 표출 나서
임금인상 됐어도 변한 게 없어…직선노조 요구도
한겨레 박민희 기자기자블로그

 

»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광둥성 선전시 외곽의 공장지대에서 지난달 3일 점심시간을 맞은 젊은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처음 선전의 문구공장에 와서 일을 시작했을 땐 월급도 고향보다 많고 숙소와 밥도 주는 게 큰 은혜라고 생각해 기절할 것처럼 힘들었지만 열심히 일만 했죠.”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 외곽의 공단지대, ‘노동자 구함’이라는 공고가 곳곳에 붙어 있는 낡은 공장 건물들을 지나면서 덩핑(가명·22)은 옛이야기를 꺼냈다. 중국 서북지역 가난한 농촌 출신인 덩핑은 오빠와 동생의 학비를 벌려고 중학교도 다 마치지 못하고 농민공이 됐다. 2004년 선전에 온 16살 소녀는 밤 10~11시까지 잔업을 했다. 회사는 잔업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밤에는 출근카드를 기계에 입력하지 못하게 했다. 노동자들이 세수할 때 물을 많이 쓰는지 감시하고 있다가 벌금도 물렸다. 한달에 하루를 쉬고 700위안(약 12만원)을 받았다. 고향에서 받던 한달 200위안보다는 훨씬 큰 돈이었다.

공부에 목말랐던 소녀는 공장 주변의 노동자 지원단체를 알게 되고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현실을 다시 보게 됐다. 덩핑은 이제 노동자 지원단체 활동가로 산재 피해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뒤 비로소 나를 위해 노동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덩핑과 같은 신세대 농민공들이 ‘세계의 공장’ 중국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80허우(80後·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 90허우 세대의 노동자들은 부모 세대 노동자들보다 많은 교육을 받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노동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곧바로 새 일자리를 찾아나선다. 이들 세대는 이미 중국 전체 농민공의 60%를 넘어섰다.

 

노동력 부족 현상은 이들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하고 있다. 1979년부터 실시된 ‘한자녀 정책’의 결과 젊은 노동력이 줄면서 주장(주강)삼각주(선전을 비롯한 광둥성 일대의 수출산업지대)의 노동력 부족은 극심해지고 있다. 광둥성 정부는 주장삼각주 공장지대에서 90만명의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집계했다. 의류, 완구, 신발 등 노동집약산업 공장들은 노동자를 못 구하거나 임금 상승을 견디지 못해 도산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선전대학 노동법·사회보장법연구소장인 자이위쥐안 교수는 “과거에는 실업률 등을 우려해 기업을 퇴출시키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저임금에만 의존하는 산업, 오염 산업, 저기술 산업은 퇴출시키는 것이 중국 경제에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선전과 광저우, 포산, 둥관 등 중국의 경제 기적이 시작된 주장삼각주 일대에 끝없이 늘어선 공장들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온갖 값싼 제품을 공급하며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그 속에서 호구(후커우) 제도에 묶인 농민들은 도시에 와서 일해도 영원히 ‘농민공’으로 불리며, 도시 주민의 복지혜택에서 소외되고 가장 낮은 임금을 받았다. 1세대 농민공들은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는 게 희망이었기 때문에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불평등에 도전하지 않았다. 이들의 자녀 신세대 농민공들은 더이상 이런 대우를 참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14~17살에 고향을 떠나 돈을 벌려고 몸부림쳐온 젊은 노동자들에게 기대와 현실의 거리는 멀다. 선전시 외곽 룽강의 전자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장리리(25)는 “15살 때부터 농민공으로 일했는데 모은 돈이 거의 없다. 지금보다 1000위안만 월급을 더 받으면 기숙사가 아닌 방을 얻어 고향에 두고 온 한살 된 아이를 데려와 함께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지난해 혼다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과 폭스콘 연쇄자살 사태로 농민공들의 열악한 현실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중국 정부가 20% 이상 올린 최저임금도 노동자들에겐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완구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둥샹링(20)은 “이전에는 매일 4시간씩 잔업을 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이틀만 잔업을 할 수 있다. 회사는 짧은 시간에 이전과 같은 작업량을 끝내도록 독촉하고, 결국 월급은 월 2000위안으로 이전과 비슷하다”고 했다. 식료품 가격은 20~30%씩 급등하고 있다.


» 2011 기획 중국의 길

지난달 초 선전에서 만난 신세대 노동자들은 불만과 분노, 정부에 대한 불신을 거침없이 털어놨다. 하지만 출구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공회(노조)는 소용이 없다. 공회 대표들은 사장과 친한 관리직이고, 노동자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우리가 직접 대표를 뽑는 노조가 있으면 좋겠다.” “정부는 항상 기업가들 편만 든다. 내륙으로 옮겨가는 유명 기업들은 토지, 세금 면제 등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다.” 고압적인 작업 통제에 대한 불만이나 임금 체불에 항의해 고의적으로 작업 속도를 늦추며 태업을 하거나, 잡혀갈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점거를 벌이거나 파업에 동참해 봤다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을 연구해온 아포 룽 아시아모니터리소스센터(AMRC) 전 사무국장은 “중국 노동자들의 현재 상황은 한국의 1970년대와 비슷하다”며 “신세대 농민공들은 권리를 자각하고 용감해지고 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중국 당국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경제적으로는 양보하지만, 독립노조와 시민단체 역할 등 정치적 부분에서는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며 “농민공들의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나서 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전 홍콩/글·사진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10년 안 불평등 구조 안바뀌면 공산당 통제 힘들것”
[인터뷰] 류카이밍 선전현대사회관찰연구소 소장
한겨레 박민희 기자기자블로그
“신세대 농민공들이 10년 뒤 중국 사회의 주류가 되면, 공산당은 변할 수밖에 없다.”

 

류카이밍(사진) 선전현대사회관찰연구소 소장은 중국 신세대 노동자들의 변화가 중국을 훨씬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면서 평등한 사회로 바꾸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노동문제 연구자인 그는 2001년 민간 연구기관인 현대사회관찰연구소를 설립해 중국의 노동 현실을 연구해 왔다.

지난해 중국을 휩쓴 파업 물결에 대해 그는 “수십만명의 파업이 벌어진다면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혼다자동차 파업처럼 수백명의 파업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아직 변화의 시기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 수준이 높고 자존심 강하고 도시인의 정체성을 가진,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노동자들은 우리 세대와 달리 공산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이들이 자녀들을 키우고 교육문제를 고민할 10년 뒤에도 지금 같은 저임금과 불평등한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농민공들은 불만을 적극 표현할 것이고 공산당은 통제모델을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사회 내부의 모순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3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첫째 체제 붕괴, 둘째는 혼란을 막기 위한 마오쩌둥 시대 폐쇄체제 회귀, 셋째는 공산당이 민중의 압력에 적응해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 방향으로 평화적, 점진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다. 그는 “점진적 변화의 가능성이 50% 이상으로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며 “역사를 보면 공산당은 유연하게 변화해 왔고 시진핑 세대는 장쩌민 세대의 지도자들과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류 소장은 중국이 심각한 불평등, 열악한 노동조건 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사회 제도와 관계가 깊다며, 독립적인 노조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의 공회(노조)는 정부의 지배를 받는 정부 조직이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없다. 정부가 독립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 사회 모순이 점점 심해지고, 집단행동, 파업이 계속 늘 것이다. 독립노조를 허용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다.”

 

아울러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노동집약적인 저기술 수출산업은 민간에 개방했지만, 언론·교육·문화·정치를 비롯한 많은 부분을 정부가 강력하게 통제해온 것이 오늘날 단순 노동력은 부족한데 대학 졸업생들은 취업난을 겪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저임금 모델이 종말을 맞고 있는 ‘세계의 공장’의 미래에 대해서는 “노동자들의 대우를 개선해주고도 버틸 수 있는 공장은 살아남고, 저임금에만 의존하는 공장들은 문닫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중국에는 공장이 너무 많다. 광둥성 둥관의 한 시골마을에 직물공장이 3000곳이 넘는다.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선전/글·사진 박민희 특파원

 

기사등록 : 2011-01-18 오전 08:24:24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