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 14:41ㆍdiscourse & issue
‘무서운 차이나’ ‘못믿을 왕서방’…속내 복잡한 이중잣대 | |
학원에선 ‘중국어 열풍’ 시장에선 ‘중국산 말고…’ 긍정·부정적 인식 혼재 “중 성장에 반발·공포 섞여 역지사지 자세 필요” 지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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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길 실험과 도전] 3부 : 중국굴기와 한국
③우리안의 중국 한국인 머릿속 중국
새벽 바람이 아직은 차가운 지난 22일 오전 6시30분께, 서울 종로구의 한 중국어학원에서 만난 이수일(41)씨는 ‘중국어 말하기 입문 수업’ 준비에 바빴다. 20년 넘게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중국지사 지원을 위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중국이 성장하는 나라여서 (지사 근무가)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중국은 여전히 기대감을 갖게 하는 나라인 듯했다. 그는 “우리 어렸을 땐 중국이라고 하면 ‘빨간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젠 갑부가 우리보다 수십배는 많을 정도로 힘도 있고 자원도 많고, 무엇보다 국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서 근무하는 홍아무개(34)씨는 야근을 마치고 학원을 찾는다. 홍씨는 “호텔에 취업하기 전에 영어는 기본이고 일본어도 자연스럽게 배우는데, 최근엔 중국 관광객이 늘면서 중국어가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씨와는 좀 달랐다. 홍씨는 “중국이 좋아서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아니며, 호텔 같은 공공장소에서 매너가 없는 중국인들을 보면 진짜 대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성장하는 중국 경제의 여파를 몸으로 느끼는 직장인들의 복잡한 속내와 달리, 생활에서 ‘중국’을 접하는 이들의 불신은 생각보다 깊었다. ‘중국산’ 제품과 ‘중국’이란 나라의 이미지가 뒤섞인 탓이다. 지난 18일 서울 도봉구 창동시장에서 만난 김은혜(51)씨는 “식재료에 방부제를 많이 뿌리거나 이상한 것을 섞는다는 보도가 자주 나와 중국산은 절대로 구입하지 않는다”며 “중국은 지저분하고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인 것 같아 쉽게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건너편 신창시장에서 영남상회를 운영하는 김정년(69)씨도 “손님들이 중국산인지 아닌지를 자꾸 물어 되도록 국산 야채를 구해 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한 이런 이중적 인식의 바탕에는 ‘역사적으로 내면화된 두려움’이 있다고 분석했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중국문화)는 “우리 사회엔 역사적으로 우리가 중국보다 작고 약한 나라였다는 내면화된 공포가 늘 잠재돼 있었다”며 “현대에 들어 경제적·문화적(한류) 우월성으로 극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급격한 중국의 성장에 반발과 공포가 뒤섞이며 이중성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인희 대진대 교수(중국학)도 “오랜기간 강대국인 중국의 주변국으로 존재해온 탓에,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모화’(慕華)를 통해 중국을 모방하거나 반중국 정서를 통해 중국을 비하하는 두 갈래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이런 이중적인 인식이 중국에 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이해를 방해할 뿐 아니라, 중국의 반한감정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중국정치경제학)는 “중국에 대한 이중성은 역사적 맥락이 있긴 하지만, 다른 문화와 약자를 존중하는 데 인색한 한국인의 포용력 부재 탓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강 교수는 “천안함 사태 때처럼 중국이 우리편을 들지 않는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왜 중국이 저런 판단을 내렸는지 등을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경 이유진 기자 salmat@hani.co.kr |
질서·배려없어 비호감 2배 ↑ | |
우월의식은 많이 약해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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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지에서 오래 머물며 중국을 경험한 한국인들은 중국을 어떻게 볼까?
민귀식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가 2008년 20~40대 중국 장기체류자 1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중국에 가기 전에 15.97%에 불과했던 ‘비호감’이 다녀온 뒤엔 오히려 29.97%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보다 우리가 우월하다고 느끼고 있는 이유를 보면, ‘시민의식’(56.25%)을 꼽는 이들이 ‘경제적 요인’(20.83%)을 꼽는 이들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설문 대상 가운데 37.5%는 ‘중국에 대한 우월의식이 약화됐다’고 답했고, ‘열등의식으로 바뀌었다’고 답한 이들도 13.88%나 됐다.
지난해부터 물류회사의 중국지사에 근무하고 있는 전아무개(34)씨는 “생각보다 중국에서 사는 게 나쁘지는 않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 다르게 교통이나 흡연 등에서 질서나 배려가 없는 것 같아 2세가 태어나기 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파견을 지원해 2007년부터 4년 동안 중국에서 지냈던 통신회사 직원 박아무개(42)씨는 “변화가 굉장히 급하게 진행돼 ‘와 벌써, 이렇게’ 하는 감탄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2001년부터 학부·석사 과정을 중국에서 마친 신연숙(32·고려대 박사과정)씨는 중국에 대한 인상이 바뀐 사례다. 신씨는 “처음엔 치안이나 위생 문제 등에 적응이 안 됐지만, 오래 지내다보니 부지런한 모습과 개방적인 분위기 등 긍정적 인식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민 연구교수는 “부정확한 정보나 감정적인 대응으로 생긴 ‘미개한 나라’라는 이미지에 갑작스런 경제 성장이 겹치면서 우리 사회가 중국무시론과 중국위협론의 양 극단을 오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중국의 변화를 체험한 이들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생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민경 이유진 기자 |
중국인 유학생 40% “반한감정” | |
편견탓 한국인 중국 잘 몰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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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한국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 8만3842명 가운데 5만7783명(68.9%)가 중국유학생이다. 단기간 한국에 머물렀다 돌아가는데다, 인터넷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세대라는 점에서 중국유학생들은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창’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왔다가 유학 관련 체계의 부실함과 한국사회의 편견 때문에 ‘반한정서’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인문사회연구소의 ‘한·중 양국민간 우호정서 저해원인 연구’를 보면, 중국유학생 12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의 39.7%가 ‘반한정서가 있다’고 답했다. 이 연구에서 유학생들은 반한감정의 갖게 된 이유로 ‘한국언론의 왜곡보도’, ‘중국인 차별·무시’, ‘역사인식의 차이’, ‘미국·일본 선호’ 등을 꼽았다.
특히 이들은 중국이 ‘못사는 나라’라는 편견이 담긴 질문을 가장 아픈 상처로 꼽았다. 2004년 한국에 유학을 왔다는 원푸밍(29)은 “한국도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좋은 곳만은 아니었다”며 “한국사람들, 특히 아저씨들은 ‘집에 텔레비전 없지?’라고 많이 물어서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길림성에서 태어난 재중동포 유설미(27·고려대 석사과정)씨는 “텔레비전에서는 중국에 대해 안 좋은 것만 보여주고, 그래서 중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 때문에 요즘 한국에 다녀온 중국사람들이 실망하는 경우가 많고 중국인들 중에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을 더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구자억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기관평가연구센터 소장은 “한국에 있는 중국유학생들은 자기 의사 표현 욕구가 강하고, 이를 인터넷 등에서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는 세대”라며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이 반한정서로 이어질 수 있고, 이들의 경험이 곧 중국의 한국인식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김민경 박태우 기자 |
한겨레 신문 2011년 3월 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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