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8. 12:32ㆍBook
‘테크늄’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
등록 : 20110603 20:04 | 수정 : 20110603 22:59 |
|
40억년간 지구 기술발전 탐구
진화 이끈 ‘숨은손’ 구실 확인 반면 인간통제할 가능성 경고 결함 극복할 대처법 선택 권해
* 테크늄 : 세계적이며 상호연결된 기술계
<기술의 충격>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 첫 장 첫 구절이다. <기술의 충격> 지은이는 명시적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리에 ‘테크늄’이란 말을 넣고 싶어 한다.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그가 만든 새로운 단어 ‘테크늄’(technium)이 무엇인가를 책 전체를 통해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테크늄은 ‘세계적이며 대규모로 상호 연결된 기술계’(system of technology)를 뜻한다는 말이라고 우선 넘어가자.
지은이 케빈 켈리는 과학, 기술, 문화 전문잡지인 <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 중 한 명으로 처음 7년 동안 편집장을 맡았다. <뉴욕 타임스>, <사이언스>, <타임>,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글을 발표했으며, 네트워크에 기반한 사회와 문화를 예리하게 분석한 글들로 <뉴욕 타임스>로부터 ‘위대한 사상가’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기술의 충격>은 그의 세번째 책으로,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발전 양상을 훑어 내려가며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태초에 테크늄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자못 불경스런 주장을 하는 지은이 켈리는 젊은 시절 대학 중퇴 뒤 8년 동안 싸구려 운동화에 낡은 청바지 차림으로 아시아 오지를 여행했다. 미국으로 돌아와 값싼 자전거 한 대를 사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8000㎞를 세월아 네월아 가로질렀다. 그리고 뉴욕 북부 벽촌에 오두막을 짓고 침낭 하나 더 추가해 폭탄 테러리스트 ‘유나바머’처럼 틀어박혔다. 그는 잡지 <전지구 카탈로그>에 도구를 손수 제작하는 법에 대한 글을 기고하다가 친구의 컴퓨터를 빌려 온라인 공동체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기술은 굳이 쓸 필요 없다는 관점에서 기술이 많을수록 좋다는 쪽으로 극적인 이동. 기술의 본질을 잘 모른다는 점과 기술과 모순되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자각한 그는 이 문제를 7년에 걸쳐 탐구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지구 40억년 역사를 더듬어 올라간 지은이는 테크늄이 시원세균, 세균, 원생생물, 곰팡이, 식물, 동물 등 여섯가지 생물계에 이은 일곱번째 생물계라고 규정한다. 일종의 ‘확장된 인간’인 셈인데, 유전자의 확장이 아니라 마음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테크늄 안에는 망치, 바퀴, 나사돌리개, 정련된 금속, 길들여진 작물 같은 신종뿐 아니라 양자컴퓨터, 유전공학, 제트기, 월드와이드웹 같은 희귀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이 분포한다. 그런데 테크늄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테크늄을 변화시키는 우리 능력을 초월하는 전환점에 이르러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와이어드> 편집장 직전의 켈리는 테크늄의 생성사를 리와인드한다. 이때 아하! 테크늄이 창세기 첫장 ‘하나님’ 자리를 대체하고, 이후 테크늄의 의지에 의해 수렴된 인간의 역사가 한두름으로 꿰어진다. 무작위처럼 보이는 진화의 밑바닥에 방향성이 지하수처럼 도도히 흐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광자 에너지를 전기 신호로 바꿔 시신경으로 보내주는 망막의 단백질인 로돕신. 동물계 전체에서 발견되는 이 분자는 수십억년 동안 변하지 않은 진화의 최고 걸작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먼 옛날 고세균계와 진정세균계에서 진화해왔다. 지은이는 이를 두고 별 사이를 건너뛰어 태양계까지 여행한 것에 비유한다. 방향성 또는 불가피성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기술의 진화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기술이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유나바머’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견해에 동의한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6건의 우편물 폭발사건을 일으켜 3명을 사망하게 하고 23명에게 부상을 입힌 연쇄폭탄 테러범. 그는 “테크늄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관리하기 위해 다시 테크늄에 의존해야 한다. 궁극에는 테크늄이 인간의 행동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할 것이다”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켈리는 카진스키와 달리 테크늄이 끼치는 해악보다 그것이 우리한테 주는 기회가 더 크다고 본다. 따라서 대처법이 완전히 다르다. 카진스키는 이를 파괴함으로써 문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은 반면 지은이는 잘 구슬려서 본래 가고자 하는 경로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테크늄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은 생명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생명이 원하는 것은 다름아닌 효율성, 기회, 창발성, 복잡성, 다양성, 전문화, 편재성, 자유, 상호의존, 아름다움, 직감력, 구조, 진화 가능성의 증가.
테크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팽창하면서 스스로 변화한다. 진화, 생명, 마음처럼 무한게임에 해당한다. 포커, 축구, 복권처럼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이 아니라 모든 참가자가 가능한 한 오래 게임을 하도록 하는 게임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선택은 선택의 여지를 늘리는 것이다. 가능한 한 새롭고 좋은 가능성을 많이 생성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좋은 가능성은 더 좋은 가능성을 생성시키며 무한게임이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기술이 원하는 것이다.
컴퓨터 칩의 크기와 가격이 2년마다 절반씩 줄어든다는 ‘무어의 법칙’ 그래프는 말한다. “당신이 1965년에 이 곡선을 그럭저럭 믿었더라면 지금쯤 얼마나 큰 재산을 모을 수 있었겠는가. 투자는 아니어도 적어도 그것이 발휘할 놀라운 힘을 이해하기 위해 다르게 교육하며 슬기롭게 준비했을 것이다.” 지은이의 말이기도 하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본주의 새판 짜기-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 (0) | 2011.06.12 |
---|---|
스페판 에셀 [분노하라] (0) | 2011.06.12 |
키신저의 On China (0) | 2011.05.20 |
마크 레너드 ‘중국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0) | 2011.04.28 |
호미 바바의 [국민과 서사] (0) | 2011.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