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속에 ‘사회민주주의’ 있다

2011. 7. 14. 11:26theory & science

 

 

우리 헌법속에 ‘사회민주주의’ 있다
[한겨레] 최원형 기자 기자블로그

등록 : 20110712 20:36

 

제헌절 맞이 ‘대한민국 헌법…’ 토론회

 


오동석 교수 ‘헌법의 지향이념’ 발표예정
“경제민주화·재산권 조항 등에 구체화
인민 스스로 입헌적 법치주의 실현을”

 


»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취임 뒤 ‘우파 포퓰리즘’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헌법 119조 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내세웠다가 보수진영 여기저기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인데, 경제민주화 조항을 내세우는 것은 ‘좌클릭’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였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해 경제민주화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온다. 경제민주화 조항에 대한 보수진영의 민감한 반응은, 역설적으로 우리 헌법정신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사회민주주의연대는 17일 제헌절을 맞아 국회에서 ‘대한민국 헌법, 사회민주주의와 통하였느냐’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연다. 그동안 분단과 정치적 현실, 이데올로기적 접근 등으로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던 헌법과 사회민주주의 사이의 관련성을 짚어보자는 취지다.

사회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질서와 의회제도 속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념을 뜻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사안에 따라 헌법의 사회민주주의적 요소가 부각되긴 했지만, 이번처럼 본격적으로 헌법을 사회민주주의적으로 뜯어본 일은 드물었다.


» 우리나라 헌법에 담긴 사회민주주의적 이념

토론회 주제 발표를 맡은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사회민주주의와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발표문에서 “헌법 속에 있는 경제민주화 조항이나 노동권, 사회권, 재산권 규정에는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신자유주의나 이명박 정부가 내건 기업친화적 정책은 헌법이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가치와 맞지 않는다”며 “우리의 헌법을 둘러싼 현실은 이런 헌법이념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문제의 119조 2항을 두고, “대한민국 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의 보장과 자유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사회복지·사회정의·경제민주화 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가미한,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고 풀이했다. 곧 대한민국 헌법은 ‘경제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19조뿐 아니라 국가 계획경제를 명시한 120조, 122조, 123조, 125조, 126조, 127조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23조의 재산권 규정이다.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다”는 1항1문이 사유재산제의 보장, 더 나아가 원칙적인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보장으로 이어진다는 시각에 대해, 오 교수는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는 1항2문과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2항을 더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재산권 조항에는 사유재산제의 보장보다 ‘생산수단의 재산권성’, 곧 생산수단을 사유화하는 것을 제한하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것이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역시 “소유권은 절대 불가침한 것이 아니고, (…) 소유권을 가진 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그를 이용할 의무가 있음을 선명했다”고 밝히는 등 헌법의 기본이념이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에 있다고 명시한 바 있다.


 

 

» ‘소유권 제한’ 명시한 유진오의 제헌헌법 초안 사진. 고려대 박물관 제공
오 교수는 1919년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을 효시로, 현대 헌법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사회국가적’ 헌법에 기본을 두고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자, 실질적인 민주화와 사회화 등의 요구를 수용한 헌법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런 헌법이념은 왜 그동안 구현되지 못했는가?

오 교수는 “한국 사회는 헌법규범보다 그와는 다른 ‘헌법 현실’이 대한민국 헌법과 사회민주주의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는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실종시키고 맹목적인 시장경제 추종이 헌법이념을 잠식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전투적 자본주의, 곧 신자유주의는 헌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오 교수는 헌법에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이 담겼다고 해서, 오로지 헌법에 기대어 사회민주주의를 구현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그는 “민주주의의 굳건한 터전 위에서 입헌적 법치주의가 정립할 수 있을 뿐 그 반대는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맞서 ‘제헌권력’이 될 수 있는 주권자 인민의 민주적 역량을 강조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