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서하고, '김정은 체제'가 등장했다. 2012년 동북아질서와 남북관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와 무관하게 '거대한 전환'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동북아 지역 국가 대부분에서 권력교체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환경에서 '김정은 체제'가 등장했다는 것은 2012년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2012년의 변화는 '2013년 체제'를 규정한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적 질서 창조가 가능할 것인지, 그리고 평화와 복지가 선 순환하는 '2013년 체제'가 건설될 수 있을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2012년에 포용정책 전반에 대한 성찰과 이에 근거한 새로운 창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상대정책의 비판을 통해 우리의 정책을 옹호하는 방식은 낡은 것이며, 국민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대북정책에 있어 포용정책으로의 궤도 수정이 MB정부의 대북정책 실패 때문이라는 단순논리로는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없다. 즉 여전히 민주진보진영에 깔려 있는 '반(反) MB' 편승의 한계를 다시금 고민할 때다. 국민은 포용정책의 방향성에 대해서 대체로 수긍하지만, 포용정책 전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의 담론인 '퍼주기' 논란은 여전히 국민에게 수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진보진영은 전면적인 정책 검증과 자기반성을 통해 '포용정책 2.0'을 국민에게 내보이고 검증받고 선택받아야 한다. 이 '포용정책 2.0'은 '2013년 체제'의 핵심적 정책내용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기 전에 몇 가지 점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그에 근거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첫째, 국민정서에 근거한 정책입안과 추진이 이뤄져야 한다. 민주진보진영이 제시한 정책이 제아무리 올바르다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국민여론이 지지하는 즉 민심에 기초한 정책 추진의 원칙과 그 추진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문제와 대북정책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대북정책이 단지 '북한 도와주기'가 아니라 상생하고 공동 번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 즉 남북협력과 포용정책 추진이 국민경제에 이로울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동(북)아시아 질서라는 지역질서 차원에서 대북정책을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의 G-2, 여전히 막강한 일본과 러시아라는 지역 환경, 동아시아 지역공동체 건설의 가속화, 지역차원의 경제전쟁과 FTA 체결 상황 등 이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지역정치 및 국제정치라는 변수를 제외하고 얘기할 수 없게 되었다.
넷째, 현실과 비전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통일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현실은 통일로 가기 어려운 조건이고, 비전은 통일로 가는 것이라는 모순적 구조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 현실 위에 비전을 추구해야 한다.
다섯째, 북한 인권을 둘러싼 갈등도 재정립해야 한다. 북한은 특수하기 때문에, 북한 인권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북한인권의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에 근거해서 접근해야 한다. 서구식 시민권뿐만 아니라 경제권·사회권도 동시에 보장하는 방식의 일관성 정립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남남갈등, 남북갈등의 문제를 인간 간의 관계 또는 국가 간의 관계로만 사고했다. 이 인식지평을 넘어서면 분단체제를 허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잔존하는 냉전의 사물, 분단의 사물들(휴전선, 방공호, 군사문화, 군사장비, 지뢰 등등)을 탈냉전의 사물로 전환시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냉전의 현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냉전의 인간들과 한반도 곳곳의 장소·사물들과 단단히 네트워크 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2년에 포용정책 2.0 버전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지고지순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민주진보진영의 가치만 투영된 새로운 버전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이 참여하여 만드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국민에 의해 민주적으로 규제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