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시대, 우리는 괴물을 목도했다. 전가의 보도처럼 국민의 입을 막고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던 국가보안법. 그것은 괴물이었다. 도처에 편재(遍在)하는 감시의 시선, 공포의 이름이었다. 그 괴물은 북한의 '적화통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남한의 국민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북한의 '야욕'을 막기 위해 남한의 국민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일은 그 자체가 '선'이었다.

이 얼마나 기괴한 일인가!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혁당사건'은 33년 만에 무죄로 입증되었다. 그들의 죽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1974년 국가보안법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건이 33년 이후에는 무죄로 판명되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 광란의 질주를 막기 위해, 민주주의의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 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독재와 맞서 싸웠다. 그 많은 희생 위에 민주주의를 얻었다. 괴물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가둬둘 수는 있었다. "북한이 존재하는 한 괴물은 죽일 수 없다"라는 기이한 논리는 여전히 국민여론으로 남아 있다. 가두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죽일 수는 없는 괴물, 그것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법으로 남아 있는 국가보안법이다.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주장되는 21세기, 그 엄청난 기술과 네트워크에 의해 알 수 없는 연쇄로 돌아가는 지금 괴물이 귀환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종북주의'가 신문을 뒤덮고, 앞뒤도 재보지 않는 권력과 언론의 마녀사냥이 지속되고, 반공 캐치프레이즈가 범람하고 있다.

 

전 세계가 유럽발 경제위기로 흔들리고 있고 장기불황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G-20의 수장들이 모여도 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세계적 경제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 내부는 어떤가. 가계대출은 한계수위를 넘어섰고 부동산까지 확산되면 심각한 경제적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물가는 떨어질 줄 모르고 양극화는 좁혀질 것 같지 않다. 그 모든 희생은 서민과 중산층에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도 안 될 판에, 괴물의 귀환을 반기며, 이념 파시즘의 광란에 곳간 비는 줄도 모르고 있다.

 

통치하고 정치하는 분들이 그 모양이니 이제 망둥이도 따라 뛴다. 국정원과 외교부가 망둥이 짓을 했다. 국정원이 해외 공관에 내려보낸 공문이란다. "북한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입(식당 수입금 포함)을 독재정권 유지 및 핵·미사일 등 군사력 강화에 투입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식당을 이용하시는 것은 결국 이를 도와주는 결과가 됩니다."

 

국정원이 공문을 보냈고 해외공관장이 용인하고 외교부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한다. 여하간 식당가지 말라고 공문 보내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다. 해외 북한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돈을 지불하면 북한 핵개발에 동조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어쩌면 괴물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은 해외 나가서 북한에게 이롭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매뉴얼을 들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경찰도 망둥이 짓을 했다. 일명 'GPS 간첩사건'이다. 최근 기술과 기밀을 수집해서 북한에 넘겼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상 '간첩혐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수집한 것 같지만 북한에 넘기지는 않았기 때문에 '간첩 혐의'는 아니고 '간첩 예비음모' 혐의란다. 아마도 정부 전 부처가 망둥이처럼 날뛸 것 같다.

 

이념 파시즘의 광란 속에 괴물이 귀환했다. 한 가지 이념 이외의 것을 생각하면 괴물의 표적이 된다. 다른 것을 생각하면 안 된다. 오직 '자유민주주의'만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서로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이념의 감시탑 아래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파놉티콘'의 사회가 도래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몸통은 누구일까? 아마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모든 부패와 위법은 항상 꼬리들이 몸통도 모르게 자행한 것이라고 검찰이 '속속들이' 밝히는 나라에서, 무엇을 밝힐 수 있겠는가!

 

이념 파시즘은 대한민국을 핍진(乏盡)으로 인도할 것이다. 다른 것은 모조리 없애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존립 근거를 흔드는 것이다. 살피고 또 살펴라. 다른 것의 출몰을 막아라. 그것이 애국이다. 그리고 애국의 앞면을 넘기면 반공의 뒷면이 나온다. 우리는 이제 그 뒷면에서 귀환하는 괴물을 막아야 한다. 이념 파시즘의 광란을 중단시켜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