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월러스틴

2012. 9. 24. 12:39interview

 

 

“유로존, 와해보단 연방주의 강화로 경제위기 넘을 것”

등록 : 2012.09.18 18:58 수정 : 2012.09.18 22:39

 

 

‘세계체제론’이란 독창적 분석 틀로 사회과학의 신기원을 열었던 이매뉴얼 월러스틴(82)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인터뷰/ ‘세계체제론’ 월러스틴 교수

“유로존의 ‘연방주의’적 성격이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82)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의 시각은 남다르다. 세계 금융위기에 이은 부채위기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이 쪼개지거나 약화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지만, 세계적인 석학 월러스틴의 분석은 정반대다. 그의 탁월하면서도 독특한 관점은 늘 거시적이면서도,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 세계와 현상을 분석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한겨레>는 31주년 유엔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해 국내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 ‘2012년 피스바(BAR)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월러스틴 교수와 ‘세계체제론’의 국내 ‘전파자’인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의 대담 자리를 17일 마련했다.

대담자/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이수훈(이하 이) 당신은 2006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향후 50년 “세계는 중대한 경제적 동요의 시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당신의 말대로 자본주의는 1930년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월러스틴
내 생각은 5~6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1970년대 이후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날짜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2040~2050년까지 위기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체제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균형 상태에서 멀어져 이젠 되돌아갈 수 없는데다, 어떤 방향으로 갈지도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세계체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 혼란스러운 과정 중에 서 있다. 큰 변동이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실업도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다.

 

그리스와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 나라가 위기를 겪고 있다. 유럽의 부채위기와 관련해 유럽 통합이 잘못된 선택인 것처럼 보는 시각이 많다.

 

월러스틴
유럽인들은 (단일통화로) 유로화를 쓰지만 연방정부가 없다. 애매한 상황이다. 정부가 상황에 따라 환율을 함부로 조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많은 나라가 어려울 때 환율을 조정하는데 유로존은 이런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실업을 해결하라는 정부에 대한 요구가 커졌지만, 예산을 줄이는 식(긴축)으로 대응했다.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가 재정 축소에 따른 압박을 느끼고 있다.

 

유럽 문제 중앙권력 커져야 해결
새로운 자금순환 메커니즘 생겨
독일 돈, 위기국가로 유입될 것

 

한국에선 전혀 다른 논쟁이 있다. 유럽의 그리스와 아일랜드 등의 문제는 정부가 복지에 많은 지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월러스틴 그렇다고 해서 복지 지출을 줄이게 되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게 된다. 그럼 ‘유효 수요’가 감소한다. 복지 지출을 줄이는 것이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상황을 더 심각하게 한다. 이건 비단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욱더 많은 ‘보수적 힘’들이 세계 곳곳에서 복지를 줄이려 한다.

 

‘전염 효과’를 내세워 유럽 통합이 잘못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월러스틴
유럽 문제의 해결을 유로를 해체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만약 유로가 없다면 각각의 통화로 위기를 더 잘 견뎌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정학적 압박’ 즉, 유로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힘은 개개 통화로 돌아가려는 압력보다 훨씬 크다. 유럽의 문제는 (유로존 안) ‘중앙권력’이 커져야 해결될 것으로 본다. (미국과 같이) ‘연방주의’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비슷한 중앙권력(주정부가 아닌 일종의 연방정부)이 앞장을 서서, (경제공동체 내) 자금의 선순환을 증가시키는 데 노력을 해야 한다. 미국 같은 나라는 미시시피주를 파산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이는 연방정부가 있기 때문에 돈을 거기에 공급해줄 수 있다. 비슷하게 독일로부터 돈이 포르투갈이나 다른 나라들로 흘러가야 하고 순환이 돼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 점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나에게 3년 뒤를 예측하라고 한다면, 더욱 강화된 유로, 와해보단 생존, 그리고 자금순환이 잘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복지지출 줄이면 사람들 소비 줄여
유효수요 감소로 문제 더 심각해져

경제위기 겪은 남한, 미국처럼 변해
부자증세·복지 등 정책처방도 비슷

 

10일 전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중산층 재건, 부자들에 대한 증세, 복지 등 미국 경제와 사회를 어렵게 하는 과제를 풀기 위한 처방들을 제시했다. 내가 놀란 지점은 한국의 대선 후보들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7년과 2008년 경제위기를 겪은 이후 남한은 미국 사회와 매우 유사하게 변한 것 같다. 정책 처방도 그래서 거의 비슷하다.

 

월러스틴
나도 동의한다. 세계 곳곳의 부자 나라 안에서 남한은 상층부는 아니지만 상층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진보와 보수의 전통적 차이는 복지에 더 집중을 하고,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도 같다.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조 바이든은 ‘미국이 사양길에 접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장을 2~3차례나 언급했다.

 

월러스틴
어떤 정치인도 미국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 모두 미국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현실을 부정하려고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 왜냐면 아직 미국의 대중들이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넘버원’이 아니다. 그리고 더는 전세계의 모범으로 존경받지 못한다. 수사와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그러한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것을 더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은 분명 크게 쇠퇴했다.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개입하기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아시아에서 미국이 어떤 것을 하겠다는 것은, 유럽에선 뭘 안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종의 ‘고백’이다.

 

이제 ‘팍스 시니카’(중국 주도의 세계질서)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세계 헤게모니와 관련해 중국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오바마는 미국이 ‘태평양 국가’라고 말했다.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 남한, 다른 아시아 동맹국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표현들이 중국에 대한 ‘봉쇄’처럼 비친 게 사실이다.

 

월러스틴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이 권좌에 앉은 이후 중국에 그리 관심을 보인 나라가 아니었다. 닉슨(전 미국 대통령)이 지정학적 본능의 안내에 따라 중국에 가기까지, 서로가 비난했었다. 다행히 양쪽 다 현명했다. 중국은 소련과 대립하고 있었다. 둘은 소련에 맞서 같은 편이었다. 냉전은 끝났다. 소련은 사라졌다. 이제 중국은 ‘월드 파워’가 됐다. 중국과 미국은 현안에 대해 많은 이견이 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중국과 미국은 결코 ‘지정학적 위험선’(군사적 대치 등)을 넘지 않았다. 좋은 지정학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왔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2001년 (미군기의 중국 영토 침범에 대해) 중국에 사과한 적이 있다. 이는 그가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자본적 이해’에 의해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폭격을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바마의 ‘아시아에 대한 강조’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게 미국과 아시아에 있는 다른 나라, 즉 한국과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과 같은 나라와 미국 내부에 대한 하나의 ‘수사적 쇼’라고 본다.

 

미·중, 남북통일땐 북 비핵화 아닌
남한 등 국가 핵무장 가능성 우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구조적 위기
2040~50년까지 완전한 해결 난망

 

북한 핵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민주당의 정강정책도 대북 압박정책이며, 비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월러스틴
통일에 대한 ‘지정학적 압력’은 거대하다. 미국이나 중국은 이러한 동북아지역의 핵 확산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문제로 인해 미국과 중국은 힘을 합쳐 막으려고 할 것이다. 두 나라가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은 남북한이 통일을 하게 되면 북한이 비핵화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다른 동북아지역의 국가들이 핵무장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 10년 뒤쯤 이들 모두 핵무장화할 수 있다고 본다. 핵은 (외부의) 폭격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적 기제다. 미국이 이라크로 쳐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라크가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란과 북한이 배운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핵은) 그들이 지닐 수 있는 유일한 군사적 보호 수단이다.

 

이 우리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희망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

 

월러스틴 가망이 없다고 본다.

 

이 그런 의미에서 현재 북한과 미국의 대치는 계속될 것으로 보나?

 

월러스틴 다시 얘기하지만, 수사와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 미국 외교관들은 이것을 안다. 그들은 (북한의 핵 포기가) 가망이 없다고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남북 사이에 경제적인 부분 등 다양한 협력이 있을 수 있다. 북한이 자국민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중국과 베트남은 좋은 예가 되었다. 일당(single party)이 권력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 개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중국의 경제특구가 성공한 것처럼, 북한도 위협을 무릅쓰고 도전할 수도 있다고 본다.

 

2008년 이후 경제위기가 여전히 진행중이다. 어떤 분석가들은 자본주의가 계속 자기 오류를 수정하면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월러스틴 사람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스템이 정상화되고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딘가에 해결책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나의 주장은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무척 어려운 부분이다. 모든 시스템은 유기체라고 본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도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균형상태로부터 점차 벗어나 움직여 왔고, 다시 균형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가능성의 한계에 도달했다. 30년 전 사람들은 이 얘기를 하면 웃었다. 지금 그들은 이 얘기에 웃지 않는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20년이 지나면 알 것이다.

정리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세계적인 석학 임마누엘 월러스타인 교수와 이수훈 경남대 극동연구소 소장이 대담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자본주의 세계경제, 위계적 분업구조로 이뤄졌다” 분석
월러스틴은 누구

이매뉴얼 월러스틴(82)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세계체제론’이란 독창적 분석 틀로 사회과학의 신기원을 열었다. 그의 주된 관심은 16세기 유럽에서 출현한 ‘자본주의 세계경제’ 체제다. 그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주변부, 반주변부, 핵심부’라는 지리적, 위계적 분업구조로 이뤄졌다고 분석한다. 지금의 세계체제는 핵심부에 있는 미국의 쇠락과 함께 40~50년 내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질서가 출현할 것으로 본다. 그의 대표작은 <근대세계체제론>이다.

대담을 진행한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으로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러스틴의 이론을 국내에 가장 초기에 소개한 학자 중 한 명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기관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세계체제론의 관점에서 남북을 포함한 동북아 문제에 학문적, 정책적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