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민심(民心)을 이길 것은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로, 투표한 유권자 중 반을 넘는 대통령이 나왔다.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고, 대한민국은 앞으로 5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통치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에 대한 평가로서 정권교체의 당위도, '안철수 현상'으로 회자되던 새 정치에 대한 갈망도 다수 유권자의 지지로 연결되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대한 의미로 다가온다. 신뢰받지 못하는 민주진보진영의 자화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소위 보수진영을 제외한 모든 진영이 연대했음에도, 그들이 주장한 정권교체와 새 정치에 대해 다수 국민이 지지하지 않았다. 그것은 민주진보진영의 신뢰 위기이며, 또한 새로운 정치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대선을 보면, 민주통합당 또는 새롭게 만들어질 신당이든지 간에, 그 정당이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것은 '그 당'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도적 정당으로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수도권 중심성을 명확히 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수도권에서의 확고한 우위를 얻지 못한다면 보수진영 후보의 당선은 지속될 수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오히려 상당히 예외적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이번 선거에서 경험했듯이 유권자 분포의 불균형성을 보정하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수도권 유권자의 확고한 지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당이어야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둘째, 중도주의적 노선에 입각한 새로운 정당혁신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와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이 스웨덴식 복지국가일 수도 없으며 독일식 통일국가일 수도 없다. 우리의 역사와 경험 속에서 체현된 유권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한국적 모델이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진보진영은 여전히 도그마처럼 외부의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고, 내부의 진보적 방식을 유권자에게 강요하려고 했다. 복지와 대북노선에 대한 진지한 중도적 전환의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 SNS(Social Network Service) 중심성의 한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IT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다수의 사람들이 SNS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민주진보진영을 지지하는 유권자 층이 SNS에 익숙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세계는 SNS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오프라인의 삶의 세계와 공동체 마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곳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2012년 12월 19일은 지났다. 우리의 잘못을 반대진영에 대한 분노로 넘기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분노를 넘어 대안의 정치, 삶의 정치로 대답해야 한다. 지하철노인 무임승차 폐지와 같은 논란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제 세대로 가르는 세대정치도, 진보와 보수로 가르는 이념정치도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제 '혁신 대장정'을 시작해야 한다. 밤이 길어도 새벽은 온다. 캄캄한 긴 터널이라고 생각되는 지금도 그것이 유권자들의 판단이라면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긴 터널을 넘어 다가올 새로운 빛을 위해 질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장정이 지나면 '친노, 486'은 과거의 단어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자리는 '서민과 중산층'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민주진보진영이 설 자리는 항상 '서민과 중산층'의 현장이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 엘리트 정치에 빠져들 때마다 항상 정당은 길을 잃어버렸다. 또다시 '잃어버린 10년'을 주장하며 자신의 권력을 이어가려는 술수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