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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아파트 102㎡형(공급면적)에 전세로 살고 있는 최아무개씨는 이 아파트에 이사온 지 4년 만인 다음달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한다. 3억2000만원인 전세를 시세에 맞춰 4억원으로 올리겠다는 집주인의 통보를 지난달 받았는데, 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씨가 2009년 이 아파트에 처음 들어올 당시 전셋값 2억2000만원에 견줘 4년 만에 1억8000만원(82%)이나 뛴 것이다.
본격적인 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세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전셋값 급등이 쓰나미처럼 시장을 덮쳐 ‘전세 대란’이 벌어졌던 2년 전 이맘때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그나마 새해 들어 지금까지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셋값이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1월 중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3%, 수도권은 0.2%의 상승률에 그치면서 비교적 소폭의 상승세로 출발했다. 그러나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이사철이 시작되면 전셋값 오름세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올봄 전세 재계약을 앞둔 세입자들은 지난 2년간 뛰어오른 전셋값 상승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살던 전셋집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빚을 내서라도 오른 전세금을 내야 하고,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으면 짐을 싸서 전셋값이 싼 곳으로 떠나야 할지 모른다.
케이비(KB)국민은행 주택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2011년 1월 대비 올해 1월 아파트 전셋값은 서울이 평균 15%, 수도권은 15.8% 상승했다. 서울에서는 서초구(18.4%) 강동구(18.1%) 중랑구(18.1%) 송파구(17.5%) 광진구(17.5%) 성북구(17.5%) 등이 많이 올랐고, 서울 외 수도권에서는 오산(33.2%) 화성(30.0%) 이천(31.5%) 평택(27.7%) 광명(22.5%) 양주(22.9%) 등이 큰 폭으로 뛰었다.
수도권 전셋값 2년새 15% 급등
부동산경기 침체로 재개발 줄고
2~3년 집값 하향세에 매입 꺼려
상승분 월세 전환 ‘반전세’ 늘고
‘깡통주택’에 전세금 떼일 우려도
“중소형 공공임대 공급확대 시급”
전셋값 상승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중단되면서 신규 입주 물량이 줄어든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만 해도 대규모 노후 주택 단지를 철거한 이후 빈터로 방치된 재개발 사업장이 곳곳에 널려 있다. 여기에다 지난 2~3년간 집값이 꾸준히 내린 탓에 자금력이 있는 사람들조차 주택 매입을 미루면서 전세로 돌아서는 수요가 증가한 것도 전세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집값은 내리는데도 전셋값은 오름세가 멈추질 않으면서 전셋집을 아예 구하기 어려운 ‘전세 품귀’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뛰어오른 전세금을 감당할 수 없는 세입자들은 살던 곳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반전세’로 내몰리고 있다. 전셋값 상승분을 월세로 돌려 내는 반전세는 과거에는 중대형 주택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중소형 아파트단지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반전세가 늘어나면서 전세 매물은 점차 씨가 말라가고 있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982가구 규모 대단지인 마포 삼성아파트의 경우 현재 나와 있는 순수 전세 매물은 10건도 안 된다. 지난해부터 반전세나 월세가 빠르게 늘어난 데 따른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전세금과 주택 담보 대출금을 더한 금액이 집값에 가까워진 이른바 ‘깡통주택’이 늘어나면서 이사하려는 세입자가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깡통주택은 세입자가 잘 들어오지 않는 데다, 집주인이 집을 팔아 전세금을 돌려주고 싶어도 주택경기 침체로 거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깡통주택은 집주인이 파산해 경매로 넘어가는 최악의 경우 세입자가 전세금을 전액 회수하지 못하고 상당액을 떼일 가능성도 높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은 집을 경매에 넘겨도 금융회사에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없는 깡통주택 소유자가 전국적으로 19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전세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주택 거래 활성화로 시장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한편, 임차인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세입자 권리 보호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권정순 변호사는 “벼랑끝에 몰리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 소액보증금 우선 변제 범위를 확대하고, 임차인의 계약갱신 청구권과 전월셋값 상한제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약갱신 청구권은 재건축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임차인이 희망하면 현재 2년인 계약기간을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는 제도다.
저렴한 가격의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원갑 케이비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최근 몇년 동안 1인 가구를 위한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공급은 늘었지만, 2~3인 가구가 입주할 만한 아파트는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새 정부는 ‘렌트 푸어’ 대책의 초점을 값싼 중소형 공공임대를 더 늘리는 쪽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