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강국의 길] 1) 독일 구한 '히든 챔피언'

2013. 4. 15. 14:29tech_coop_agri

해고없는 위기극복’…강한 독일 뒤엔 강소기업 있다

등록 : 2013.04.14 19:49 수정 : 2013.04.15 08:19

감원 대신 노동시간 절반 단축
일자리 유지가 결국 국가적 이득

‘중소기업 강국’은 박근혜 정부가 첫번째 국정목표로 제시한 ‘일자리 중심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또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의 요체이기도 하다. 대기업 일변도의 성장에서 벗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두개의 성장엔진이 함께 가동하지 않으면 경제민주화도, 일자리 창출도 모두 요원하다. <한겨레>는 앞으로 4부에 걸쳐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중소기업 강국의 성공 사례를 살펴보고 중소기업 강국을 이루기 위한 방안들을 다룬다. 이번 연재물은 오는 10월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릴 ‘제4회 아시아미래포럼’과도 연계돼 있다.

독일 서남부 슈투트가르트 인근 소도시인 로이틀링겐. 강철선 가공설비 생산업체인 바피오스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바피오스는 연간 1600억원의 매출을 거두는 수준이지만, 관련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독일의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바피오스도 직격탄을 맞았다.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줄었다. 순이익도 2009, 2010년 연속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 회사의 노동자 수는 800명 정도. 4년이 지난 지금은 794명이다. 극심한 위기 속에서도 직원 해고 없이 버틴 비결은 무엇일까? 회사는 해고를 않는 대신 노동자들과 주 35시간의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고통분담에 합의했다. 독일 정부도 ‘노동시간 단축 프로그램’을 운용해, 노동자들에게 줄어든 월급의 60%를 지원했다. 해고된 뒤에 실업수당을 주느니, 차라리 임금의 일부를 지원해서 일자리를 유지시키는 게 국가적으로도 득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바피오스는 2010년부터 매출을 증가세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노동시간도 정상화됐다. <한겨레> 취재진이 3월 초 바피오스를 방문했을 때 최고기술책임자인 우베페터 바이크만 박사는 “빠른 회복이 가능했던 것은 핵심 인력들을 해고하지 않고 계속 지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피오스는 독일이 경제위기 속에서도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고, 빠른 경제회복을 이루는 데 히든 챔피언들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히든 챔피언들은 경영위기에서도 감원을 자제함으로써 ‘경기 불황→대량 감원→내수 위축→회복 지연→불황 장기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임금 조정, 노동시간 감축 등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기 쉽다고 말한다.

 

독일은 유럽의 병자’. 영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1999년 6월3일치 기사 제목이다. 이 잡지는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인 독일의 질병이 유로 지역을 취약하게 만드는 주요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14년이 흐른 2013년 독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180도 바뀌었다.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각) 국제채권단과 구제금융안에 합의해 최대 고비를 넘겼다. 구제금융안을 주도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키프로스에 대해 은행 구조조정과 고액 예금자의 손실분담 주장을 끝내 관철시켰다.

독일도 2009년 일시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나 바로 플러스 성장으로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 실업률은 2011년 기준 6%로 유럽 최저 수준이다. 최악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는 스페인(21.8%)과 비교하면 4분의 1에 불과하다. 특히 독일의 청년실업률은 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2%)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의 9.1%(2013년 2월)보다도 낮다.

 

프랑크푸르트·만하임·슈투트가르트(독일)/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규모 아닌 기술로 승부…대기업과 ‘수출 강국 쌍끌이’

등록 : 2013.04.14 20:14 수정 : 2013.04.14 20:14

유럽 지역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독일 경제는 상대적으로 건실함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독일경제는 왜 강한가

작년 세계 500대 기업 중
독일은 32개 뿐이었지만
글로벌 강소기업 1천여곳 달해
유럽 젊은이들 ‘구직 이민’

제조업에 기반한 중소기업들
기술력으로 틈새시장 파고들어
고용창출·국민소득에도 큰 역할

 

독일 경제가 강한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독일 정부의 경제개혁이 꼽힌다. 1990년대 말 독일 실업자는 600만~700만명에 달했다. 베를린 시민의 25%가 일하지 않으면서 오직 정부의 복지혜택으로 생활했을 정도였다. 할아버지-아버지-아들 3대가 정부의 연금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2년 경제개혁 정책인 ‘어젠더 2010’을 단행했다. 정부에만 의존한 채 일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 혜택을 대폭 줄였다. 노사정 대타협으로 노조가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와 파업을 자제한 것은 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기업들의 법인세 인하와 사회보장 부담축소도 단행됐다. 슈뢰더 총리가 2001년에 법인세율을 40%에서 25%로 낮춘 데 이어,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2008년에 15%로 인하해 기업들이 고용과 투자 여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했다.

 

오는 9월 실시되는 독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요즘, 집권 기민당의 표정은 밝지 않다. 주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후퇴하며 연립정부 구성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 8년차를 맞고 있는 메르켈 총리의 개인적 인기는 여전히 상한가다. 독일의 주간지 <슈테른>이 독일 정치인들의 인기도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메르켈 총리가 경쟁자들을 누르고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코트라 프랑크푸르트무역관의 강형곤 투자유치팀장은 “최근 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파이낸셜 타임스>가 유럽연합 안에서의 독일어 배우기 열풍을 다뤘다. 유럽의 젋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너도나도 독일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고 소개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독일의 강한 중소기업들은 독일 경제를 구한 효자로 꼽힌다. 특히 매출이나 근로자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틈새시장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세계 최강자 자리에 오른 히든 챔피언들은 독일 부흥의 주역이다.

독일의 국민 1인당 수출액은 2010년 기준 1만5513달러로 세계 1위다. 독일은 전체 수출액에서도 2003~2008년 세계 1위를 달렸다. 이후 순위가 뒤로 밀렸지만 여전히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일에는 지멘스·바스프·폴크스바겐·다임러·베엠베(BMW) 등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대기업들이 여럿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이 발표한 ‘2012년 글로벌 500대 기업’을 보면 독일은 32개가 포함돼, 미국(132)·중국(73)· 일본(68)에 이어 4위에 그쳤다. 더욱이 3위인 일본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독일이 이처럼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도 수출 강국인 이유는 세계 1등인 히든 챔피언들이 많기 때문이다.

 

독일 중소기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자랑한다. 201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경쟁력 평가를 보면, 독일 중소기업의 효율성은 세계 1위다. 독일 중소기업은 심지어 대기업보다도 효율성이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강철선가공설비 생산업체로 히든 챔피언인 바피오스의 우베페터 바이크만 최고기술책임자는 “우리 회사의 경쟁력이 대기업보다 더 높다. 솔직히 대기업 중에서도 진정한 경쟁자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히든 챔피언은 기술력을 중시해, 매출액 대비 기술개발투자 비율이 5.9%로 글로벌기업의 4.2%보다 더 높다. 만하임에 소재한 히든 챔피언인 푹스오일(Fuchs-oil)의 게오르크 린그 이사는 “독일 기업이 창출하는 순가치의 절반을 중소기업이 차지한다. 고용창출에서도 중소기업이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독일 국립 중소기업연구소(IFM)의 미하엘 홀츠 연구원은 “2001~2005년 기간 동안 중소기업의 일자리 증가율이 2.5%인 반면 대기업은 0.5%로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히든 챔피언은 국가 전체의 경제력이나 1인당 국민소득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히든 챔피언이라는 용어를 만든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2012년 기준 전세계 히든 챔피언을 2734개로 집계했다. 이 가운데 독일이 1307개(48%)로 가장 많고, 그 뒤로는 미국 366개, 일본 220개 순서다. 한국은 23개로 13위에 그쳤다. 인구 100만명당 히든 챔피언도 독일이 16개로 가장 많다. 그다음은 룩셈부르크 14개, 스위스 13.9개, 오스트리아 13.8개 순서다. 한국은 0.5개로 19위다. 히든 챔피언 10강 중에서 5개국이 1인당 국민소득 10위 국가 안에 드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한국은 2007년 처음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선 이후 6년간 2만달러 선을 오르내리고 있어 일각에선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해 3%대로 추락했다. 선진 23개국이 2만달러에서 3만달러를 돌파하는데 평균 8년이 걸렸는데, 한국이 향후 2년 안에 3만달러를 돌파할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

 

강한 대기업으로 2만달러 시대를 열어젖힌 한국이 3만달러 시대로 나아가려면 대기업이라는 하나의 성장엔진만으로는 어렵다. 독일처럼 강한 중소기업을 많이 육성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두개의 성장엔진이 가동하는 쌍끌이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소기업 대통령’을 선언한 이유다. 경제개혁연대의 위평량 연구위원은 “대기업 중심의 성장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 역할을 해야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한국은 국민 문화, 사회 시스템, 기업 발전과정 등에 적잖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양질의 노동력, 성과 중심의 기업문화, 왕성한 기업가 정신, 프로테스탄티즘과 유사한 유교적 전통에 기반을 둔 근면성 등 독일과 유사점도 많다. 또 분단국가의 경험, 전쟁의 참화, 뒤늦은 산업화, 경제부흥의 기적 등 역사적 동일성도 강하다. 만하임응용과학대학의 빈프리트 베버 교수는 “한국이 독일의 경험을 잘 참고한다면 충분히 ‘중소기업 강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크푸르트·만하임·슈투트가르트(독일)/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99.9%가 중소기업인데 효율성은 세계 최하위권

 

한국의 현실은독일의 53.8% 미국의 59.7% 수준

 

한국의 중소기업은 ‘99-88’(사업체수의 99.9%, 일자리의 87%)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지만, 경쟁력에서는 독일 히든 챔피언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중소기업의 부가가치와 생산액 비중(5인 이상 제조업 기준)은 2010년 기준 47%대에 불과하다. 종업원 1인당 부가가치는 2010년 기준 5100만원으로, 대기업(1억4500만원)의 35%에 불과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평가를 보면 2012년 기준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효율성은 전체 59개국 중 51위로 최하위권이다. 대기업 효율성의 61%에 불과하고, 국가별 비교에서도 독일의 53.8%, 미국의 59.7%에 그친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오동윤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효율성이 높을수록, 대·중소기업 간 효율성 격차가 작을수록 국가경쟁력이 높다”고 강조한다.

 

반면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대기업을 압도한다. 제조업 분야만 보면, 중소기업의 종사자 수는 2006~2010년 5년간 4.4%가 늘어났지만 대기업은 2.6%가 되레 줄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0년간 중소기업 일자리는 358만1851개 증가한 반면 대기업은 21만5205개가 줄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중소기업 강국’은 필수조건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이 중소기업 강국이 되려면 무엇보다 지난 50여년간 지속된 소수 수출 대기업에 평향된 경제정책을 대기업-중소기업, 수출-내수가 균형을 이루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도 성장의 축으로 자리 잡아 성장 과실을 골고루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중소기업을 질식시키고 성장을 가로막는 대기업의 불공정하도급거래를 근절시켜 대·중소기업 간 수직적 네트워크가 정상화돼야 한다. 중소기업 간 협력과 지역단위의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 등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수평적 협력네트워크의 활성화도 관건이다. 중소기업 스스로도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끊임없는 기술 및 제품 혁신과 국내시장에만 안주하지 않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려는 글로벌화 노력이 시급하다. 곽정수 선임기자

 

“고졸 기술자는 포르쉐 타고 대졸은 찌그러진 차 타”

등록 : 2013.04.14 20:04 수정 : 2013.04.14 22:08

히든 챔피언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빈프린트 베버(56) 독일 만하임응용과학대학 교수가 <한겨레> 기자와 만나 독일경제의 밑바탕인 시스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 고교때 기업-학교 병행인턴제…중소기업 숙련노동 젖줄”
‘히든 챔피언’ 전문가 베버 교수 인터뷰

매년 대학진학자 2배인 80만명
직업훈련 3년뒤 정식직원 돼
그중 80%이상 중소기업서 일해
산·학연계직업교육 미·중 “도입추진”

CEO처럼 전체 작업과정 이해
신제품 개발 등 적극 나서

 

“독일의 산·학 연계 직업교육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독특하다. 이것이 없었다면 독일 히든 챔피언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히든 챔피언의 전문가인 독일 만하임응용과학대학의 빈프리트 베버(56) 교수는 3월 초 독일 남서부 슈투트가르트 인근 자택에서 <한겨레>와 만나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의 첫번째 성공 비결로 독일 특유의 직업교육시스템을 꼽았다. 그는 미국, 스페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독일식 직업교육시스템의 도입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수많은 히든 챔피언이 나올 수 있었던 비결은?

기업이 발전하려면 사회적 시스템과 자본, 문화 등의 뒷받침이 필요한데, 직업교육시스템과 직장 내 평생학습체제가 히든 챔피언을 만드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면 중소기업은 숙련 노동자를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대학 상위권에 독일 대학이 거의 없는데도 독일 경제가 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직업교육시스템 덕분에 직원들은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자기가 할 일을 알고 있다. 또 틈새시장(니치마켓)에 집중하고, 세계화에 힘쓴 것도 히든 챔피언의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독일의 직업교육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나?

“독일 경제의 심장인 남서부 지역 젊은이들의 경우 70~75%가 10년 교육을 마친 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2학년부터) 기업과 학교를 병행하는 인턴(직업훈련생) 생활을 시작한다. 이들은 일주일 중에서 이틀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사흘은 기업에서 기술을 배운다. 독일 전체로 이런 직업훈련생이 매년 70만~80만명씩 새로 유입되는데, 이들의 80% 이상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이에 반해 대학 진학자는 40만명 정도다. 직업훈련생들은 3년간의 인턴 생활을 마치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다. 이들은 이후 기사, 마이스터(기장)로 단계적으로 올라간다. 독일은 직장 내 평생학습체제가 발달해 있어서, 직장에 다니면서도 대학 공부를 병행할 수 있다. 또 독일 대학은 상당수가 순수학문이 아닌 기업과 연관된 연구를 수행한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 설립된 응용과학대학의 경우 학생 가운데 절반 정도는 기업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사실상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 또 교수가 되려면 최소 5년 이상 현업의 경력이 필요하다. 기업은 대학과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기술 및 상품 개발, 공정혁신, 연구자 육성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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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의 현실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청년 실업자 수가 30만명인데도, 중소기업의 부족 인력이 26만명에 달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영국의 유력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2011년 말 한 번의 시험으로 젊은이들의 인생이 판가름나는 ‘한방사회’인 한국과, 젊은이들에게 여러 선택과 진로가 열려 있는 독일을 비교하는 기사(Korea is one-shot society, but Germany is 5~10 shot society)를 다뤘다. 한국 젋은이들은 최근에는 대학을 마쳐도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독일 젊은이들은 직업교육시스템에 의해 안정적인 일자리와 보수를 보장받는다.”

 

-한국에선 대졸자에 비해 고졸자의 대우가 너무 낮다.

 “2년 반 전에 독일의 유력 주간지인 <디차이트>가 10학년이 끝난 뒤 인턴을 거쳐 기술자가 된 젊은이와, 12학년까지 마치고 대학으로 진학한 젊은이를 비교한 특집기사인 ‘아비투어(Avi·대입자격시험) 2010 vs 미틀러레 라이페(Mittlere reife·중급단계 10학년 이수증) 2008’을 실었다. 2년이나 더 공부해서 대학으로 진학한 젊은이는 몇 년 뒤 오래되고 찌그러진 차를 타고 다니는데, 기술자의 길을 밟은 젊은이는 비싸고 좋은 포르셰 차를 몰고 다닌다는 내용이다. 독일에서는 기술자의 길을 선택한 젊은이들이 오히려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보다 사회적으로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

 

-독일의 직업교육시스템에 관심을 갖는 나라들이 있는가?

 “중국의 지역 상공회의소가 독일과 협력해서 독일식 직업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중국 젊은이들은 교육과정의 3분의 1은 학교에서 배우고, 3분의 2는 기업에서 실습을 한다. 또 3년의 과정을 마치면 독일처럼 기술자 자격증을 받는다. 재정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도 독일 모델의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도 수년 전부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도 독일의 경험을 참고해서 직업교육시스템을 도입하기를 권한다.”

 

-독일 경제는 히든 챔피언을 포함한 강한 중소기업들이 강점이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체제에 익숙한 한국으로서는 솔직히 생소한 면이 있다.

 “작은 것 자체가 강점이다. 즉 중소기업이라는 게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 섬유업체 고어텍스의 창업자인 빌 고어는 사업부서가 커져서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다시 작게 쪼개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기업가 정신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조직 규모가 최대 150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이 되면 조직이 경쟁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실제 독일의 경우 히든 챔피언의 생산성이 대기업보다 높다. 수천명, 수만명이 일하는 대기업은 직원들끼리 서로 모르고, 위에서 지시하는 것만 이행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직원들의 가족들까지도 서로 잘 알아, 강한 유대감과 일체감을 갖고 있다. 직원 한명 한명이 경영자와 똑같이 회사의 생산성 향상, 품질 개선, 신제품 개발 등을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경쟁력이다. 기업문화 측면에서도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성과를 추구하는 데 더 적극적이다. 직원들의 동기 부여에 더 유리하다. 작업을 작은 단위로 분리시키는 대기업에 비해 훨씬 유연하게 일할 수 있다. 직원들은 자신이 맡은 작업만 아는 게 아니라, 전체 작업 과정을 이해한다. 히든 챔피언의 종업원들은 모두 지식 근로자다. 문제 해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르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부쩍 높아졌다.

 “히든 챔피언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어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가 매우 중요하다. 1886년 설립된 자동차 부품업체 보슈는 사회책임경영의 좋은 사례다. 보슈의 창업자인 로베르트 보슈는 평소 ‘내가 돈이 많아서 임금을 많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임금을 많이 주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회사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주택을 지어주고, 노인들의 병을 치료해주었다.” 슈투트가르트(독일)/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전 세계에 2734개 독일에만 1307개

‘히든 챔피언’은

‘히든 챔피언’이라는 용어는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199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선보였다. 1996년에는 <히든 챔피언>이라는 책을 미국에서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2012년도 개정판에서 히든 챔피언을 ‘매출 규모가 50억 유로(한화 7조2500억원)가 넘지 않고,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세계시장 점유율 1~3위를 하는 강소기업’으로 정의했다. 헤르만 지몬은 이 기준에 따라 전 세계에 2734개, 독일에 1307개의 히든 챔피언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히든 챔피언의 정확한 숫자는 그 누구도 모른다고 봐야 한다. 이미 알려진 히든 챔피언 외에 가려진 히든 챔피언이 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독일의 히든 챔피언 수를 1600~1700개로 꼽기도 한다.

 

헤르만 지몬의 기준에 따른 히든 챔피언의 면모를 살펴보면 평균 매출액이 3억2600만 유로(한화 4700억원), 평균 근로자 수가 2037명이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중소기업보다는 중견기업에 가깝다. 하지만 히든 챔피언의 매출과 근로자 수 분포는 다양하다. 일례로 매출액 5천만 유로(725억원) 미만의 히든 챔피언도 25%에 달한다. 또 근로자가 200명 이하인 히든 챔피언이 22%를 차지한다. 작은 중소기업도 히든 챔피언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히든 챔피언의 매출액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62%다. 내수시장이 아니라 글로벌시장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제품구조는 산업재가 69%로 가장 많고, 소비재 20%, 서비스 11%의 순이다. 히든 챔피언의 회사 존속 기간은 40년 이상이 75%에 이른다. 100년 이상 된 기업도 34%에 달한다. 히든 챔피언에서 이제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프로이덴버그는 164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