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하는 일본
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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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고 행복한 일본’의 종언.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일본 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3·11은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준 최후의 일격에 지나지 않았다.일본 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는 요나하 준 아이치현립대 일본문화학부 역사문화학과 준교수의 <중국화하는 일본-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의 현대 일본 진단은 몹시 냉소적이고 신랄하다. 중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규모 역전, 삼성전자에 추월당한 소니 등을 얘기하면서 요나하 교수는 말했다. “일본에서 ‘혐한류’의 쇄국주의자가 위정척사파(조선 말기의 배외주의적 보수파)처럼 ‘한류 반대’를 외치고 있는 것이야말로 한·일의 위치가 19세기와 정반대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 ‘중국화’의 정도가 미미했기 때문에 메이지 일본이 서양화의 흐름에 편승하는 한편으로 뼛속까지 중국화를 끝냈던 조선왕조가 화이질서의 전통을 고집하다 쇠퇴했던 구도가 지금 역전되고 있다.”서구 근대를 중국화 산물로 규정에도시대 탈피하지 못한 일본에
복고적 우경화의 위험성 경고 이 책의 핵심어가 바로 이 ‘중국화’다. 지은이는 일본이 중국화를 외면하고 복고적 우경화로 계속 내달릴 경우 경제적 파산과 함께 제2의 북한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화라니, 지금의 중국처럼 되라는 건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일본 사회의 존재방식이 중국 사회의 존재방식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서기 960년 송 왕조가 등장하면서 완수한 중국 사회 틀의 대전환을 수용하는 것이다. 대전환은, 먼저 귀족제도를 폐지하고 황제 전제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송나라는 과거의 전면적인 실시를 통해 귀족 세습정치와 신분제를 뿌리째 뽑고 중앙에서 훈련된 관리를 지방에 파견하는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정착시켰다. 이처럼 정치는 일극지배의 지속가능한 통제체제를 만드는 대신 경제와 사회는 철저히 자유화해 시장 경쟁체제를 만들었다. 요나하 교수가 보기에 송대의 중국은 당 등 그 전의 농경 위주 봉건왕조들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다. 그는 이를 세계적 차원의 근대의 시작으로 본다. 근대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서구에서 먼저 시작된 것도, 서구를 모방한 일본이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니다. 이미 1000년 전 화약과 나침반과 종이·인쇄술을 발명하고 탈신분의 보편 이념체제인 주자학을 정립한 중국 송대에 시작됐다. 동양사가 나이토 고난의 ‘송대 이후 근세(전기 근대)설’이 대표하는 교토학파의 학설을 원용한 이런 주장을 요나하는 이설이 아니라 학계 정설이라고 얘기한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에 당의 율령제 등을 수입했지만 봉건제의 한계에 머물렀을 뿐 송대 이후의 중국화를 시도는 했으나 성공한 적이 없다. 대신 특유의 기나긴 ‘에도시대’를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이 오늘날의 시대 격변 속에 일본이 뒤처지고 있는 근본 이유라고 요나하는 얘기한다. 일본이 다시 변방으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저서 <나의 한국사 공부>와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에서 신분제 사회였던 에도시대 등의 일본과 중국식 탈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을 비교하고 중국식 군현제 사회가 오히려 유럽보다 훨씬 더 앞선 사회였음을 논증한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의 생각과도 닮은 점이 있다.요나하는 후진 유럽이 근대를 맞이한 것도 송대 이후의 중국 덕이라고 본다. 송대의 번성은 화폐 구실을 한 은의 엄청난 중국 유입과, 중국 선진문물과 사상·제도의 유출을 초래했다. 은 유통구조는 인플레와 유럽의 산업화·르네상스를 촉진했다. 다량의 중국 동전을 수입하던 일본에 그 수입이 끊기면서 연공 등의 금납화가 물납화로 퇴행했다. 그것은 도쿠가와의 승리와 에도시대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 시도한 것은 서구화였지만, 서구 근대가 중국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근본적으로 중국화였다. 중국화는 역사적 필연이다. 그러나 1차대전 뒤 공황과 더불어 봉건제로 복귀하는 ‘쇼와시대의 재에도화’가 진행됐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요나하는 본다. 중국은 명대의 짧은 반동복고와 청대의 근대 부활, 그리고 다시 마오쩌둥 시대의 일시적 후퇴와 덩샤오핑 개방·개혁 이후 근대로의 복귀를 거치면서 크게 보면 송대에 완성된 틀을 유지해 왔다. 오늘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후기 근대 이후 세계경제에서 일시적으로 빼앗겼던 압도적 우위를 되찾고 있는 것은 그 덕택이다. 요나하의 관점은 다분히 세계화·신자유주의 지지자의 그것으로 비친다. 요나하가 여전히 그런 생각을 고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본소득 제공과 이주 노동자 수입, 외국인 참정권 허용 등을 주장하면서 일본의 복고적 우경화를 비판하는 그의 활달하고 통큰 생각은 우리 사회 전략을 살피는 데도 참고할 만하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