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지그문트 바우만 |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새물결·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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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젠가부터 나에게는 ‘학살 전문가’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런데 이 단어에서 풍기는 위화감은 차치하더라도 가끔 주변의 반응과 질문에 힘이 빠질 때가 있다. 사회학을 전공했으면서 왜 그렇게 학살 같은 잔인하고 주변적인 주제에 천착하느냐는, 툭 던지는 듯 무심한 질문들. 그런 반응들에는 학살 같은 현상은 비사회적, 비일상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는 했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 집단학살이란 어떠한 광기에 의해 벌어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그 사회가 배태하고 있는 ‘역사성’과 ‘사회성’ 속에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2009년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를 번역·출간한 것은 그런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첫 대답이었다. 그리고 2013년 드디어 정일준 고려대 교수가 번역해 내놓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또한 이에 답하는 책이다.
이 책의 지은이 지그문트 바우만(사진)은 현재까지 57권의 책을 저술한 세계적인 사회학자이다. 그의 사회학적 상상력과 심원한 통찰력은 이미 한국에서 유명하다. 현대성과 포스트 현대성을 ‘솔리드’(고정성, 고체)와 ‘리퀴드’(유동성, 액체)로 개념화하는 독창성은 현대 사회와 오늘날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고 의심하는 사회현상에 대한 이러한 직감적이면서도 명쾌한 단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킨다. 바우만의 사회학적 개념들이 지닌 시의적이고 독창적인 면은 한국에서는 흔치 않았던 사회학 개념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 이전에 단 2권에 불과하던 바우만 책의 한국어 번역본은 2008년 이후 10권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의 한국어판 출간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우만을 세계적 석학으로 만든 이 책은 현대성에 대한 바우만의 사상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기 때문이다. 그는 홀로코스트와 현대성 사이의 친화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홀로코스트와 같은 (현대적) 제노사이드야말로 사회학이 그동안 만들어 갈고닦은 개념과 방법으로 씨름하고 천착해야 할 핵심 대상임을 역설했다.
“홀로코스트는 사악한 히틀러와 나치가 죄 없는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범죄이다.” 유대인들의 고난과 비극을 드러내는 이 이미지는 홀로코스트 산업의 위력 덕분인지 한국에서도 일반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정작 폴란드계 유대인인 바우만은 ‘벽에 걸린 그림’ 같은 이 이미지를 비판하고 스스로도 과거에 그런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다고 반성적으로 고백한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는 역사의 기괴한 탈선도, 문명사회라는 신체에 자란 암덩어리도, 일시적인 광기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주류의 유대 서사와 정반대로 바우만은 홀로코스트를 현대성과 정면으로 마주보게 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홀로코스트라는 ‘그림’ 아닌 ‘창문’ 너머로 본 것은 현대성이야말로 홀로코스트를 배태했고 언제 어디에서건 적당한 조건만 갖추어지면 다시 반복된다는 것이다.
도처에 잠복해 있는 ‘현대성’
조건만 맞아떨어지면 폭발
‘학살의 포드주의’는 진행형
바우만은 말한다. “홀로코스트는 우리의 합리적인 현대 사회에서, 우리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단계에서, 그리고 인류의 문화적 성취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태동해 실행”되었다고. 그렇기 때문에 홀로코스트는 현대 사회와 현대 문명과 현대 문화의 문제인 것이다. 분명 홀로코스트를 상상할 수 있게, 그리고 가능하게 만든 것은 현대성과 합리성이었다. 나치의 제노사이드는 유대인을 박멸해야 할 ‘해충’으로 인식시키는 극단적 인종주의가 이데올로기적 선동에 그치지 않고 ‘예외상태를 상례화’시키는 법 제도와 결합되어 작동했다. 그리고 광범위한 관료제 조직과 과학기술(전문가)의 결합은 효율적인 학살의 포드주의, 죽음의 대량생산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더욱 희생자들을 ‘대상물’이라는 노골적인 물리적 특성으로 환원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기능했다. 그 결과, 덩어리로 추상화된 ‘범주적 학살’이 가능했던 것이다.
강성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
이것은 바로 홀로코스트의 독특성과 평범성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보통 때는 따로 떨어져 있는 현대 사회의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요인들이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한곳에서 조우해 유일무이한 파괴적 결과를 낳는다는 것 말이다.
바우만은 이를 망각하지 말고 기억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한 조우에서 한데 모인 요인들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편재하며 정상적이다”라는 사실을. “악은 평범하면서 도처에 잠복해 있다.” 강성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