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수의 세상, 그리고 불평등_알랭 바디우 '세기'의 몇 문장을 보면서

2014. 3. 31. 00:41lecture



아래 나온 숫자는 알랭 바디우의 [세기]라는 책(이학사, 2014)에 나온 몇 가지 문장이다.


자본의 시대에 모든 것은 수로 환원된다. 수의 놀음, 자본은 노동에 대한 착취를 전제로 하지만, 자본의 모습은 수로 등장한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OECD의 우열은 수의 높낮이 따라 결정된다. 이 불온한 시대에 수로 상징되는 지속적인 확장과 정복의 욕구는 무한대를 의미하며, 이 세상이 신의 세상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정된 자원을 중심으로 일방에 의한 일방의 착위와 일방의 비대화를 의미한다. 인간의 세상에 평등의 내용물은 사라져 가고 있다. 저 생명에 대한 해석이 변화되고 있다. 생명은 무엇인가? 수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인가? 수로 환원될 수 있다면 생명은 무엇인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은 이 시대의 핵심 화두다. 완벽한 평등 또는 유토피아에 대한 환영은 세기를 오도하려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이거나 세기를 자신의 이념으로 재구성하려는 망상이다. 이 무수한 사람들과 생명들의 오묘한 조화 속에 구성되는 사회에서 불평등을 완화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 아니 그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것, 그것을 만드는 것 어쩌면 이것이 21세기의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래의 통계 수자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무엇을 위해 살고 먹고 일하고 있는 것인지? 생은 무엇인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저 무수한 절멸자들에게 우리는 이야기해야 한다. 그 절멸이 무의미가 아니었음을, 그것을 통해 알게 되었음을...그래야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다시 토론할 수 있고, 다시 행동할 수 있다. 불평등을 던지고 기회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 그것이다.




[이하, 알랭 바디우의 "세기" 중에서]


1. (2005년 글이므로 이 수치는 2005년 이전의 것) 유럽에는 에이즈에 감연된 사람이 대략 50만 명…아프리카에는 에이즈에 감연된 사람이 2,200만 명…치료약이 전무…거의 대부분이 사망할 것…죽어갈 사람들의 4명 가운데 1명, 아니 어쩌면 3명 가운데 1명이 아동…그런데 아프리카의 모든 환자에게 필요한 약을 분배하는 일은 완전히 가능…약을 생산하는 산업 수단을 가진 몇몇 나라가 동종의 약을 생산해서 해당 국민에게 넘기고자 결심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인도주의적 군대 파견에 드는 비(61)용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해당…이와 같이 행할 것을 결심하지 않는 정부는 결국 수천만 명의 죽음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자가 될 것을 결신하는 셈


2.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세 사람이 소유한 재산의 총합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48개 나라의 순수 국내 생산의 총합보다 더 많습니다.


3. 지구의 인류 전체에게 하루 2,700칼로리로 계산된 음식물, 물 그리고 기본적인 보건 위생을 제공하려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일에 드는 비용은 유럽과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1년 동안 향수에 쓰는 돈과 엇비슷합니다.


4.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20%의 사람들과 가장 부유한 20%의 사람들을 봅시다. 1960년에는 부유한 20%의 사람들의 소득이 가난한 20%의 사람들의 소득보다 30배 많았습니다. 그런데 1995년에는 82배나 더 많습니다.


5. 세계 70개 나라(세계의 40%에 해당하는 나라)에서는 [화폐가치나 물가 변동 등을 고려하지 않은] 불변의 수치를 적용하더라도 1인당 국민소득이 20년 전보다 오히려 감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