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행복 비결, 노르딕 가치 - 전문가 그룹 ‘애간지’의 북유럽 리포트 : 갈등 없는 사회
경쟁의 집단적 표출이 사회 갈등
서열 정하는 외재적 경쟁 대신
내적 성취 더 중요하게 여겨
‘필요 이상의 경쟁은 탐욕’
교육철학과 종교가 큰 역할
남다른 경쟁의 동기
![핀란드 헬싱키의 싱크탱크 e2 연구진과 토론하고 있는 ‘애간지’ 북유럽 방문단. [사진 애간지]](http://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710/08/a07f2913-a125-4d8c-919b-ade7ec311572.jpg)
핀란드 헬싱키의 싱크탱크 e2 연구진과 토론하고 있는 ‘애간지’ 북유럽 방문단. [사진 애간지]
경쟁이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경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사회와 문화마다 다를 수 있다. 가령 대한민국 국민에게 경쟁은 대개 부와 명예의 위계적 분배의 근거를 제공하는 ‘서열 정하기’다. 과연 북유럽에도 이런 의미의 경쟁이 보편화돼 있을까.
우리가 만난 북유럽의 대학교수와 연구원들은 이 질문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대답을 줬다. “우리에게도 경쟁은 있다. 우리 아이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 경쟁의 대상이 1차적으로 타자(他者)가 아니다. 경쟁은 자기 자신과 하는 것이다.” 감동 그 자체였지만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외적 보상이 아닌 내적 성취가 경쟁의 동기라니. 구도자의 어록에나 있을 법한 말이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성숙한 경쟁 인식이 존재할까?
결국 북유럽의 특별한 교육철학과 시스템이 경쟁을 내재화(‘자신과의 경쟁’)한 국민을 길러 내는 것이 아닐까? 핀란드 고등학교 교사들과의 솔직한 대화에서 찾은 힌트는 ‘자율성’을 통한 ‘보상의 내면화’였다. 학생들은 스스로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훈련을 한다. 하지만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그들을 우쭐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는 필요 이상으로 경쟁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탐욕이라고 가르치며, 스스로 선택한 것을 성취하는 것이 발전임을 강조하는 교육을 해 왔다.
우리는 이런 경쟁관이 북유럽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란 사실을 확인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기반에 종교(루터복음교)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물론 현재의 북유럽은 과거같이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코펜하겐대와 헬싱키대에서 만난 교수들은 예외 없이 북유럽의 가치는 루터복음교를 공통 기반으로 두고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절제와 배려인가, 아니면 탐욕과 지배인가? 종교가 왜 우리에게는 탐욕을 부추기고 그들에게는 탐욕을 제어하는 장치로 작동하는지가 정말 궁금했다.
남과 비교하고 서열을 정하기 위해 경쟁을 ‘외재화’한 사회일수록 행복은 모두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패자는 사회적 낙오자가 돼 승자를 원망하며, 결국 남의 것을 빼앗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성숙한 사회에서 패자는 성찰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원인으로 돌리고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경쟁을 내면적 보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교육과 사회적 태도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끌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경쟁을 내재화할 수 있는 문화와 교육 및 평가체계를 새롭게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경쟁의 내재화!’ 이제 화두는 우리를 향한다. “왜 우리는 이렇단 말인가?”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조광수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