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하는 세계
아서 I. 밀러 지음·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 544쪽 | 2만2000원

헬렌 파이너의 ‘리퀴드 그라운드6’(2010)는 인간의 몸을 연상시키는 옷들이 둥둥 떠다니며 그 중간쯤에 각종 장기가 표류하는 모습을 표현한 연작 중 하나다. 템스강에서 익사한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문학동네 제공
다빈치는 예술가인 동시에 과학자
뒤러도 과학 연구하듯 그림을 그려
뉴턴과 현대 물리학의 등장 이후
자연을 묘사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예술과 과학에 대한 인식이 분리
과학과 예술이 충돌한 ‘아트사이’
20세기 중반부터 예술가들 시도
끊임없이 발달하는 과학기술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확장·현실화
‘제3의 문화’ 될지는 미지수지만
예술·과학의 이분법은 사라질 것
원래 예술과 과학은 함께였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미술가는 회화와 조각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작가는 글로, 과학자는 수학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험한다고 생각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예술가이면서 과학자였다. 동시대를 살아간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는 과학을 연구할 때와 똑같은 탐구심과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들에게 예술과 과학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이작 뉴턴(1643~1727)과 현대물리학이 등장하면서 예술과 과학은 분리되기 시작했다. 뉴턴이 1687년에 출간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오직 순수하고 냉철한 논리만을 사용하여 지구와 천체의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 후 과학은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으로 간주된 반면 예술은 단순히 장식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과학자는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예술가는 붓을 휘두르는 살바도르 달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예술은 자연을 묘사하는 반면 과학은 자연을 분석하며, 예술이 대상을 통합한다면 과학은 대상을 분리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충돌하는 세계>(Colliding Worlds)는 ‘근래’ 들어 다시 만난 예술과 과학의 이야기를 다룬다. 저자 아서 I. 밀러는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과학사 교수이면서 때때로 직접 작품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는 예술가다. 밀러는 ‘과학계와 예술계의 충돌이 빚어낸,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예술’에 ‘아트사이’(ArtSci·Art+Science)라는 이름을 붙였다.
책은 1966년 뉴욕 맨해튼 렉싱턴가의 허름한 건물에서 시작한다. 동굴 같은 미국 주방위군 본부 건물에서 열린 ‘아홉 개의 밤: 연극과 공학’은 예술가, 공학자, 과학자들이 함께 마련한 최초의 행사였다.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션버그, 존 케이지, 앨런 긴즈버그, 수전 손태그까지 당대 유명인사들이 모였다. ‘4분33초’로 유명한 존 케이지는 뉴욕 시내와 전시회장 이곳저곳에서 전화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무작위 수집한 소리의 콜라주를 선보였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관객이 한명씩 무대로 올라와 설치된 착즙기와 믹서를 작동시켜 불협화음을 만들었다. 라우션버그는 라켓에 전선을 연결해 소리를 전송하도록 한 테니스 게임 ‘오픈 스코어’를 가지고 왔다. 라켓으로 공을 칠 때마다 ‘펑’하는 커다란 소리가 건물에 울려 퍼졌고, 48개의 조명이 하나씩 꺼졌다. 마침내 관객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남겨졌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개막식 티켓 1727장이 매진됐고, 1500명은 표를 구하지 못해 발길을 돌렸다. 9일 동안 1만1000명이 행사를 찾았다. 뉴욕타임스는 “이곳에 떨어진 폭탄은 뉴욕 미술계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 전시회를 주도한 사람은 미국전신전화회사(AT&T)의 벨연구소에서 일하던 물리학자 빌리 클뤼버였다. 그는 공학자들을 불러모아 예술가들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해낼 수 있도록 독려했다. ‘아홉 개의 밤’은 운영 면에서 지독한 악평을 받기도 했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예술적인 실패를 의미하지 않았다. “이 전시회는 즉흥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의도적인 무질서를 야기했다. 마침내 과학이라는 도구로 무장한 예술가들이 출연한 것이었다.”

팀 로스와 밥 포스버리의 설치작품 ‘먼 과거로부터’(2010)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데이터를 이용해 ‘원초적인 우주의 박동’을 표현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시연회에서는 카발리 프란케티 광장 정면에 녹색 레이저 빛으로 천체 데이터가 그리는 들쭉날쭉한 곡선을 투사했다. 문학동네 제공
예술과 과학을 ‘재회’ 시키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꾸준했다. 1950년대 초반부터 일상화된 텔레비전, 세탁기, 전화 같은 전자장치에서 다른 가능성을 본 예술가들이 있었다. 이런 장치들이 단순히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의 아마추어 수학자이자 예술가였던 벤 F. 라포스키는 텔레비전과 비슷한 오실로스코프 화면의 구불거리는 이미지에서 뒤샹, 말레비치, 몬드리안의 작품을 연상했다. 라포스키는 노출시간을 길게 해 화면에 출렁대는 이미지를 사진으로 찍어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을 선보였다. 이 이미지를 만든 것은 라포스키가 아니라 기계였다. 라포스키는 기계를 작동시키고,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를 선별했을 뿐이었다. ‘전자예술(electronic art)’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결국 ‘예술과 과학’은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음을 환기시킨다. 끊임없이 발달하는 과학기술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확장시키고, 그간 예술가들의 상상 속에만 머물던 작품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현실이 됐다. 이제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태블릿 등의 도구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고 3D 프린터의 보급으로 콘크리트부터 플라스틱, 생명 조직까지 출력한다. 붓과 물감, 테라코타와 대리석만이 예술의 재료가 아니다.

‘알바’라는 이름의 야광토끼는 에두아르도 카츠의 작품이다. 흰색 토끼에 해파리에서 추출한 형광 녹색의 단백질 유전자를 삽입했다. 문학동네 제공
물론 ‘고전적인 시각’에서 보면 ‘과학을 이용한 예술’은 관심을 끌기 위한 기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에두아르도 카츠는 2000년 흰색 토끼에게 해파리에서 추출한 형광 유전자를 삽입해 만든 ‘야광 토끼’를 선보였다. 2011년 마리옹 라발장테와 브누아 망쟁 부부는 “종의 경계,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며 말의 피를 자신들 몸에 주입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저자는 마지막 장 ‘제3의 문화가 도래한다’에서 길게 설명한다. “큐비즘 예술가들의 기원은 1930년대에 주류 살롱에서 거절당한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기획된 살롱 데 르퓌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 고갱, 로트레크, 피사로, 쇠라와 같은 예술가들은 기득권층으로부터 차례로 거부당한 뒤 자신들의 작품을 자유롭게 선보이기 위해 1880년대 힘을 합쳐 앙데팡당을 기획했다.”

1964년 벨연구소의 공학자였던 마이클 놀은 동료 수백명에게 컴퓨터가 그린 ‘선으로 된 컴퓨터의 구성’(오른쪽)과 화가 피트 몬드리안의 걸작 ‘선으로 된 구성’을 함께 보여주고 ‘컴퓨터 버전’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정확히 골라낸 사람은 28%였다. 문학동네 제공
과연 저자 말대로 ‘아트사이’가 ‘제3의 문화’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자예술’이나 ‘미디어아트’ 등 이제는 익숙해진 장르도 미술애호가들에게 그다지 인기 있는 분야는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간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다시 만난 예술과 과학이 다시 헤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1854~1912)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는 유용하기 때문에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며,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