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하지 말았어야 할 권한
2021. 12. 26. 11:44ㆍ파놉틱 정치 읽기
행사하지 말았어야 할 권한
사람이 많이 아프면 치료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프다 하니 형집행정지해서 치료하면 될 문제였다. 국민여론은 여전히 박근혜 前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번 대통령의 결정은 국론 통합보다는 상처를 줬다고 본다. 사면 반대는 세대가 내려갈수록 높다. 기성세대보다 더 오래 대한민국에 살아야 하고 앞으로 미래를 만들어갈 친구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탄핵 이후 수립된 정부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권한으로서 사면권은 있더라도 행사할 수 있는 사면권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국민의 이름으로 결정하고 헌재의 법률적 검토를 거쳐 결정된 탄핵 이후 탄생한 정부가 국민 상당수의 사회적 동의 없이 탄핵 당한 대통령을 사면한다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뇌에 찬 결단의 이유는 국민이어야 한다. 사면을 바라는 반대편 국민들의 이유는 탄핵을 부정하거나 박근혜 前대통령의 몸 상태가 걱정이 되거나 정치적 이유로 표를 얻기 위해 주장을 하거나 다양할 수 있다. 탄핵을 부정한다면 국민 결정을 부정하는 것으로 헌법 부정이고, 정치적 이해득실이어도 헌법 부정이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라면 형 집행정지로 충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차기 정부의 당선자가 국민 여론과 민심을 근거로 사면권을 결정했어야 한다. 대통령의 의미 설정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시대의 아픔을 딛고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시대는 아픔이 아니라, 상식과 정의를 가진 국민의 ‘슬픈 승리’였고, 그래서 미래로 갈 수 있었다.
이미 대통령의 사면권의 본뜻은 사라지고 정쟁의 수단이 되고 있다. 그렇게 사면을 요청하던 국민의힘 사람들이 왜 이명박은 사면하지 않느냐고 난리다. 보수진영을 이간질 하려는 이간책이라고 난리다. 물에 빠져 건져줬더니 이제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난리다. 박근혜 前대통령은 여전히 탄핵과 범죄 행위에 대해 사죄가 없다. 단지 사면복권에 감사할 따름이다.
정치평론가들도 가세했다. 낄 때 안 낄 때 다 끼는 진중권씨는 대통령이 선거판을 흔들려고 사면복권을 했다고 난리다. 대선을 앞둔 계산기 두드리기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막판까지 고뇌를 거듭한 대통령 결정에 대한 반응이다.
권한은 행사하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권한이 부여한 엄중한 의미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다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그리고 그것에 책임질 용기가 있을 때 해야 한다.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에 다가오는 온갖 유혹이 있다. 역사는 대통령 개인의 결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기꺼이 수용할 때, 시대의 의미로 남는다. 행사하지 말았어야 할 권한이다. 3개월만 기다리면 될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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