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국제정치적 파장과 한반도

2008. 10. 22. 15:55discourse & issue

금융위기의 국제정치적 파장과 한반도

박 형 중
남북협력연구실 선임연구위원

 


미국계 투자은행들의 내파에 의해 자본시장에서 1조 달러 가량의 경제적 부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미국 정부의 7000억 달러 구제금융 투입을 시작으로 세계의 많은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여러 가지 긴급하고 대담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그 전도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이번 금융위기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발생했기 때문에 당분간 미국이 경성권력과 연성권력의 양면에서 취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째,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발 경제침체 또는 불황이 미국 및 세계 경제에 끼칠 영향이다. 미국과 관련해서 보면, 전반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이에 비해 중국은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 즉 중국은 수출시장보다는 대내 성장과 소비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미국에서 대내 수요가 줄어들면 미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 전반의 경제성장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은 저성장으로 인한 실업 증가로 내부 정치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내수 소비 확대 정책을 펴야만 미국의 수입 감소를 대신할 수 있는 중국의 수입 능력이 증가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중국의 아시아 주변 국가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훨씬 증가할 수 있다.


둘째, 다음으로 주시해할 것은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전지구적 경제관리 차원에서 중국, 인도 등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지구적 경제질서 관리에서 지도력과 비용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에 의하여 주도되어 왔다. 개발도상국인 중국은 스스로 그럴 의지도 없었고, 또한 서방도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 서방의 도덕적 위신과 경제적 힘은 약화되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지구적 경제질서 관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뜻에 부합하게 지구적 경제질서 관리에서 안정판 역할을 해줄 것을 바라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의지와 능력의 생성, 지구적 경제질서 관리에서의 미국과 중국간 타협이 필요하다. 중국은 서방국가와는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즈음해서 분명하게 된 것은 경제적으로 미국과 서방의 헤게모니가 종식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미국의 대외정책적 측면에서의 영향을 분석해 보면 미국은 중, 장기적으로 불가피하게 보다 절제되고 비용이 덜 들어가는 외교안보정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먼저 매달 150억 달러에 달하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과 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국방예산은 삭감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서 미국은 여전히 이 문제 처리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미래의 핵심 지역인 동아시아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동안 미국은 세계적 초강대국 지위 유지를 위해 압도적 군사 우세를 지속하는 정책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성장이 저하되면 조세수입이 줄고, 여기에다가 재무부가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해 빌린 자금을 되갚아야 할 입장이다. 모든 것을 고려하면, 미국이 현재 계획하고 있는 군사부문 하드웨어 도입에 지불할 능력과 의지를 계속 유지하게 될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만약 군사비용이 삭감된다면,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 군사작전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핵심적 이익이 위협받는다고 생각되는 곳에 군사력을 집중하고, 미국의 역할이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는 지역에서는 군사력을 축소하거나 철수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도 이와 같은 재편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넷째, 미국은 국제질서와 지역질서를 운영하는데서 다른 국가와 부담 분담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질서가 지역국가를 중심으로 독자적으로 처리되는 것을 보다 선호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 호주 등 동맹국과 인도 등의 안보 역할 증대를 요구하는 한편, 중국의 지역강대국 위상을 인정하면서 이익타협과 함께 보다 적극적 역할을 유도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주변 국가들은 미국의 안보개입 및 미국 경제력 약화에 따른 중국 의존 증가라는 우려가 심해질 것이다. 특히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 능력의 약화에 대해 일본은 긴장하게 될 것이다. 미국 민주당 정부가
아시아의 파트너로써 중국을 중시하게 될 경우 일본의 불안은 커질 것이다. 일본은 대내외적으로 ‘보통국가’를 향한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고, 중국과 일본 간에 지역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강화되는 등 동아시아에서 불확실성이 증가할 것이다. 북한문제에 관하여 중국의 영향력은 강화되고, 일본의 독자적 목소리도 역시 증가할 것이다.


다섯째, 미국은 이란, 북한과 같은 적대 국가를 관여(engagement)를 통해 자제시키도록 노력할 가능성이 많다. 미국은 외교를 통해 전략적 경쟁을 약화시키도록 시도할 것인데, 만약 상대방이 호응해 온다면, 관계 개선으로 인하여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다. 미국 차기 정부가 북한과 관련하여 이와 같은 정책을 시도하는 경우, 중국의 협조를 얻기는 용이할 것이지만, 한국 및 일본의 입장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세삭감, 규제철폐, 작은 정부에 입각한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과 미국의 민주주의 확산 정책과 같은 연성권력의 매력이 현저히 저하할 것이다. 또한 경기침체에 지구온난화 방지 대책에 대한 비용 지출이 각국에서 저항을 받을 것이다. 해외원조 삭감 압력도 증가할 것이다.


금융위기가 끝날 즈음, 지정학적 그림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물론 미국의 초우세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보다 이기적인 국가가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은 다른 국가들을 자신의 뜻에 따라 설득하고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더욱 많은 힘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친구와 동맹 간에도 합의를 꾸리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국이나 북한 모두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대외정책에의 파급 효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