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6. 16:35ㆍ공간 일상 담론
베를린에서 진행된 출장답사의 모든 내용은 이동기 박사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중한 역사적 학습과 재담으로 엮어낸 베를린에 대한 설명은 압권이었다. 따라서 베를린에서의 내용은 이동기 박사의 온전한 몫이다. 만약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필자의 전적인 책임이다. |
2-1. 베를린호텔에서 Holocaust Mahnmal까지 가는 도중의 풍광
베를린의 아침은 고맙게도 청명했다. 이런 날씨를 만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역시 여행날씨복은 있는 것 같다(이 여행날씨복은 돌아오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돌아오는 뮌헨비행장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선 버스로 이동을 했다. 베를린에서는 표 한 장만 구입하면 하루 종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 베를린호텔 앞에서 바라본 시내 거리 풍경이다. 우리에겐 이색적이지만 이 도시에선 보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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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의 지하철은 개찰구와 같은 통로가 없다. 서울은 따고 내릴 때마다 카드를 대고 막대기로 막혀있거나 통로처럼 되어 있는 곳에 돈을 내었는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러나 베를린은 랜덤방식으로 검사를 한다. 재수 없으면 걸리는 것이다. 무슨 차이일까? 정부와 시민간의 신뢰의 차이일까? 지하철은 서울에 비해서 좋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서울의 지하철시설은 국제적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청결함에 있어서도 더 좋았던 것 같다.
베를린 지하철
* 베를린 시내 한 지하철 내부(어느 역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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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간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행보를 구획을 통해 가로막지 않는 방법은 의미 있게 다가왔다. 공간의 공공성에 대한 고려와 시민의 자유로운 활동을 결합시키려는 노력, 우리에게도 이런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공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골격이기도 한 것 같다. 베를린 시 당국은 이런 자유로운 이동을 점차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간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는 뉴욕시이다. 과거 뉴욕의 거리는 공포의 거리였다. 특히 지하철은 더욱 그랬다. 1994년 당선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범죄를 줄이기 위해 지하철 무임승차 단속과 지하철 낙서지우기를 5년간 지속했다. 그 결과 한 해 2,200여건이든 살인은 1,000여건 이상 감소했고, 범죄율도 75%나 급감했다고 한다.
공간의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일상의 사소한 변화가 커다란 변화를 잉태한 경험이기도 하다. 베를린시와 뉴욕시의 상이한 공간이용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기민당(CDU) 당사
* 기민당사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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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지나가는 도중에 기민당 당사를 볼 수 있었다. 배 모양을 한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우리 정당은 부정부패로 인해 당사를 농협 창고 건물로 옮기기도 하고, 또 당사를 팔아서 부패 이미지를 벗어던지려고 하는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 국민 또는 유권자와 일체감을 갖고 꾸준히 혁신하는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맞이할 수 있을까?(성향 상 사민당 당사를 찾아야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부분적으로 독일정당정치가 부럽다)
아니 어쩌면 정당정치라고 하는 것이 한정된 선택만을 강요하는 ‘제한된 선택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이 주권을 향유하는 시간과 공간은 어느 정도일까?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외침은 어쩌면 현실에선 공허한 소리가 아닐까?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선거라는 시간과 그곳에서 행하는 투표행위를 제외하고 도대체 내가 이 어느 경계 안의 주권을 가진 주권자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만약 평범한 시민이 투표하는 것 이외에 국가의 의사 결정을 관리할 그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한다면, 어떤 길이 해방적 정치를 향해 열릴 수 있는지 알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일갈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알랭 바디우, “사르코지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뉴레프트리뷰』(서울: 도서출판 길, 2009), p. 359>
정치의 현장 속으로
기민당 당사를 지나서 직진을 하면 보불전쟁 전승기념탑과 함께 아주 멋있는 모습의 노르웨이 대사관이 나온다. 청동이 녹슨 색깔로 겉면이 만들어진 건물이다. 이 거리가 과거 영주들의 사냥터였다고 한다. 지금은 공원화(티어가르텐)되어서 베를린의 허파와 같은 구실을 한다. 베를린의 허파와 같은 구실을 하는 이 공원은 역으로 빈민층들의 모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은 항상 역사의 궤적이 넘쳐흐르며 이미지와는 다른 많은 것들을 함께 품고 있는 영역인 것 같다. 과거 가진 자들의 사냥터가 현재 베를린 시민들에게 맑은 공기를 만들어내는 공간임과 동시에 가지지 못한 자들의 마지막 휴식처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 보불전쟁 전승기념탑이 보이는 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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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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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의회
이곳을 지나면 대통령관저가 나오고 조금 더 지나면 총리관저와 연방의회가 나타난다.
* 대통령 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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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리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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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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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의회는 독일의 슬픈 역사가 남겨져 있는 건축물이다. 1933년 1월 31일 나치가 권력을 잡은 후 2월 초에 이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은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치가 네덜란드 출신 공산당 당원(정신박약자)이 방화를 저지른 것이라고 음모로 몰아가면서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아직도 논쟁중이라고 한다. 논쟁을 즐기는 나라가 독일인가보다. 심의민주주의라는 것이 구현되어서일까.
우리 사회도 많은 논쟁과 긴 논의가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 빠른 결정이라는 효율이 압도하는 사회에서 사회의 교정 가능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을 결정한다는 것, 특히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개진되고 내부의 논쟁을 통해 교정되고, 그 실천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것까지 논의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최근 대강 지칭하여 ‘미디어법 22개’를 둘러싸고 의회가 복잡하다. 이제 ‘직권상정’은 국민들 모두가 아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불가피한 상황이 그리도 많은 것일까? 세상에 불가피한 상황이 많아지면 국민만 피곤해진다. 그래서 100일 만에 합의를 보기로 결정은 한 것일까? 21세기 방송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단어이다. 이 방송의 변화를 100일 동안 협의해서 결정하겠다는 발상부터가 우습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괴벨스(Goebbels, Paul Joseph)에 이루어진 선동정치의 결과에 대해서 말이다. 히틀러의 충실한 관리였던 괴벨스는 라디오를 통해 전 국민을 선동했다. 부지불식간에 독일 국민들은 라디오의 포로가 되었다. 그 결과는 홀로코스트로 지칭되는 대학살이었다. 히틀러, 괴벨스의 개인적인 권력욕과 야심으로만 홀로코스트를 규정할 수 없다.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했던 그 많은 동조자와 방관자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독일 국회의사당에 새겨진 말을 다시금 반추할 필요가 있다. “독일국민에게 봉사한다.”(Dem Deucschen Vol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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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회도 “한국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정신이 구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개진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 지난한 논쟁을 거쳐 만들어지는 사회적 합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 연방의회는 탈정치화의 향락이 판치는 곳이기도 했다. 나치는 연방의회 지하를 주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의회주의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다. 만약 한국 국회의사당 지하에서 주점을 차리고 이곳에서 술을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나치가 의회를 어떻게 사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연방의회 건물 앞에서 제국의회 국회의원 중 살해당한 국회의원과 당 소속을 적어 놓은 비문들이 있다. 기억하려고 하는 독일의 노력이다.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다시는 재생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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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향락의 공간에 1945년 4월 소련군이 최초로 입성하여 의회건물 옥상에서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 역사의 복잡함과 슬픔이 배어나오는 공간이다. 어떤 자들은 향락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어떤 자들은 나치의 마지막을 알리는 깃발을 휘두르고…그곳에 주인인 독일 국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 국회의 모습은 어떤가? 국회의사당 지하는 출입 문제를 두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공간이다. 일방통행을 위한 격전이 벌어진다. 끊임없이 분리의 선을 긋고 자신의 정당성만 주장하면서 국민을 대상으로 선동을 한다. 그곳에 진정 국민이 존재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쟁의 중심에는 항상 국민이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에 이탈리아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의 탄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미디어법’ 개정문제를 이렇게 ‘속도전’으로 진행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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