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9. 11:16ㆍ공간 일상 담론
2-2. 베를린호텔에서 Holocaust Mahnmal까지 가는 도중의 풍광
아! 분단의 선
* 베를린 장벽을 표시한 것이다. 이곳은 과거에 장벽에 의해 동과 서를 갈라져 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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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의회 건물을 조금 지나, 한 도로 앞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한 개의 선이 그어져 있다. 베를린장벽이 놓여 있던 곳이다. 동서냉전의 상징이자 독일 국민을 둘로 갈라놓았던 분단의 장벽이다. 한국에게 베를린장벽은 동병상련의 상징물이다. 분단 철책선과 장벽이 아직도 놓여 있는 한반도의 상황에서 베를린장벽은 슬픔의 동일물임과 동시에 부러움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언제쯤 베를린장벽처럼 한반도의 분단장벽이 허물어질 것인지.
그 선을 넘어서는 느낌은 색달랐다. 우리에게 그 선을 넘는 행위는 금기이며 위법행위이다. 그 길을 넘어 통일과 평화를 말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문익환 목사님이, 황석영 선생님이, 임수경씨 등 많은 사람들이 분단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당해야만 했던 경계선이었다. 우리에게 경계선은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이 경계선은 우리 사회의 분단 역사에서 마음 속 깊이 패인 또 다른 경계선을 만들었다. 서로를 부정하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마음의 장벽을 말이다. 우리는 두 개의 장벽을 등에 지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장벽과 마음에 들어박힌 장벽…
* 저 가운데 선이 베를린장벽이었다. 지금은 표시로 남아 있다. 우리는 아직도 현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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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님의 생생한 시가 생각난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가 현실이 되는 날이 오기를, 통일이 아니어도 서로가 서로를 자유롭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언제까지 세계화 시대에 이 장벽들을 남겨두고 갈 것인지 서글프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
故 문익환 목사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풀어버리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살 스무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한마음
그래 그 한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딩굴겠지
사십사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고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그렇게 나는 베를린장벽의 선을 넘었다. 너무도 가뿐이, 너무나 순식간에 넘어와 버린 그 선…그래 이렇게 넘어서면 되는 일인거야. 그렇게 속으로 되뇌이지만 현실은, 우리의 장벽은 너무나 거대해보이기만 하다.
조금 더 걸어서 우리는 브란덴브르크문에 도착했다. 또 하나의 독일분단의 상징, 브란덴브르크문…
* 브란덴브르크문의 전경이다. 분단과 슬픈 역사가 담겨진 조형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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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맨 위에 있는 사륜마차는 기구한 운명을 걸어 지금 그 자리에 놓여 있다. 나폴레옹이 통째로 실어갔다가 나중에야 다시 가져다가 설치했다고 한다. 전쟁과 포획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쟁은 약탈과 희생을 의미한다. 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은 전쟁 속에 희생되고, 고귀한 가치들은 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약탈되었다. 그 공간에 있는 문화 상징물들은 사람이 지키지 않으면 그 스스로 지켜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공간에 그것이 있을 때 그것은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아집과 전리품의 욕심에 의해 사라지거나 없어져버린 것들…사람들은 희생되고 공간은 제 모습을 잃어버린다. 전쟁의 역사가 만든 또 하나의 슬픔이다. 이것을 멈출 수 있을까? 이것이 멈추어지면 세상도 멈추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역사를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공간에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심장으로 밝은 여명을 보는 것일까. 시간을 통해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은 유한한 빛으로 무한한 세상을 비추는 작업인 것 같다. 그래서 그 유한한 빛은 너무나 반짝이는 것이고, 그래서 그 유한한 빛으로는 무한한 세상을 열 수 없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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