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4-2) 주마간산 기억 떠올리기: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2009. 3. 25. 18:19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4-2) 주마간산 기억 떠올리기: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1번

 

1933년 오페라광장, 분서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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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이 있던 장소에서 독일판 ‘분서갱유’가 벌어졌다고 한다. 어울리지 않는다. 오페라광장에서 책을 태우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1933년 5월 10일 밤 10시, 베를린 오페라공장에서 불온작가로 찍힌 131명 작가들의 2만 5천여 권의 책이 불 속으로 처박혔다고 한다. 이 현장에서 그 유명한(?) 괴벨스는 “유대인들이 길거리 문학의 불순함과 더러움으로 도서관을 채우던 시대, 과학이 뒷전으로 물러나 삶과 괴리되어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도 선언했다. 이 해 봄, 30여 개 대학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책을 태우면 모든 것을 없앨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모든 역사에서 독재자들은 왜 그리도 책을 태우지 못해 안달인가 말이다. 저 멀게는 진의 시황제부터 시작되어서 히틀러, 그리고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자유민주주의를 찬양했던 독재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북한도 1960년대 중후반 많은 책들의 사라졌다.

 

한국도 매한가지였던 것 같다. 금지곡은 흘러간 옛 노래가 되었지만, 요즘도 금서라는 말이 나돌아 다니니 말이다. 통금에 장발단속, 미니스커트단속…금지와 단속의 시대를 살아온 것이 한국 아니었던가.

 

흄볼트대학, 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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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볼트대학은 원래 궁전이었다고 한다. 궁전을 대학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니,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왕족이나 귀족이 된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고풍스럽다 대학의 전경이. 입구에서 책을 팔고 있다. 대학 냄새가 물씬 풍긴다. 우리 대학처럼 계속 공사만 하고 옛 모습은 사라지는 것에 비하면 정겹다.

 

왜 학문의 역사를 계속 장식으로 덮어버리려고 할까? 유리로 새로운 벽돌로 치장을 하면서 속살은 아예 철거되거나 감춰져 버렸다. 강의실은 온통 신식 장비들로 대체되어 간다. 깔끔하고 사용하기 편리하긴 하지만, 뭔가 하나가 빠져 있는 듯한 느낌…2%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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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1번이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흄볼트 대학 내부에 들어서면 바로 정면 벽에 새겨져 있다. 학교 당국이 없애려고 했지만 학생들이 싸워서 지켜냈다고 한다. 역시 중요한 것은 실천인가보다. 실천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것을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찍어볼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역사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 사라지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것처럼 말이다.

 

우리 대학에서는 자본론 강좌가 폐강되고, 정치경제학이 쇠퇴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 많은 국가들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용도 폐기되었다. 레닌의 동상은 파괴되었다. 하지만 왜 당대에 새로운 학문이 등장했는지, 왜 당대에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했는지 알아야 한다. 금융위기라는 전세계적 쓰나미가 불어 닥치고 난 후, 우리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것인가? 오랜 시간 동안 군림할 것으로 여겨졌던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이제 각 나라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 이제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에르바하의 것을 포함하여)의 주된 결함은 대상, 현실(Wirklichkeit), 감성(Sinnlichkeit)이 단지 '객체 또는 관조(Anschauung)'의 형식 하에서만 파악되고, '감성적인 인간 활동, 즉 실천'으로서, 주체적으로 파악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활동적' 측면은 유물론과 대립되는 관념론―이것은 물론 현실적이고 감성적인 활동 그 자체는 알지 못한다―에 의해 추상적으로 전개되었다. 포이에르바하는―사유객체와는 현실적으로 구별되는―감성적 객체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활동 자체를 '대상적' 활동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의 (Wesen des Christenthums)본질』에서 오직 이론적인 태도만을 참된 인간적 태도로 보고, 반면에 실천은 단지 저 불결한 유대적 현상형태 속에서만 파악 하고 고정시켰다. 따라서 그는 ‘혁명적인’, ‘실천적·비판적인’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2. 인간의 사유가 대상적 진리를 포착할 수 있는지 여부의 문제는 결코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인' 문제이다. 인간은 실천을 통해 진리를, 즉 그의 사유의 현실성과 위력 및 현세성(Diesseitigkeit)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유의 현실성 혹은 비현실성에 대한―이 사유가 실천적으로 유리 되어 있다면―논쟁은 순전히 '공리공론적인(scholastische)’ 문제에 불과하다.

 

3. 환경과 교육의 변화에 대한 유물론적인 학설은 환경이 인간에 의해 변화되고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따라서 이 학설은 사회를 두 부문―그 중 한 부분은 다른 한 부분보다 더 우월하게 된다 ―으로 나눌 수밖에 없다. 환경의 변혁과 인간 활동 혹은 자기변혁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또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4.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자기소외(selbstentfremdung)라는 사실, 즉 세계가 종교적 세계와 현실적 세계로 이중화(verdopplung)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종교적 세계를 그 세속적 기초 안에서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세속적 기초가 그 자신으로부터 이탈하여 구름 속에서 하나의 자립적 영역으로 고착된다는 사실은 이 세속적 기초의 자기분열 및 자기모순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속적 기초 그 자체는 우선 그 모순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다음에는 이 모순을 제거함으로써 실천적으로 변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예컨대 지상가족이 신성가족(heilige Familie)의 비밀임이 폭로된 이상은 이제 지상가족 자체가 이론적 및 실천적으로 전복되어야 한다.

 

5. 포이에르바하는 '추상적 사유'에 만족하지 않고 '직관(Anschauung)'에 호소한다. 그러나 그는 감성을 '실천적인' 인간적·감성적 활동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다.

 

6.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적' 본질 안에서 해소시킨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어떤 개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ensemble)이다. 이렇듯 현실적 본질에 대한 비판으로 들어서지 못한 포이에르바하는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 1. 역사의 진행을 도외시하고 종교적 심성(Gemuet)을 그 자체로서(fur sich) 고정시키며, 따라서 하나의 추상적인―'고립된'―인간 개체를 전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2. 따라서 그 본질은 단지 ‘유(Gattung)’로서만, 다수의 개인들을 '자연적으로' 결합시켜주는, 내적이고 침묵을 지키는 보편성으로만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7. 따라서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심성’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 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분석한 추상적 개인이 사실은 일정한 사회형태에 속해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8. 모든 사회적 생활은 본질적으로는 '실천적'이다. 이론을 신비주의(Mystizism〔us〕)로 유도하는 모든 신비는 인간적 실천 속에서, 그리고 이러한 실천의 개념적 파악 속에서 그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낸다.

 

9. 직관적 유물론, 즉 감성을 실천적 활동으로서 파악하지 않는 유물론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개별적 인간의 직관, 즉 시민사회의 직관이다.

 

10. 구태의연한 유물론의 입지점은 시민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지점은 인간적 사회 또는 사회적 인류(die gesellschaftliche Menschheit)이다.

 

11.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역사박물관으로

 

이제 우리의 중요한 방문지 중 하나인 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 방문의 주요 키워드 중에 하나가 박물관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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