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7. 16:05ㆍ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5) 역사와의 대면: 독일역사박물관
입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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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독일의 역사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위해 독일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역사박물관은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를 돌아다닐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다. 미래라는 박물관으로 들어가게 하지는 않지만, 과거 역사를 통해 당대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추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다.
특히 이 박물관을 간 이유는 분단된 시절, 동독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언제나 그렇듯이 동시대 분단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독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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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모습, 하나는 중세의 철갑과 제2차 세계대전의 상징과 같은 나치복장
폭력의 상징복장이다. 갑옷으로 무장한 전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복과 살육이다. 조국과 민족의 방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저 거짓말일 뿐이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방어를 할 필요가 없다. 이런 논란이 발생하면 항상 중도적 입장을 가장하면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으로 무마하는 것이 관례다. 이런 관례들의 축적이 방관과 방조의 창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치의 무모한 기획 속에 전 세계는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하이 히틀러’라는 말은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함축하기도 하지만, 정복과 폭력적 차별의 자기 합리화가 내장되어 있다. 그러한 구호를 통해 도덕도, 평화도, 공존도 블랙홀 속으로 빠져 들어가 나오지 못했다.
갑옷을 벗어던지는 것, 획일화 된 복장을 벗어 던지는 것, 우리는 이런 해방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의 세상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우리는 실수(?)를 통해 실체를 발견한다. 무수한 죽음이라는 태산 앞에서 살육의 실상을 알게 된다. 때는 이미 늦어버린다. 생을 복원할 길은 없기 때문이다. 영혼의 진혼곡은 부를 수 있을지언정 생을 복원할 수 없다. 그들의 영혼을 불러내어 한판 ‘살풀이’를 한들 그들의 움직이는 생명력은 이미 멎어버린 뒤다.
1945~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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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패배 후에 점령군에 의해 장악된 독일, 갈기갈기 찢어져 분할된 땅을 만듦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를 막으려는 연합군들의 움직임. 1945~1949년은 독일이 두 개의 땅으로 갈라지는 경계선이 만들어진 시점이다. 전 세계의 동서냉전을 알리는 구분선, 경계선이 만들어진 시간…
한반도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1945년 8월의 해방과 1950년 6월의 한국전쟁 기간 동안, 우리는 분할된 공간에서 스스로의 체제적 선택보다는 강제된 선택을 강요받았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백성들에게 스스로 자존하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권한은 없었다. 끊임없는 좌우간의 갈등, 중간에는 설 수 없었던 그 위태로운 시간들, 분할선을 따라 전개된 지속적인 폭력, 이런 모습들은 내전 아닌 내전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전쟁으로 귀결되었다. 엄청난 죽음으로 귀결되고, 합체되기 어려운 휴전선은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경계선으로 남아 있다. 헤어짐의 고통도 전혀 해결되지 못했다. 그 과정의 상처는 우리에게 무엇 무엇은 절대 말하지 말아야 하는 금기의 심성선을 만들었다. 남과 북은 전쟁을 이데올로기로 활용했다. 반공과 반제국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체제와 공산체제로 구분되는 이분법적 세상에서 경계인들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분단의 역사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경계인으로 내몰려 체포, 투옥되었고, 죽음으로 내몰렸다. 벽을 허물고 함께 사는 세상을 고뇌한 사람들은 경계인으로 규정되어 또 다른 제3의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우리는 온통 갈라진 선 속에 갇혀 있다.
독일의 분단도 우리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길로 인도했을 것이다.
1949~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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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40년이란 시간 동안 분단은 유지되었다. 그 분단 동안 장벽은 건설되었고 그 장벽을 둘러싸고 고통과 죽음이 늘어만 갔다. 이 암흑의 시간 동안 동독국민들은 슈타지의 감시 속에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야만 했다(이 고통스럽던 슈타지 감시 하의 동독 일상사는 라이프찌히의 슈타지박물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동독의 국가공안국(독일어: 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약자 MfS)은 슈타지(독일어: Stasi, 국가공안을 뜻하는 Staatssicherheit에서 유래)로 흔히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국가공안국(STASI)을 국가공안보위(독일어: Staatssicherheitsdienst)의 약자로 칭하기도 하였다. 국가공안국은 동독의 보안 비밀경찰과 첩보조직이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도 동독민들은 끊임없이 저항하고 소통했다. 권력이 지시하는 일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르게 활용했으며, 사회주의 공업화를 위한 전투의 현장 공장에서 쉼 없는 노동보다는 그 시간을 전유하여 자신의 ‘공작의 시간’으로 활용했다. 전망 없는 미래, 무의미한 노동, 말할 수 없는 사회,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공간…이 숨 막히는 일상세계에서 그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실천했고 무엇을 갈구했을까?
역으로 이 시간 동안 권력이 지시하는 일들을 방조했으며, 때로는 승진과 권력, 욕망과 풍요를 위해 적극적인 권력의 전위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욕망의 전차는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욕망의 다음 역을 향해 질주해가듯이, 많은 동독인들도 그들의 욕망을 위해 협조하고 감시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동독민들의 실천행위들이 엮어낸 역사가, 바로 지금 박물관에서 보고 있는 일상생활세계였을 것이다. 일상,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렵기만 한 일상…주제를 잡아도 어려운 것을 잡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 일상의 축적이 세상을 뒤흔드는 저수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경계를 넘어 세상으로 차 넘치듯, 지금은 고요해 보이는 저 공간이 한순간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동독민의 일상 삶
동독민들의 일상 삶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들이 얽히고 얽혀 만들어내는 창조성을 어떻게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그저 박물관에 모여 있는 전시물들을 보고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몇 컷의 사진으로 대신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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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독민들의 의상과 텔레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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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독민들의 사용하던 가전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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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독민들의 타고 다니던 ‘트라비’. 이 차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몰고 다니는 시간보다 수리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니 말이다. 수리할 부품도 없었다고 하니 더 가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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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독민이 거주하던 거주공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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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 들어 선 베를린장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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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 들어 선 베를린장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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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시위에 사용된 현수막
나오는 길에 약간을 아쉬웠다. 너무 주마간산으로 독일역사를 보고 나와서 였을까? 아니면 좀 피곤해서 그랬을까? 하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독일의 역사를 알았던 시간이었겠지 하며 자위해 본다. 갑자기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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