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1. 14:53ㆍ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9-1) 장벽을 사이에 두고 걷기: 기억으로 들어가 버린 베를린장벽
이른 아침 식사, 이렇게 아침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언제였을까, 빵, 고기, 과일을 듬뿍듬뿍 5번을 왕복하면서 식사를 즐겼다. 어제의 피로 때문인지 몸 안으로 마구마구 들어간다. 하루 만에 유럽인으로 재탄생이 된 것일까? 한국 음식 아니면 유독 몸 안에서 받지 않았던 체형이었는데 맛있다. 아마도 지난번 모스크바에서 4박 5일 동안 음식에 맛을 들였던 기억을 몸이 잊어버리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 나니 아침부터 잠이 밀려온다.
자 오늘은 베를린장벽으로 가보는 날이다. 출발, 신호와 함께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다. 머리는 맴맴, 다리는 휘청휘청, 눈은 가물가물…. 이거 오늘도 아마 강행군이 될 것 같다. 배를 너무 채운 건 아닐까?
* 베를린 중앙역(Berlin Hauptbahnh) 정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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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베를린 중앙역에서 간단한 쇼핑을 했다. 상품화의 물결은 어디든 파고들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 같다. 베를린 역도 새롭게 만든 것 같은데 좌우 모두가 상점들로 가득하다. 옛스러움은 찾아볼 길이 없고 상품 진열장처럼 상점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몇 가지 기념품을 사고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우리의 여정은 베를린 장벽지역인 Nordbahn 지역이다. 이 지역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도시 외곽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지역의 역사를 보면서 좀 낡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지하철역에는 자전거들이 주차해 있다. 지하철과 자전거의 만남, 베를린 어디에서든 자전거 행렬을 볼 수 있다. 그 만큼 자전거가 생활화 되어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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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도심 외곽도 이런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금씩 변하고 있긴 하지만 더디기만 하다. 자전거를 많이 이용한다고 해서 지구의 환경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도 숨을 쉴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의 방향은 사람이 땀을 쏟아내는 것이다. 화석연료로 더 이상 발전을 이룰 수 없는 한계지점까지 다다르게 되면 대혼란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 이전에 조금씩 숨통을 트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목 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이 대안이다. 더 중요하게는 자본의 욕심을 적극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제도와 관행의 변화가 되겠지만 말이다. 자본이란 놈은 그리 쉽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니 사람들이 그 자리를 조금씩 만들어가면서 자본이란 놈도 교화를 해야 할 것 같다.
첫 눈으로 본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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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도 드물고 차량도 그리 많지 않은 동네다. 사진에 보이는 벽 같은 모양이 베를린장벽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가로운 장소가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며, 헤어짐의 상징이라니…. 그리고 이 장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그 옆으로 우리는 한 눈에 베를린장벽을 만날 수 있었다. 세월의 흔적과 자국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벽, 온갖 낙서와 상흔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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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장벽의 붕괴가 있기 전에 이곳에 이런 장난 아닌 장난을 할 수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벽의 붕괴에 자유의 도래만이 이런 흔적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도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장벽, 그것은 독일의 과거 역사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현재의 역사다. 아직도 통일을 막고 있는 장벽을 우리는 허물지 못하고 있다. 그저 위안이 되는 것은 개성공단으로 가는 도로이고, 개통된 철마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로이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장벽과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다.
경계, 그것은 차이를 넘어 차별의 상징이다. 그 선을 위 아래로, 또는 좌우로 해서 이념으로 갈리고 제도로 분할되고 무기로 겹겹이 에워싸여 있다. 그 선을 무모하게 넘는 자들에게는 징계와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모두 자신의 자리에 안주할 수밖에 없다. 애써 경계 넘어에 대해 외면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을 쌓여가고 그렇게 서로는 멀어지고 그렇게 서로는 증오하고 그렇게 서로는 멸시하고…. 하지만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고 그렇게 서로를 만나고자 했으며 그렇게 서로를 감싸 안으려고 했던 기억들도 동시에 담겨져 있다.
그래서 경계는 차별의 선임과 동시에 만남의 선이며, 대동의 큰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접경선이다. 헤어짐과 만남을 동시에 상징하는 선,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상징하는 선, 아픔과 질긴 인연을 상징하는 선…. 언젠가 허물어질 선. 그것이 분단의 선이며 장벽이다. 그 상징이 허물어지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 그 단순한 진실을 가는 길은 그러나 너무나 멀기만 하다. 그래서 베를린장벽의 현재 모습은 우리에게 부러움의 장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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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틈새, 쇠창살 넘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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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가 되어 장벽의 틈새를 들여다봤다. 그것은 폐허, 사람도 건물도 없고 황무지처럼 버려진 모습들…. 그렇게 많은 시간 그 땅은 차가움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엔 잡초만 무성하다고 했던가. 그렇게 잡초 덩어리들로 쌓여진 틈새의 공간에 사람은 없다. 그래서 온기도 없다. 차갑게만 느껴지는 땅….
많은 사람들은 장벽의 틈새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그 틈새를 통해서 부모를 형제를 친구를 사람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틈새는 장벽의 부분이지만 틈새는 만남의 작은 공간이다. 틈새가 넓어져 장벽은 무너지고 사람이 만났을 것이다. 경계와 틈은 동시에 존재하고 헤어짐과 만남도 동시에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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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넘어서면 이제 철책선이 우리를 기다린다. 철책은 그나마 반대편을 쉽게 볼 수 있다.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경계를 막는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서로를 위안 삼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분단 당시에 이렇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게 쉽기야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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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쇠창살 같은 경계 너머에 보이는 무덤…. 선을 온 몸으로 넘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죽음…. 온 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려는 몸짓이었던, 너무나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자유를 위한 가시밭길 헤치기이었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길을 건너다, 그 경계를 건너다 그렇게 사람들은 죽어갔다.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누가 부여했던가. 국가라는 존재, 이념이라는 존재가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어떻게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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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국가를 고민해본다. 다시 이념을 고민해본다. 우리는 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고, 우리는 왜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 장벽을 쌓는 국가와 장벽을 허물려고 하는 국민,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어야 하는가? 조용히 서 있는 십자가를 보면서 어쩌면 저 십자가가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저 곳이 아픈데 이 곳인들 안 아프겠는가. 아프게 서로를 보듬어 안으면 희망이라는 것이 다가올 수 있을까? 희망이란 단어도 때늦게 다가오는 것 일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때늦게라도 다가와 준다면,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게는 슬프지만 희망을 만들었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계속 맴도는 의문부호들…. 확정할 수 없는 많은 것들, 그래서 지나간 역사와 시간을 가정할 수 없고, 다가올 미래를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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