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5. 10:57ㆍ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8-1) 경계인(?)을 만나다 : 송두율 교수와의 저녁식사
첫 날 여정을 모두 끝마쳤다. 힘들고 고단하지만 많은 고민과 화두를 던져 준 하루였다. 홀로코스트에서 동독까지 지나간 시간만큼 이해하기 힘든 여정이었고 두뇌 회로가 많이 충돌한 시간이었다. 아마도 오늘은 비일상의 극치였던 시간이었을 것이고, 일상으로 돌아가 고민하고 작업할 숙제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약속은 송두율 교수님과의 만남뿐이다. 그 이후에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 푹 잠을 자는 일만 남았다. 내일의 기동을 위해서라도 오늘의 숙면은 필수적이다. 나에게 낯선 땅 독일, 그리고 아직도 경계인으로 남아 베를린에서 교수생활을 하시는 송두율 선생님과의 만남은 한편으론 기쁨과 한편으론 긴장이 교차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다. 베를린 시내 식당에서의 조우…무슨 얘기들이 오고갈까? 이렇게 만남은 공간과 시간으로 버무려져 부분적인 예상과 부분적인 반전과 부분적인 새로움이 뒤섞인 비빔밥 같은 것이 아닐까? 어떤 맛이 날지는 지나봐야 아는 것…
천식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다는 얘기를 들어서 얼마나 안 좋으실까 걱정 했는데, 그런대로 괜찮으시다고 말씀을 하셔서 다행이다. 천식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다고 한다. 그 많은 시간 고통과 인내 속에 견뎌온 육신이 탈이 안 나는 것도 이상하다. 분단과 독재의 시대를 관통했던 그 아픈 역사가 배어있는 육신과 영혼이 생채기를 하듯 몸살을 앓고 계신 것 같다. 그래도 많이 좋아지신 편이라는 말씀에 마음이 다시금 놓인다.
천식이라는 것이 쉬운 병이 아니다. 숨을 쉬기 힘든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지는 쉬이 알 수 있을게다. 영혼이 숨쉬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이제 육신이 숨쉬기도 힘든 상황이 겹친 것이다. 우리 역사가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부탁이다. 빨리 건강을 되찾아서 우리에게 학문적 가르침을 주시길….
그 놈의 ‘내재적 접근법’
개인적으로 송두율이란 이름 세 글자를 접한 것은 1990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재적 접근법’이란 새로운 단어였다. 이미 글은 몇 년 전에 발표가 되었지만 뒤늦게 접했다. 북한을 연구함에 있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즉 대상을 연구하는 방법론은 어떠해야 하는가? 또한 비교연구와 내재적 접근과의 관계 등…. 새로운 이야기였으나 학문적 수준도 떨어지는 아주 젊은 시절이어서 그저 그런 것이 있나보다 하고 스쳐지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학문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내재적 접근법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소위 우파들은 국가보안법으로 단죄하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북한연구 진영에서도 심각한 논쟁의 소재가 되었다. 어쩌면 한 번은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할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강하다기 보다는 상처만 재생산했던 논쟁이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송두율 교수님 말씀대로, “어떻게 타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는 고래부터 학문적 화두였다. 그것은 하나의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시선의 각도, 대상의 명암, 대상과의 거리, 거리 사이의 공기, 대상물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장애물, 보는 자의 시선과 연결된 뇌의 구조, 보는 자의 기억적 축적물과 구성된 인지구조 등 다양한 조건과 환경에 따라 대상은 다르게 우리의 시선에 다가온다. 그 차이의 문제에 대한 고민…즉 다양성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 우리는 아직도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이라는 이중적 잣대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대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무엇이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는 우리의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북한은 북한사회의 내재적 작동원리에 의해 바라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회주의 체제와의 비교 속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고, 자본주의 체제와의 비교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고…. 문제는 타자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태도가 어떠했는가에 대한 성찰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과학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면서 과학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그 과학의 틀을 벗어나면 미신으로 치부하는 우리들의 틀…그것이 문제가 아닐까?
여전히 이 문제를 학문적 장사로 활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착잡하기만 하다. 그래서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겸손은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는 송두율 교수님의 말씀이 더욱 울림이 있다. 그리고 귄터 그라스의 판화를 예로 들며, “상대방의 경험세계를 인정하거나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자신의 인식 틀에 집어넣으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를 들으면서, 통일과정에서 또한 한반도의 평화정착 과정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화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제의식은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화두이다.
족적과 슬픈 역사
송두율 교수님은 194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자랐고, 광주와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삶 자체가 드라마라고 생각이 들었다. 식민지 막바지 일본 제국주의의 수도에서 태어난 한국인, 그리고 자라난 제주에서 발생한 4.3 항쟁, 유학 이후 발생했지만 1980년 광주항쟁, 그리고 분단된 서독에서의 유학생활…. 드라마틱한 인생 그 자체다.
그의 유학생활은 36년 2개월이나 걸린 긴 여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민주화된 참여정부 시절이었던 2003년 9월 귀국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학문의 공간이 아닌 감금의 공간이었다. 조사와 구속 그리고 재판…. 2003년 9월 귀국, 10월 구속, 2004년 1심 징역 7년, 2004년 7월 2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2008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과정의 폭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가보안법, 이렇게 다용도로 인권을 유린하는 법은 세상에서 많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어디든 나타나서 무엇이든 감금할 수 있는 권력…. 아직도 살아 있다. 언제 주문이 걸려 잠에서 깰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금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판도라의 상자를 태워야 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잠근다고 해서 그것이 다시 부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좌파로 몰린다.
볼테르(Voltaire)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고, 미국의 대법관 홈스는 “(사상의 자유의 원칙은) 우리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을 위한 자유를 뜻한다”라고 말했다.
언제쯤 우리 사회에도 이런 가치가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까? 자유롭게 발언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창의적 발상이 출렁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회…. 꿈에서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살로 느낄 수 있는 곳….
송두율 교수님의『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서울: 후마니타스, 2007)에서 “내가 갇힌 감방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이 정적의 주위를 맴도는 바깥세상의 폭풍은 사나웠다. 역사 속으로 벌써 사라져야 할 냉전이 위세를 떨치고 그 속에서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렸던 세력이 총동원되어 나를 ‘해방 이후 최대 간첩’이라며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단하라고 나섰다. 이러한 분위기를 조직적으로 끌고 가는 세력의 중심에는 거대 언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구치소 문을 나오면서 이를 ‘썩은 내 나는 신문’이라 불렀다. 1심 최후 진술에서 나는 ‘지식이 사회를 멍청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인용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식 정보사회를 지배하는 언론의 선정주의와 상업주의 그리고 무책임성을 겨냥한 것이었다. 정작 재판이 시작되고 나니 끈질기게 매달렸던 그 많은 기자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말고’ 식의 언론의 관행을 정말 실감할 수 있었다.”
국가보안법이란 족쇄는 우리에게 어떤 일방의 생각만을 강요한다. 헌법의 보편적 가치와 충돌하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는 국가보안법…. 이 두 법이 공존하는 공간이 대한민국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유독 안 되는 것이 있다.
북한은 금기어다. 최근 신해철의 발언으로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4월 8일 신해철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하여. 또한 적법한 국제 절차에 따라 로케트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핵의 보유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법임을 인지할 때, 우리 배달족이 4300년 만에 외세에 대항하는 자주적 태세를 갖추었음을 또한 기뻐하며, 대한민국의 핵 주권에 따른 핵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는 내용이다. 이 발언도 사법적 판결로 이어질까?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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