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7) 기록물 저수지에 풍덩 : Bundesarchive 속으로

2009. 4. 13. 11:18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7) 기록물 저수지에 풍덩 : Bundesarchive 속으로

 

군사시설에서 기록관리소로

 

Fisher 선생님께서 기록관리소의 건축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이 공간은 5번 정도 성격이 변했다고 한다.

 

1865년부터 1881년까지 이곳은 귀족 출신 자제들을 훈련시키는 군사시설이었고, 1878년부터 1933년까지 부르주아 자제들을 훈련시키는 군사시설로(이곳에서 태국왕자들도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의 국가사회주의 시기 동안은 SS(친위대)의 교육시설로 활용되었다. 그러다가 전쟁에서 패하고 1945년 소련군이 이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가 2월에 미군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1945년부터 1994년까지 미군 막사, 교회 등으로 활용되다가 1995년부터 연방문서 보관서(The Federal Archives to Berlin)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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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건물의 연혁을 설명한 자료사진이다.

 

이곳은 군사주의의 상흔이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었다. 군사훈련시설로, 나치 친위대 교육시설로, 외국군의 막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상징적으로 기록관리소가 들어선 것이다. ‘군국주의적 악취’를 ‘기록의 향기’로 없애려는 시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곳에는 병기가 아니라 기록물로 가득 차 있다. ‘병기의 저수지’에서 ‘기록물의 저수지’로 변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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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보다 강한 것이 펜

 

칼보다 강한 것이 펜이라고 했던가! 무기보다 강한 기록물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옛말이 틀리지 않다. 이곳은 이제 칼에 의해 사라졌던 무수한 기억들이, 지배에 의해 분절되고 감춰졌던 무수한 기억의 조각들이 다시 재생․부활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것을 진보의 힘이라고 할까, 아니면 반성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이든 상관없다. 역사를 성찰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천으로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똑바로 살지 않겠는가!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는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이 그 시대를 상징하듯이, 또 근대 유럽에서 소설이 시민사회를 상징하듯이, 현대는 증언이 상징적인 장르가 되고 있다”고 규정했다. 증언의 시대, 그것은 기록으로 기억으로 전승되어 상징화 된다.

 

또한 다카하시 데쓰야는 “이제껏 역사 속에서 주체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사람들, 무명의 사람들, 역사라는 맷돌에 짓이겨진 채 침묵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개인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기 시작”했다고 일갈했다. 목소리는 있으나 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 육신으로 존재하나 이름으로 호명되지 못했던 사람들, 지배의 줄거리 규정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아니 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전승된 기억을 기록해야 한다.

 

뒤틀릴 대로 뒤틀린 역사라는 기형적 일직선의 사관에 의해 규정된 시간을 갱신해야 한다. 그 무수한 사람들의 억센 노동으로 만들어져 왔던 시간들을 가급적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처럼 그 무수한 시간을 만들어 공간을 창출했던 그 다양한 사람들을 복원해야 한다.

 

징기스칸이 단기필마로 거대한 제국을 만들 수 없었던 것처럼, 노동자의 고된 노동이 없이 자본가가 번성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래서 기억하고 전승하고 기록해야 한다. 지배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평범하게 살다간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물 저수지로

 

기록물이 관리되어 있는 건물 내부의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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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들은 종이 박스 형태로 분류 코드에 따라 보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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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에 따른 코딩넘버들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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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박스 내부에도 세부적인 분류코딩에 되어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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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되어 분류된 기록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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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er 선생께서 재미있는 자료를 보여주셨다. 북한이 동독에 보낸 공문서 중 일부이다. 하단에 정무원 총리였던 강성산의 친필사인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분류는 DK K-1(동독자료) MLEF(농업부) 9250(자료번호)로 분류코딩이 만들어지고, 이 자료는 index화 되어 일반인들이 열람할 수 있다. 단 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개인의 경우 죽은 이후 30년 후에 가능하며(단 가족이 동의하면 공개할 수 있다), 공적 인물은 상관없이 공개된다고 한다.

 

만약 이곳을 사용할지도 모를 분들을 위해 필름복사는 싼 가격에 가능하다고 하며, 진본 복사 시에는 장당 40센트이다. 9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신청이 가능하며, 오후에 신청하면 다음날 받아볼 수 있다. 또한 이곳은 월~목까지 08:00~19:00, 금요일은 08:00~16:00까지 개방된다. 열람실은 120석인데 하루 평균 90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한다.

 

이곳은 동독관련 자료를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동독의 당․대중조직 등의 자료, 서독문서, 독일제국 등 세 가지 부류로 보관되어 있으며, 총 180만 건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고, 그 중 동독자료는 4만 m 라고 한다. 그리고 280명의 직원이 이를 아카이브로 구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기록물 보관 장소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기록 작업을 국가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서를 보존하고 보존된 문서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작업을 통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창의적 출발과 성찰적 반성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의도에 의해 임의적으로 배제되거나, 잘못 분류되거나, 아예 사라져버리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역사란 가공의 사실이지만 당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미완성의 기록이지만, 지속적으로 당대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숙명적이다. 왜곡된 역사는 왜곡된 현재를 낳고, 잘못된 미래로 인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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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벽돌로 둘러싸인 기록물들은 언젠가 연구자들의 눈과 손을 통해 세상에 나타날 수도 있고, 다양한 시민들의 눈과 손을 통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 그들에게 역사를 돌려주는 것, 그것이 역사를 공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역사를 대중의 품으로 가져오자. 항상 지배자에 의해 분절되었던 역사를 주권자에게로 되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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