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8. 12:09ㆍ공간 일상 담론
기억이 공간과 만나면
6-3) 동독 일상과의 만남: DDR Museum에서 Bundesarchive
트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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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독일의 대표적 자동차 트라비는 고장의 명수였으며, 운행보다 수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차였다. 이 박물관에 트라비 부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이유도 이런 상황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차를 사고 싶어도 너무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런 기다림 속에 운 좋게(아마도 몇 년 전 용인지구에 아파트 당첨정도의 수준이었을게다) 차를 인도받고 신나게 드라이브를 하고 쾌감을 만끽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유지하며 며칠 또는 몇 주를 보낸 후, 갑작스러운 고장, 고장을 수리하기 위해 부품을 구입하려고 해도 구입할 수 없는 상황, 차는 그저 차고에 박혀 있고 또 하염없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런 반복적 행태는 독일의 자가운전자들을 자동차 수리 고수로 만들었다. 언제 고장이 발생할지 모를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있으니 즉각 그것을 고치지 못하면 자동차는 애물단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야 고장이 나건 사고가 나건 전화 한 통화하면 즉시 달려와 해결을 해주니 이런 고통은 없을 것이다. anycall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가 아닌가!
하여간 트라비는 연구의 대상이다. 아마 트라비라는 주제를 통해 동독 사회주의의 일상을 조명하는 연구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이 자동차가 생산되고 판매되고 수리되고 폐차되는 과정과 트라비와 얽힌 인간들과의 관계문제를 일상사적으로 분석한다면 아마도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업에 착수할지, 안할지 모르겠지만, 착수한다면 언제,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할지 알 수 없지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이 주제로 연구 작업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게 누구이건 간에 말이다.
지하철 토론과 국립기록관리소
이제 DDR 박물관을 나와서 또 다른 목적지인 국립기록관리소로 이동했다. 진종일 걸어 다녀서 인지 걷는다는 것이 괴롭다. 그래도 일단 이 일정만 마무리하면 맛있는 저녁과 피로를 해소하는 술을 마시고 그리고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서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지하철에서 논쟁 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우리의 주제가 사회주의 일상이다 보니 당연히 그것이 논의거리가 된 것이지만….
기억을 더듬어도 다 분절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이어서 정확한 논의내용은 가물가물하다. 얘기의 주제는 일상에서의 계급, 일상에서의 세대, 일상에서의 남녀 등 일상세계의 다양한 요소들이 충돌하고 결합되어 가는 모습들…. 동독의 세대는 그 세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었을 것이라는 얘기, 즉 1세대, 1.5세대, 2세대, 2.5세대, 3세대, 이후의 통일세대, 통일 이후 세대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 일상에서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도식화보다는 각 세대들이 추구했던 새로운 가치,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 새로운 담론의 출현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들, 시간의 흐름과 세대로의 전이와 충돌…. 이런 등등의 얘기가 진행되었다.
슈타지에 의한 감시와 통제, 처벌과 분리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윗세대는 아래 세대를 “젊은 놈들이 버릇이 없어”라고 일갈했던 상황들…. 중층적으로 구성되는 일상의 다양한 양태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문제는 항상 미로와 같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도외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국립기록관리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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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벽에 붙어 있는 Bundesarchive, 이곳에 엄청난 기록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동독의 옛 공식 국가기록물들의 분류작업이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한다.
국립기록관리소에서의 학습 강행군
아래 사진은 우리 이웃 아주머니 같은 자애로운 미소와 넓은 아량으로 넘쳐나는 전문 아카이브 Fisher 선생의 모습이다. 이 분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을 다시 전하고 싶다. 너무나 친절한 설명과 해설, 피부색도 다른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단지 아카이브작업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기뻐해주시던 모습, 분단을 공유한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질감을 표시해주시던 모습…독일이라는 나라를 더 정겹게 해주셨던 모습…아마도 이런 것이 소통을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것 일게다. 그리고 이런 분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준 이동기 박사께도 다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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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죄송한 것은 Fisher 선생께 사진을 공개한다는 말씀을 사전에 양해구하지 못하고 올리는 점이다. 올릴까 말까 많은 고민을 하다가 올리기로 했다. 흔쾌히 사진 촬영에 응해주셨기도 하고, 고마운 분의 모습을 블로그를 통해 가끔을 뵙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이 있기도 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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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이 국립기록관리소 건물 일부의 전경이다. 이 건물은 군사시설이었다. 군사시설에서 기록물보관소로 용도가 변경된 역사를 추적하면 그것이 바로 아픈 독일의 역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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