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⑪ 엘마 알트파터 Elmar Altvater

2009. 6. 13. 16:47theory & science

‘연대의 경제’로 위기의 자본주의 넘어서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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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⑪ 엘마 알트파터 Elmar Altvater
 

엘마 알트파터는 1939년 독일의 카멘에서 태어났다. 뮌헨대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소련의 환경문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대표적인 68세대로서 당시 오펜바흐에 소재한 ‘사회주의 연구소’에서 이론을 주도하는 핵심적 인물이었다. 1970년에는 대표적인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저널인 ‘계급투쟁의 문제’(PROKLA)를 창간하고, 2008년까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저널은 창간호부터 서독 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자들과 수준 높은 논쟁을 전개하였는데, 그는 저널에서 당시로서는 선구적으로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통화시스템, 금융시장 및 세계시장의 문제를 이론화하였다. 알트파터는 1971년에 베를린대 정치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는 2008년에 은퇴할 때까지 자본주의 발전론, 금융시장 및 통화시스템, 나아가서 자본주의 경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의 문제를 연구주제로 삼았다. 알트파터는 독일 녹색당의 창당당원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 적록연정정부가 코소보전쟁에 개입한 뒤 거리를 두고 있다. 다수의 저작 중 <세계화의 한계>(1996)는 세계화에 대한 탁월한 비판서이며, 국내에는 <자본주의의 종말>(2005)이 번역되어 있다.

 

엘마 알트파터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는 자유 금융-석유 의존-노동 경시에서 왔다고 보고 지속 가능한 생태 경제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대체에너지의 확보는 그 자체로 화석에너지를 축으로 한 기존 권력의 해체를 뜻한다고 본다. 새 대안사회가 출현해 화폐와 자연, 노동이 재구성 되는 순간 자본주의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엘마 알트파터

독일의 원로 사회학자 엘마 알트파터는 전세계적으로 불평등과 빈곤이 증가하고, 이러한 현상이 문명사회의 위험이 되는 한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그러한 비판은 19세기 및 20세기에 있었던 자본주의 비판과는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2008년 하반기에 다시 찾아온 자본주의 위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일상적인 자본주의 위기와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속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조해온 주기적 위기의 발생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 역사에서 발발한 위기의 성격, 그리고 사회시스템으로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지 등을 포함한 위기 극복 가능성이 자본주의 비판의 핵심이 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일종의 강장제처럼 작용하였다. 자본주의는 위기 속에서 끊임없는 자정능력을 보여주었으며, 그 안에서 신기술(반도체, 생명공학기술 등)과 신상품을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초를 발견하였다.

 

알트파터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자본주의 위기 경향은 화폐·자연·노동이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문제에 기초하고 있다. 위기의 첫 번째 차원인 화폐는 마르크스가 강조하였듯이 화폐를 통해 상품이 교환되며, 그 안에서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 사회적 존재가 되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화폐가 위기에 처하면 사회가 위기에 처하게 되며, 이는 노동의 위기, 나아가서 인간 삶의 근거가 되는 자연의 위기로 전화된다. 알트파터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화폐의 위기는 금융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이는 20세기 후반기에 시작된 것으로 그 이전의 화폐위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징, 곧 국제적 차원에서의 금융시스템의 자립화 경향을 핵심으로 한다. 1970년대 초반의 변동환율제 도입과 금융시장의 자율화, 1980년대 제3세계의 외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워싱턴 컨센서스, 1997~98년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적 금융위기, 2000~01년의 신경제 위기, 그리고 최근의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금융위기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왔다. 이제 금융위기는 정치적 규제 없이는 탈출구를 발견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위기의 두 번째 차원은 환경, 특히 화석에너지와 관계된다. 산업자본주의가 출현한 이후 자본주의는 급속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본주의 성장을 가속화하였다. 발전의 가속화는 동일한 시간단위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의미하였는데 이러한 경쟁은 지역과 국가 단위에서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탄·석유와 같은 화석화된 에너지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이 발생함에 따라 화석화된 에너지의 소모도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몇 차례 발생한 석유파동에서 보듯 제한된 석유자원의 공급은 시장의 가격을 불안정하게 한다. 따라서 소위 자본주의 선진국가들은 자원의 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쟁은 화석화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 경쟁, 곧 군사적 경쟁으로 발전하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라크 전쟁은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안보전략의 일환이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지역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석유자원 때문이다. 이로써 강대국의 안보전략은 군사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럴수록 위험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알트파터는 화석에너지의 위기가 필연적으로 경제 및 사회 시스템, 나아가서 군사적 요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화석에너지의 경쟁적 소모는 지구온난화에도 영향을 미쳐 급속도로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위기의 세 번째 차원은 노동이다. 알트파터는 세계화된 금융시장자본주의에서 기본적으로 노동이 경시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금융시장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소득을 획득하기보다는 주가 상승을 통해 주식시장에서의 일확천금을 기대한다. 일반적으로 산업자본의 시대에 사람들이 고용을 통해 정기적으로 소득을 얻고,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승진을 기대하는 등의 평범한 노동자들의 전기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급속도로 파괴되었다.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가 낮아지면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대규모 해고가 이루어진다. 나아가서 기업의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정규 노동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전 인구의 90%, 라틴아메리카에서는 60%가, 심지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30% 이상이 비정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은 사회정책적 혜택도 온전히 누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알트파터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위기경향에 반하여 대안으로 ‘연대의 경제’를 제시한다. 이는 실현 불가능한 가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와 같은 구체적 실험 속에서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대안의 가능성을 찾는다. 이는 공동체의 재발견이다. 나아가서 알트파터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로서 화석에너지를 대체한 태양에너지 사회를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 자원의 대체만을 의미하는 순진한 표현이 아니다. 알트파터에 의하면 자본주의 핵심세력의 힘은 생산력을 확보하기 위한 에너지 자원의 공급권을 확보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에 대체에너지 자원의 확보는 그 자체로 기존 권력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례로 알트파터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권력을 교체하고 소유관계를 바꾸었지만, 자본주의와 다른 생산양식 체계를 수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안사회의 실현에 실패하였다고 본다. 이제 새로운 대안사회의 출현은 화폐·자연·노동의 재구성을 탐색하는 새로운 기획 속에서 가능할 것이며, 그러한 기획이 실현되는 순간, 알트파터는 현존하는 자본주의의 종말이 도래할 것으로 본다.

 

임운택/계명대 교수

» 임운택/계명대 교수
임운택은 한양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독일 마르부르크대에서 프랑크 데페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이며, 저서로는 <세계화와 여성안보>(공저), <주주자본주의에 따른 기업지배구조 및 노사관계의 변화>(공저), <노조운동의 사회경제정책-신케인즈주의와 제3의 길>(공저) 등이 있다.


기사등록 : 2009-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