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거장 사라 문의 사진이 온다

2009. 9. 3. 16:00sensitivity

세계적 거장 사라 문의 사진이 온다
한겨레 임종업 기자
» 사라 문 사진전의 출품작. <샤넬>
“무도회에 가면 춤을 춰야 할 것이다. 무도회는 밖에 있었고, 여전히 열리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무도회는 열렸다. 내가 춤을 추고, 사진을 찍도록 초대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래서 난 자유로웠다. 자유롭게 무도회 리듬에 몸을 맡기면서 음악이 있든 없든 그저 즐겁게 춤을 추었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나의 시선을 즐겼다.”
 

틀 깬 탐미적 패션사진 독보적 존재
이미지 이전의 감수성과 시간 포착
흑백 작품에선 ‘죽음과 추억’ 반추


» 사라 문(68)
프랑스 파리의 패션사진 거장 사라 문(68). 그는 스스로 무도회에 나아가 춤을 추고 그 리듬에 맞춰 사진을 찍는 것과 흡사하다고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해 털어놓았다. 여기서 무도회를 모델들이 춤추듯 걷는 무대인 ‘런웨이’로 바꿔도 될 법하다. 그의 사진에는 모델과 사진가의 시선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맡아둔 친구의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다 자기한테 내재된 사진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스무 살에 모델을 시작한 사라 문이 사진가로 변신한 스물아홉 살 때 그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터. 이후의 삶은 신산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시간과 빛의 흔들림 속에서 형태가 점차 소멸되고 선이 모호해지는 가운데 강한 터치와 뚜렷한 선의 표현과 색의 완성을 보이는 ‘사라 문 패션사진’은 없었을 것이다.


» <결혼>
남성이 주도하던 1960년대 파리의 패션사진계에서 홍일점이었던 그의 사진은 남성 작가들의 질시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끌었다. 옷의 형태를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기왕의 사진과 달리 목의 선, 드레스의 주름, 손동작, 엉덩이의 균형 등에 착목했던 것이다. 게다가 옷이 아름다운 것인지, 모델의 몸이 아름다운 것인지 모를 경계선상의 아름다움을 모델에게 던진 서른여섯 번의 거짓 ‘오케이’ 사인 끝에 낚아채는 탐미적 태도는 집요할 정도였다. 9년여 모델 생활을 하면서 “나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쌓아두었던 아쉬움을 토해낸 것.

 

또 그는 실내 인공 조명 아래서 찍던 관행을 벗어나 야외로의 탈출을 감행했다. 남성 중심 사진계에서 억압되었던 ‘사라의 외출’은 호텔방, 한적한 거리와 카페, 망가진 기차, 렌터카, 폐허가 된 정류장, 그리고 정원 등으로 이어졌다. 그의 사진에 담긴 파리의 시간과 색채는 그보다 80여년 앞선 인상파 화가 선배들의 그것에 닿아 있었다. 공작새 깃털, 물고기 지느러미, 산나리, 수국을 닮은 의상 모델들의 자세는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하다.

 


» <장 폴 고티에>
그의 작품은 <파리 보그> <마리 클레르> <하퍼스 바자> <노바> 등 패션 잡지에 자주 등장했다. 90년대에는 이세이 미야케, 야마모토 요지, 샤넬 등의 유명 디자이너 또는 브랜드와 협력 작업을 했다. 특히 그가 일본 스타일을 선호한 것은 인체 형태와 다른 희미한 실루엣의 일본 의상이 자신의 사진 스타일과 통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인의 죽음은 또다른 ‘친구의 사진기’였다. 15년간 그를 도와 패션사진 작업을 해온 마이크 야벨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자신의 왼쪽 눈이었다는 마이크는 카메라 너머의 그 무엇을 보게 하는 존재였을 터이다. 눈이 내린 어느 날 아침 그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무심코 수국을 찍었다. 인화지의 장방형 검은 테두리가 상장처럼 도드라졌다. 그것은 마이크의 죽음과 그에 대한 추억의 상징이었다.


고객의 만족을 위해 일하며 한 번도 자신을 표출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가 자신을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긁히고 유제가 흘러내리는 값싼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해 죽음과 추억을 보여주는 ‘사라 문 작품 사진’이 그 결과물들이다.


» <큰부리새>
그의 컬러 패션사진과 흑백 작품 사진은 모두 이미지 이전의 이미지를 찍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즉 초콜릿을 찍는 게 아니라 그 달콤함을 찍는 것. 그러기 위해 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공간을 없애거나 만들고, 조명의 위치를 바꿔 비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노력은 단편영화로 발전한다. 예컨대 <서커스>라는 15분짜리 흑백영상 작품은 러시아계 서커스단의 여주인이 정분난 중국인과 함께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릿광대는 그를 기다려 술집을 헤매고 표범은 죽어 박제가 되고 황새는 얼어 죽는다. 첫딸은 가출하고 일곱살배기 둘째딸은 성냥팔이로 나선다. 그 이후는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다. 작가는 안데르센의 동화에 거죽을 덧대 추억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의 영상 작품은 ‘움직이는 사진’. 등장인물은 극적인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같은 동작을 반복하거나 대각선으로 지나가기. 거기에다 변사를 붙였으니 영상은 긁힌 폴라로이드 사진만큼이나 고풍스럽다.

 

남편 로베르 델피르는 사진작가이자 평론가이자 출판업자. 40여년을 부창부수로 살았다. 그의 아내 사랑은 평론으로, 사진집으로, 전시회 기획으로 나타난다.

사라의 감수성 넘치는 작품은 20~30대 여성 팬들의 열광 속에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중국, 덴마크, 체코 등을 순회 전시했다. 1983년에는 미국 뉴욕 국제사진센터에서 전시했고, 1995년에는 파리 국립사진센터서 회고전을 열었다. 칸 영화제 광고부문 황금사자상(1986, 1987), 프랑스사진대상(1995), <12345>로 나다르 상(2008)을 받았다. 파리보다 매혹적인 사라 문의 첫 한국 사진전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브이갤러리에서 25일부터 11월29일까지 열린다. (02)710-0767. www.sarahmoonkorea.com

때 : 9월 25일(금)~11월 29일(일) 오전 11시~오후 8시 (11월은 오후 7시까지)

휴관일 : 매월 마지막 월요일 9/30, 10/26

곳 : 예술의전당 B1 V갤러리

입장료 : 일반 8,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4,000원. 경로, 장애, 유공자는 50%할인

단체할인 : 10인 이상 1,000원, 20인 이상 2,000원 할인

특별할인 : 사진전공, 의상전공 대학생은 2,000원 할인. 현장 구매에 한함

조조할인 : 평일 11시~12시 현장구매 입장고객. 10/16 까지 50% 할인. 10/19~11/27 까지 2,000원 할인.

문의 02-710-0767 sarahmoon@hani.co.kr

카페 http://cafe.naver.com/sarahmoon2009

홈페이지 www.sarahmoonkorea.com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기사등록 : 2009-09-02 오후 07:25:51 기사수정 : 2009-09-03 오전 11: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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