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가 말하는 사라문 특별전] 사진마법: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쉼표

2009. 9. 10. 15:31sensitivity

[큐레이터가 말하는 사라문 특별전] 사진마법: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쉼표

 

» 모르간, 1984
이제 2주 남았다. 패션보다 더 매혹적이라는 패션사진 거장 사라 문의 첫 한국 사진전(한겨레신문사 주최, 02-710-0767) 개막이 다가오면서 그가 고른 출품작들의 면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25일~11월29일 서울 예술의전당 브이갤러리에서 선보일 주요 전시 작품들을 기획자의 도움말을 곁들여 미리 살펴본다.

 


» 전·후, 2008
거장 사라 문의 사진들은 청록과 주홍, 노랑과 빨강이 어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것들이 푸르스름한 섬광들로 밝혀지는 작품들이다. 그의 사진들은 변덕스럽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맥락 없는 유년의 기억들로 우리를 데려간다.

미스터리하게 전개되는 사진 속 내러티브는 마치 온 세상을 열쇠 구멍으로 볼 때처럼 상상과 향수 속으로 더 깊게 빠져들게 한다. 동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사라 문은 아마도 기억들이 그의 개성을 만들고,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무의식적 코드를 형성했을 것이다.


» 튀일리 공원의 수잔, 1974

» 라 네바, 2002
사라 문은 패션사진계의 편견에 물들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사진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에 걸쳐 영향을 끼쳐나가며 이미지로 마법을 부리게 된다. 그의 화면 안에서는 평범한 풍경, 사물, 인물들이 두렵고 불가해한 톤으로 세팅된다. 패션의 주제인 모델과 의상은 보이지 않고, 느닷없이 사자 한 마리를 옷장 앞에 서 있게 하거나 살롱에서 거위 한 마리가 털을 날리게 하며 마법에 걸린 세계를 옮겨 놓았다. 이 사진들의 마법은 모든 동물들이 그들의 편이라고 믿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으로부터 발산된 것이다. 거기에 창조적인 디지털의 교묘함과 장난감 카메라의 흐린 렌즈, 모션의 흐릿함은 마치 석판화나 인상주의 회화 같은 느낌을 뿜어낸다. 게다가 모델은 사진 작가가 셔터를 누르기도 전에 제 멋대로 몸과 얼굴을 움직였다. 이렇게 변덕스럽고 추상적인 그의 스타일은 몽상적인 이미지를 선호하는 많은 이들의 목마름을 가시게 하였다.


» 작약, 2000
형식적으로 사라 문의 칼라는 폴라로이드 카메라(665필름)가 만들어내는 모노크롬에, 기억의 톤이라 불리우는 세피아 컬러링이 주를 이룬다. 한 화면에서 네거티브와 포지티브가 공존하면서 유령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는가 하면, 점 혹은 얼룩, 고의로 표면에 찍어 낸 지문에 필름의 흐릿한 해상도까지 더해져 사진은 더욱 고풍스럽게, 마치 다른 세계의 것처럼 만들어진다.


» 이세이 미야케, 1995
이번 전시에 선보일 사진 작품 160점 외에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의 내용을 토대로 그가 직접 제작한 <서커스>라는 짧은 영상도 눈여겨 볼일이다. <서커스>는 깊고 고귀한 미의 감각이 충만하게 펼쳐지는 영상물이다. 광대들과 동물의 행렬과 해산, 회합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자유분방하고 중요한 행위들을 통해 수만의 군중들이 잃어버린 순수와 사랑을 건드리고 있다.


우울한 가을날의 오후나 예민한 현실 속에 휴식의 다락방을 짓고 싶을 때, 사라 문의 사진을 보러가자.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에 드는 사진부터, 꿈꾸듯 보면 좋을 것 같다. 작가는 꿈꾸는 것을 즐기는 사진가이니까. 예기치 않았던 그의 꿈속으로, 꿈속에서 우연들(coincidences)을 만나려거든 너무 빠르지 않게 관람하시길.

 

최연하 큐레이터(사라 문 특별전 기획), wwww.sarahmoonkorea.com

기사등록 : 2009-09-09 오후 09:46:10 기사수정 : 2009-09-10 오후 01:59:02
한겨레 (http://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