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21. 11:56ㆍeveryday photo
60년전 한국전쟁의 잔혹사와 현재 천안함
60년 전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죽였던 잔혹사가 3년 간 펼쳐졌습니다.
그 비극은 남과 북의 대치만이 아니라 남과 남, 북과 북 사이에도 전개되었습니다.
이념의 이유로 서로를 죽이는 것이 정당화되었고, 이념의 이유로 우리가 우리를 죽이는 것이 정당화되었던
그야말로 야만의 시간이었고 비참한 잔혹사 그 자체였습니다.
여전히 60년 동안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반공이라는 스펙트럼...
잊혀진 듯 보이지만 항상 다시 출몰하여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괴물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친척도, 마을공동체도, 친구도, 연인도 존재할 수 없는 파괴된 공동체, 폐허가 된 심성들
동포도 민족도 존재하지 않는 극단적 국가주의의 시대
국가가 지령을 내리면 무조건 실행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극단의 시대
그것이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휘감았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전쟁의 승리자는 국가주의 그 하나였습니다.
전쟁의 참여자이며 동시에 최대의 피해자인 국민은 어디에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비극적 전쟁사가 남겨놓은 것은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슬픔이 아니라
승리한 반공주의자와 승리한 반제국주의만이 펄럭였습니다.
그 무수한 죽음은 국가주의에 의해 정당한 것으로 추앙받았으며
반공이라는 깃발로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가슴 속 깊이 속살에 DNA로 박혀 있었던 반공
적을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그 격렬한 긴장과 멸시 그리고 경쟁주의에서
또 다시 희생된 것은 국민이었습니다.
탈냉전이 도래하고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이 무르익으며
반공이라는 괴물은 박물관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불현듯 나타나 모든 사람을 쇠뇌시키는 괴물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발견된 괴물, 반공주의
그 테마는 천안함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장병들의 죽음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슬픔을 애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발자국을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장병들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슬픔은 매말라버리고
천암함의 문제를 둘러싼 공방만이 남아있습니다.
남과 북의 공방, 국제사회의 공방, 남남 공방
이 논쟁들은 여전히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반공이라는 도그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단순한 방법
진실은 명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진실이 명백하다면 그에 합당한 실천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진실에 대해 동의할 수 없으니 더욱 자세히 밝히자는 단순한 논리에 대한 거부와 그 논쟁을 반공의 잣대로 들이대는 이 야만
우리는 다시 60년 전의 잔혹사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왜? 누가? 누구를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하는지도 모르고 벌어지는 잔혹사를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을 거부해야 합니다.
반공의 혐의로 재갈을 물리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생각하고 표현하고 토론할 자유가 있는 세상
그것이 그토록 정부가 북한보다 우리가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주장했다면
그것을 더욱 확장시키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할 일입니다.
한국전쟁 60주년을 앞두고
천안함은 우리사회에게 거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잔혹사를 재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국가주의라는 괴물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한 치도 침해받아서는 안된다는 것
모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그들을 모든 것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그 잔혹사를 뚫고 현재를 일구어 낸 주인공은 꿋꿋하게 고통을 감내하고
그 힘든 일상 속에서 공동체를 만들어온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온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을 결단코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질긴 삶 이고지고 ‘고난의 행렬 | |
[화보|한국전쟁 60년] 임인식 사진대장의 ‘한국전쟁’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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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새벽, 한국전쟁이 터지자마자 임인식(1920~1998) 중위는 전선으로 달려갔다. 국방부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국방부 소속 정훈국에 사진대를 긴급 편성해 전쟁 상황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겼고, 육사 8기였던 임 중위는 사진대 대장으로 임명돼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참혹하고 처절했던 한국전쟁 현장을 촬영했다.
한국 최초의 종군사진가였던 그가 남긴 한국전쟁 미공개 사진들을 <한겨레>가 입수해 소개한다.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파괴된 서울 중심가, 눈보라 날리는 엄동설한에 소 한 마리를 운송수단 겸 식량 삼아 피난가는 가족들,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입대해 총을 들어야 했던 중학생들의 앳된 얼굴…. 임인식 사진대장은 한국전쟁이 이 땅과 사람들에게 남긴 흔적과 상처, 그 속에서 꿋꿋하게 삶을 이어갔던 한국인의 치열한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1952년 은성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그는 대위로 예편한 뒤 대한사진통신사를 설립해 전쟁 사진과 전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상을 찍은 사진을 외국 통신사들에 제공했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그의 사진들은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남았다. 그의 집안은 4대에 걸친 사진가 집안이다. 임석재 사진가가 그의 숙부이고 국내 대표적인 건축사진가인 임정의씨가 장남, 사진작가 임준영씨가 그의 손자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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