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꾼다

2010. 9. 29. 12:44lecture

 

 

사람·자연 두루 좋은 추석선물 ‘감동 두배’
[건강한 세상]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꾼다 ①
한겨레 권복기 기자기자블로그

 

» 윤리적 소비 운동을 벌이고 있는 씨즈(Seed:S) 활동가들이 피스커피 매장에서 마스코바도 설탕과 피스커피 등 공정무역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씨즈 제공
친환경·공정무역제품 사쓰는
윤리적 소비 확산 바람 ‘솔솔’
이모션·신한카드…기업도 나서
공익인터넷 쇼핑몰서 상품구매
 

»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꾼다

추석이 두 주 앞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분들에게 감사를 표할 때다. 선물. 고민스럽다. 비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선물은 정성이다. 마음으로 감동할 수 있는 선물이 좋다.

 

국내 최정상급 웹에이전시 이모션 정주형 대표는 명절이면 직원과 주요 고객에게 선물을 보낸다. 직원 수만 125명이라 비용이 꽤 드는 일이지만 정 대표는 그 일을 생각할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선물을 받고 좋아할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구매 행위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부터 명절 선물을 이로운몰에서 사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인 이로운몰은 ‘나, 우리, 자연에 이로운 착한 쇼핑’을 내건 공익 인터넷 쇼핑몰이다. 친환경·유기농산물, 공정무역 제품, 사회적 기업이 만든 제품 등을 주로 판다. 친구의 소개로 이로운몰의 경영 전략을 자문하며 관계를 맺게 된 정 대표는 “환경이나 인권 등의 가치를 담은 제품을 파는 좋은 회사임을 알게 된 뒤 도울 방법을 찾다 물품 구매를 하기로 했다”며 “올 추석에는 친환경 농법으로 기른 배나 사과를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정 대표처럼 가치를 담은 상품을 찾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구매 행위를 윤리적 소비라 부른다. 개인적 또는 도덕적 믿음에 바탕한 소비 행태로 경제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웃과 사회를 고려하고 자연환경까지 생각하는 관점에서 내리는 구매의 선택을 말한다.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윤리적 소비’를 통해 명절 선물을 준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선구자’는 그런 가치를 이해하는 곳들이다. 실직 여성가장취업을 목적으로 간병사업을 하는 다솜이재단은 명절이면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선물로 보낸다. 2007년 재단 출범 때부터 그 원칙을 지키고 있다. 공정무역 커피나 장애인의 자활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 위캔의 쿠키, 상주자활후견기관의 곶감 등이 다솜이재단의 ‘선물 목록’이다.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단체 행사 때 ‘뜻있는 구매’를 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신한카드 노동조합은 지난해부터 조합 행사 때 윤리적 소비와 관련한 물품을 소개하고 있다. 인연은 노조가 동북아평화연대의 연해주 고려인 돕기 사업에 돼지 3마리를 사주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고려인의 자립을 위해 만든 기업 ‘바리의 꿈’을 알게 됐고, 지난해 12월 노동조합 창립 기념일 때 선물용으로 청국장과 청국장환 등 150여만원어치를 샀다. 올해 5월에는 조합 연례행사인 ‘알뜰장터’에서 영양제, 도라지꿀 등을 팔았다. 밸런타인데이 때 공정무역 초콜릿을 판매하기도 했다.
 

오선영 부위원장은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윤리적 소비와 관련한 물품을 구매하거나 조합원들에게 소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에스케이(SK)사회적기업지원사업단은 지난해 11월 누리집(홈페이지) ‘세상’의 오픈 이벤트 때 사회적 기업으로 아시아 퓨전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 오요리의 식사권, 공정여행 상품을 파는 트래블러스맵의 여행상품권을 경품으로 걸었다. 최동호 과장은 “올해 11월 사이트 개편 이벤트 때도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상품으로 걸 생각”이라며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알리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리적 소비’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이에 동참하는 개인도 생겨나고 있다.

 

친구의 소개로 이로운몰을 알게 된 김정현(가명·40)씨는 설날이나 추석 선물은 꼭 이곳에서만 산다. 윤리적 소비는 가족의 건강에도 도움이 됐다. ‘바리의 꿈’에서 판매하는 차가 청국장 효모 청시를 먹은 뒤 어릴 때부터 감기와 열을 달고 살던 아이가 건강해졌다. 농협 직원인 이희범(41)씨도 2000년 여름휴가 때 연해주에 갔다 통역을 맡은 사람으로부터 ‘바리의 꿈’을 알게 된 뒤 청국장, 민들레엑기스 등을 사서 쓰거나 주위에 선물로 주고 있다.

 

청년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씨즈(Seed:S) 문현주 팀장은 “어떤 제품을 사서 쓰느냐에 따라 우리가 살아갈 미래가 결정된다”며 “윤리적 소비는 세상을 바꾸는 가치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 윤리적 쇼핑몰들

‘착한 선물’ 어디서 살까

 

유기농·친환경 판매점 늘어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은 늘고 있지만 관련 제품의 종류는 아직 많지 않다. 살 수 있는 곳은 더욱 적다.

제3세계의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공정무역 제품은 피스커피, 바리의 꿈, 행복한 나눔 등에서 살 수 있다. 환경을 생각하며 농작물을 기르거나 그런 농산물을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도 있다. 콩새미와 흙살림이 그런 곳이다. 이로운몰에서는 이들 제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권복기 기자

 

기사등록 : 2010-09-06 오후 06:26:37 기사수정 : 2010-09-06 오후 08: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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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조합운동 ‘환경·나눔 특구’ 원주시
[건강한 세상]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꾼다 ②

생협역사 바탕 로컬푸드 운동

지역 농산물 도시락 배달사업
한겨레 권복기 기자기자블로그
윤리적 소비는 세상을 바꾸는 행동이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느냐에 따라 미래 세상이 달라진다. 환경, 인권, 나눔 등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기업의 제품을 사면 그런 회사가 늘어난다. 반대로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윤리적 소비는 귀찮은 일이다. 그런 가치를 담은 재화나 서비스는 아직 드물기 때문이다.
 

원주시는 그렇지 않다. 친환경 유기농산물 매장, 주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금융기관, 예방의학에 관심이 많은 의료기관, 수익을 공익적인 활동에 쓰는 떡집과 기름가게까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윤리적 소비에 동참할 곳이 널려 있다. 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복지기관 등 15개 단체가 제공하는 ‘윤리적’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조합원과 회원의 수만 3만명이 넘는다. 여러 단체에 중복 가입한 이들이 꽤 많지만 로컬푸드로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는 어린이집과 초·중학생의 수가 1만명이 훨씬 넘기 때문에 원주에서 윤리적 소비를 경험한 이들은 3만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31만 원주시 인구의 10%가 넘는 셈이다. 최혁진 원주의료생협 전무는 “원주에서는 윤리적 소비라는 개념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원주시에서 이처럼 윤리적 소비가 활발한 것은 농민과 도시 서민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협동조합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생활 운동 기관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단체가 친환경급식지원센터다. 2008년 발족한 이 단체의 주요 활동은 로컬푸드 운동, 즉 우리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로컬푸드 운동은 같은 지역에 사는 농민의 자립을 돕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농산물이 이동하는 거리, 푸드마일리지를 단축해 석유 소비를 줄여 환경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원주의 로컬푸드 운동은 친환경급식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읍면 지역 22개 초등학교, 7개 중학교, 36개 어린이집이 참여하고 있다. 친환경급식지원센터는 로컬푸드로 조리한 도시락을 결식아동 766명에게 배달해주는 사업도 함께 벌이고 있으며 ‘행복한 달팽이’라는 로컬푸드 식당도 운영중이다. 로컬푸드 운동의 중심에는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공급하는 생협과 농민 조직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1985년 만들어진 원주한살림생협은 5337명의 조합원에 한해 32억원, 89년 세워진 원주생협은 1500여명의 조합원에 21억여원 규모의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조합원에게 공급한다.

 

원주에는 윤리적 소비가 가능한 금융기관도 있다. 72년 설립된 밝음신용협동조합. 서민, 자영업자, 중소기업인 등의 자립과 성장을 돕는 일을 주로 해 온 밝음신협은 자산규모 900억원, 조합원 1만5662명의 간단치 않은 풀뿌리 금융기관이다. 밝음신협은 금융업무뿐 아니라 조합원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문화·복지 사업도 펴고 있다.

 

의료서비스도 윤리적 구매가 가능하다. 뜻있는 의료인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든 원주의료생활협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단체들은 생각있고 여유있는 이들이 모여 그들만의 경제시스템을 갖추는 게 아니라 서민이나 소외계층의 자립과 그들을 위한 복지시스템 구축을 늘 염두에 두고 일을 추진한다. 원주의료생협이 운영하는 재가복지사업단 길동무, 성공회원주나눔의 집에서 만든 사회적 기업 햇살나눔, 햇살지역아동센터, 자활사업 참여자가 조합원인 누리협동조합 등이 그런 곳들이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기관도 있다. 노인과 노숙인들의 생협이다. 전국에 하나뿐인 노인생협은 원주시의 초등학교와 계약을 맺어 청소용역 사업을 펴고 있고 ‘만남의집’이라는 식당을 운영한다. `갈거리사랑촌'에서 운영하는 갈거리협동조합은 노숙인이 함께 참여해 만든 기관으로 노숙인에게 필요한 생활 자금을 대출하는 일을 한다. 자본금 규모도 4억원이나 된다.


71년 밝음신협을 만들며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한 지 40년. 원주는 이제 협동조합의 도시, 윤리적 소비의 메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원주/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기사등록 : 2010-09-14 오전 08:58:48 기사수정 : 2010-09-14 오후 06: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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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상품 경쟁력 있어야 지속가능하죠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꾼다] ③ ‘그루’ 홍보대사 진양혜 아나운서
한겨레
» 국내 첫 공정무역 브랜드 ‘그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나운서 진양혜씨가 지난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인터뷰에 앞서 ‘그루’에서 만든 의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꾼다
“이 옷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그 재킷은 네팔에서 만들어졌어요. 히말라야에서 자생하는 알로라는 식물에서 섬유를 뽑아 실을 만들고 천을 짜는 과정까지 전부 원주민의 손으로 이루어진 제품이죠.”

 

국내 첫 공정무역 브랜드 그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나운서 진양혜(42·사진)씨가 그루의 로컷 재킷을 입으며 제품이 만들어진 과정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공정무역은 제3세계 생산자가 만든 제품을 제값을 주고 구입해 그들의 자립을 돕는 대안무역이다. 윤리적 소비를 국제거래에까지 넓혀 공정한 거래를 통해 저개발국 생산자에게 희망을 주자는 뜻의 ‘착한 소비 운동’인 셈이다. 실제 국제구호단체 보고서를 보면, 세계 무역구조에서 제3세계의 이익을 단 1%포인트만 올려도 1억명이 훨씬 넘는 가난한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씨는 2008년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루는 여성환경단체에서 활동하던 이미영 대표가 빈곤국가의 여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정무역과 여성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패션사업을 연계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출발했다.

 

힘든 제3세계 돕는 일이라 시작
행사 사회 맡고 잡지모델로 활동

 

그루는 사업 초기 공정무역을 알리려면 유명인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부부 아나운서로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진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진씨는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여 페어트레이드코리아에서 주최하는 관련행사의 사회를 맡고, 잡지 홍보 모델로 활동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탰으면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홍보대사 제안에 응했어요. 제가 하는 작은 실천이 어려운 여건에 있는 지구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져요.”


진씨는 제3세계 아이들과 여성들의 힘든 삶에 우리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착한 소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환경보호, 아동노동 근절, 교육 등 좀더 나은 지구촌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소비자들이 공정무역 운동에 참여하면 세상을 좀더 바르게 만드는 일도 더 쉬워질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기업가들 소비자 기호 파악하고
젊은층 마음 당기는 전략 고민을”

 

“몇년 전 캄보디아에 갔을 때 물가에서 물장난을 하는 아이들 모습이 매우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데 바로 그 옆에는 한창 개발 공사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순간 아이들의 행복을 고려해 개발이 조금은 천천히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이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공정무역의 가치로 접근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소비는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이뤄지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진씨는 말한다. 하지만 딱딱하고 형식적인 계몽운동보다 생활 속의 소비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훨씬 영향력이 크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착한 소비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그는 말한다.

 

착한 소비가 확산되려면 도덕적 가치에만 호소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진씨는 제품이 좋아야 하고, 가격도 적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회적 기업처럼 공정무역 기업가들도 가치를 추구하면서 수익도 낼 수 있는 경영 마인드를 가졌으면 합니다. 고객들의 기호를 파악해, 제품 개발이 역동적으로 이뤄졌으면 합니다. 디자인 등 소비자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상품이 나와야겠죠. 이렇게 상품경쟁력이 있어야 공정무역기업들도 지속가능할 수 있죠.”

 

그리고 그는 공정무역 운동이 무엇보다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아끌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그루의 주고객층은 40~50대 여성들입니다. 이들이 제품을 구입해 보고 입소문을 내면서 그루는 해마다 20% 이상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요. 이제는 젊은층 소비자들도 이 착한 소비에 공감하고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끝>

 

글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hslee@hani.co.kr

 

기사등록 : 2010-09-27 오후 11: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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