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3. 14:16ㆍdiscourse & issue
천만 농민을 도시 중산층화…충칭 빈부해소 ‘거대 개혁’ | |
[중국의 길 실험과 도전] 1부 변화하는 중국, 중국이 바꾸는 세계 ① 충칭에서 중국의 미래를 보다 | |
![]() |
![]() ![]() |
① 충칭에서 중국의 미래를 보다
“1천만명에 새집과 각종 혜택”
중국 남서부 창강(양쯔강) 물줄기가 자링강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중국 최대 도시 충칭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두 강 위로 깎아지른 듯 솟구친 암벽 위에 위태롭게 올라앉은 도심 지역은 고층빌딩 숲이 즐비한 ‘중국의 시카고’다. 하지만 도심에서 차로 두 시간만 벗어나면 산악과 밭에 둘러싸인 농민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상하이까지 이어지는 창강 수운의 출발점인 충칭항 차오톈먼 부두 근처엔 1~2위안씩 받고 짐을 날라주는 ‘빵빵’이라 불리는 짐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온 농민공들이다. 아마 10년 뒤쯤이면 이런 풍경은 사라질 것이다. 충칭에선 지금 도시로 진입한 농민공들을 중산층으로 만들겠다는, 사회주의 얼굴을 한 세계 최대의 ‘도시화 실험’이 진행중이다.
한국의 80%에 달하는 면적에 3280만명의 인구, 그중 70%가 넘는 2330만명이 농민인 충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실험은 지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충칭은 ‘성장에서 분배로, 수출에서 내수로’의 전환을 내걸고 올해 시작하는 중국 12.5 경제계획의 상징이다.
‘충칭 실험’의 핵심은 농민들에게 도시호구(후커우)를 부여해 도시 주민과 똑같은 의료·교육·양로보험 혜택을 주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도 정부가 지어 농민에게 공급한다. 충칭시는 지난 8월 앞으로 10년 동안 농민 1000만명에게 도시호구를 주는 호구개혁을 시작했다. 대신 농민들은 혜택을 받으면 3년 안에 농경지를 정부에 반환해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충칭시 산하 국유기업의 수익과 토지개발 이익 등으로 충당한다.
충칭시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고문인 추이즈위안 칭화대 교수는 “‘충칭 모델’은 민생 개선을 통해 내수 중심 경제발전을 모색하는 것”이라며 “국유기업 및 토지개발에서 나온 수익을 민생 개선에 활용하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사상의 장점을 결합한 실험”이라고 말했다. 13억 인구의 57%가 아직도 농민인 중국 현실에서 충칭의 개혁은 중국의 미래를 가늠할 열쇠인 셈이다. 야심만만한 실험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농민들은 도시호구를 받아도 중산층으로 정착하기는 쉽지 않다며, ‘최후의 보루’인 토지를 잃고 도시의 최하층으로 전락할까봐 불안해한다. 농민공 우웨이(27)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1년에 1만위안도 못버는데, 나중에 농촌 땅이 도시로 개발되면 몇십만위안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어 도시호구를 받지 않을 것”이라며 “농민들이 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돌아갈 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패를 던졌다. 중앙정부는 이미 공공임대주택과 국유기업 수익의 국가 배당 확대 등 충칭 모델을 전국에 확대해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충칭을 필두로 한 개혁이 성공해 중국의 도시화가 60~70%까지 진행되면 중국은 ‘세계의 시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2030년까지 4억의 중국인이 추가로 도시로 이동해 인구 100만 이상 중국 도시는 현재 43개에서 221개로 늘어날 것으로 매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는 예측한다. 외부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탄탄한 내수기반을 갖춘 중국이 등장한다는 의미다.
‘중국의 길’은 성공할 수 있을까? 빈부격차 해소 실험이 성공해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슈퍼파워’로 등극할 수 있을까?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힘의 외교’가 계속 먹혀들 수 있을까?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의 지은이 마틴 자크는<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빈부격차 해소 문제를 12.5 경제계획에서처럼 단호하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며 “10년 뒤에는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돈이 흘러나오고, 동아시아 무역결제의 절반이 위안화로 이뤄지는 중국 중심의 경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후안강 칭화대 국정연구센터 주임도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민영기업, 국가와 시장이라는 두 손을 가진 ‘중국의 길’의 생명력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의 길’에 대한 의구심도 만만찮다. 다카하라 아키오 일본 도쿄대 교수는 “중국 내부는 안정돼 있지 않으며, 중국의 장래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중국이 근대화에서 포스트근대화로 잘 이행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말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센터의 리처드 부시 소장은 “중국은 부패, 환경, 인권, 빈부격차 등 산적한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는 한 지금 같은 성장이 계속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며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인 현재 중국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충칭/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
내륙 충칭, 제4의 성장축으로 ‘천지개벽’중 | |
풍부한 노동력·값싼 토지·감세 토대로 포화 상태 연해지역 대안으로 급부상 5년전 밭·야산 공장·아파트로 탈바꿈 세계기업 속속 진입…고물가 해결과제 | |
![]() |
![]() ![]() |
충칭은 오랫동안 ‘세계의 끝’이었다. ‘서부의 관문’인 충칭을 넘으면 황량하고 낙후된 서부가 펼쳐진다. 충칭의 ‘천지개벽’은 중국의 70%를 차지하는 광활한 서부의 삶을 바꾸고, 개혁개방 30년을 맞아 연해 지역·수출 중심 성장의 한계에 부닥친 중국에 새로운 성장축을 더하는 출발점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시장경제는 광저우·선전 등 주강삼각주에서 첫걸음을 내디뎠고 1990년대 상하이 푸둥개발이 중심이 된 창강삼각주, 2000년대 톈진 빈하이신구로 발전 동력을 이어왔다. 중국 정부는 2010년 6월 충칭 시내 북부 1200㎢의 ‘양강신구’를 내륙 지역의 유일한 국가급 개발구로 승인했다. 웡제멍 양강신구 관리위원회 주임은 “양강신구는 30년 전 선전, 20년 전 푸둥, 10년 전 빈하이와 같은 의미가 있는 곳”이라며 충칭이 중국 경제의 제4의 성장축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해 말 찾은 충칭은 ‘천지개벽’ 중이었다. 공항에서 가까운 장베이지역은 5년 전만해도 밭과 야산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공장과 고급 아파트, 골프장이 즐비한 풍경으로 탈바꿈했다. 주변 농촌 지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주요 도시와 연결되는 고속철도가 사방으로 뚫리고 있다. 충칭 토박이인 샹성물류회사 셰다오샹 사장은 변화를 온몸으로 실감하는 중이다. “1998년 회사를 연 뒤 천지개벽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공장들이 물건을 만들면 트럭을 수소문해 실어 보내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적 기업들이 몰려오고 산업이 다양해지면서 물류도 첨단화되고 동남아 수출 물동량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그는 말했다.
상하이, 광저우 등 발달한 동남부 연해 지역에 진출했던 많은 기업들이 충칭 등 내륙 지역을 향해 서진중이다. 2009년과 2010년 휼렛패커드, 에이서가 잇따라 충칭에 투자 계약을 체결해 2015년부터 한해 6500만대의 노트북을 생산할 ‘중국의 실리콘밸리’가 들어선다. 포드자동차도 40만대 규모의 새 엔진 공장을 충칭에 짓고 있다. 대만의 거대 전자기업 폭스콘도 공장 일부를 충칭으로 옮겼다. 한국타이어는 9500만달러를 투자해 양강신구에 공장을 건설한다. 충칭의 외국직접투자(FDI)는 2009년 40억달러에 이어 2010년에는 60억달러 목표를 달성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9년 14.9%에 이어 2010년에는 17%에 달했다.
충칭은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토지·세금 감면 등을 내세워, 포화 상태인 연해 지역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창안포드자동차의 구매 담당 간부인 수순원은 “3공장 부지를 결정할 때 충칭과 (연해지역의) 난징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며 “난징이 물류에서 이점이 있지만, 인력 수급, 노동 비용,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서부대개발을 통한 내륙 시장의 성장 등을 고려해 결국 충칭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충칭 시정부 대외무역경제위원회 후지 처장은 “투자자들이 충칭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는 3280만 인구, 주변 중서부까지 포함하면 2억5000만명의 광대한 미개척 시장이 있다는 점”이라며 “현재 충칭과 주변 청두 지역의 발전 속도가 동부 평균보다 높은데, 이 지역 도시화율이 50%도 안 되는 상황에서 도시화, 공업화를 통해 설비·건설 수요가 크게 늘고 경제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화와 호구제도 개혁, 투자 유치 정책은 하나의 장기판 위에서 진행된다”며 “농민들을 대규모로 유입시키려면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택, 사회보험을 제공해야 하지만, 대규모 노동력을 확보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충칭의 개발은 서부대개발이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초점을 맞췄던 지난 10년의 1단계에서, 이제 내수 확대와 민생 개선의 2단계에 들어선다는 의미도 있다.
도시로 들어온 농민들은 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눈부신 혜택이 자신들에게도 고루 돌아올지에 대한 의문을 함께 품고 있다. 경제가 발달한 푸젠성에서 8년 동안 일하다가 2007년 고향 충칭으로 돌아온 농민공 자딩춘(28)은 “19살에 일을 시작했을 때는 당연히 일자리도 많고 발전한 연해지역에 가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이제는 충칭이 발전해 일자리가 많이 늘고 연해지역과의 임금 차이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하지만 “물가, 집값이 너무 올라 생활의 압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내놨다고 들었지만 노동자 임금은 영원히 성장률을 못 따라갈 것”이라고 걱정했다. |
“충칭모델, 세계 경제에도 의미있어” | |
인터뷰/추이즈위안 칭화대 공공관리학과 교수 | |
![]() |
![]() ![]() |
“충칭모델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사상의 장점을 결합한 실험이다.”
중국 신좌파사상을 대표하는 학자인 추이즈위안(사진) 칭화대 공공관리학과 교수는 충칭의 도시화와 민생개선 정책이 중국의 빈부·도농격차, 수출 의존 성장모델의 문제점을 치유할 해법이라고 본다. 그는 지난해 5월 아예 교수직을 휴직하고 충칭시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의 고문을 맡아 직접 그 변화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충칭시 정부청사에서 만난 추이 교수는 “충칭 도시화의 특징은 정부가 국유기업과 토지개발 수익을 민생 개선에 활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충칭시를 이끄는 보시라이 당서기와 황치판 시장이라는 ‘극과 극’ 인물의 “기묘한 조합”이 충칭모델을 이끄는 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상하이 푸동개발의 주역중 한사람이었던 황치판 시장은 2003년 충칭으로 온 뒤 서남증권 등 충칭시 국유기업의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웠고, 토지시장을 엄격하게 관리해 부동산 개발회사들의 이익 독점을 막고 도시건설용지의 60%를 시 정부가 관할하게 했다. 2007년 부임한 보시라이 당서기는 황 시장이 쌓아둔 경제적 기초를 바탕으로 민생발전을 강조하는 과감한 프로그램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추이 교수는 “국유기업이 발달하면 민영기업이 쇠퇴한다는 것이 일반적 관념이지만, 충칭에서는 국유기업의 성공이 민영기업의 성공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충칭시 정부가 국유기업의 수익을 활용함으로써 재정 여유가 생겨 민영기업의 세금을 중국 평균 25%~33%선보다 낮은 15%로 유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더많은 기업과 일자리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충칭모델이 중국 전역에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앙정부는 2010년 10월 충칭의 공공임대주택 모델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도록 결정했다. 충칭의 길이 성공한다면 일반적 자본주의와 달리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오랫동안 잊혀졋던 사회공정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제시할 것이다.” 아울러 “서방국가들도 금융위기 이후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결합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충칭모델이 세계 경제에도 의미있는 모델이라고도 지적한다. 그는 충칭 모델이 빈부격차의 원인은 토지사유화라고 지적한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이론 등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다. 충칭시의 도시화 개혁 과정에서 농민들이 농경지 반환을 꺼리는 상황에 대해 “강제적 토지 반환은 없으며, 농민들이 토지를 정부의 토지교역소에 ‘팔면’ 다른 도시의 토지보상금보다 높은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정부는 이 토지를 도시 개발과 식량안보에 필요한 농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충칭/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
기사등록 : 2011-01-02 오후 08:20:13 ![]() |
ⓒ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
'discourse & iss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반도 브리핑] '北 붕괴 종말론'과 다가오는 '심판의 날' (0) | 2011.01.05 |
---|---|
[중국의 길 실험과 도전] 1부 2) 뉴욕에서 중국의 미래를 보다 (0) | 2011.01.04 |
[PNC report] 이슈 분석 : 2011년 정치.정세 전망 (0) | 2010.12.29 |
[PNC report] 이슈 분석 : 2010년 정치권 총 결산 (0) | 2010.12.28 |
[한겨레신문] 2010년이 던진 21세기 화두 5 (0) | 2010.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