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시장지배력 남용 방지 ‘헌법 119조2항’ 삭제 주장

2012. 6. 5. 14:39sensitivity

 

 

전경련, 시장지배력 남용 방지 ‘헌법 119조2항’ 삭제 주장

등록 : 2012.06.04 20:40 수정 : 2012.06.05 10:46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4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 2012 대한민국에의 시사점’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시장에 대한 맹신, 그것은 경제학 책과 신문기사, 칼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다. 시장은 합리적인 것,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 잘 돌아가는 것, 시장은 선이고 시장원리를 파괴하는 것은 악이다 라는 가치가 머리 속에 내장되어 있다.

오랜시간 이렇게 듣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시장의 무능이 드러났다. 시장원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잘못된 부분에 대해 교정하고, 그 교정 과정에 국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와 결합되지 않은 시장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시장은 사람과 상품이 오가는 공간이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상품, 상품과 상품이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다. 사람이 없는 시장은 시장으로서의 의미가 없으며, 상품이 없는 시장은 이미 시...
장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와 사물의 가치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전경련 싱크탱크의 논의를 들어보면, 답답하다. 누가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을 판단하는가, 누가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을 막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법과 제도이며 행정권력이다. 법과 제도를 누가 만드는가? 행정권력은 어떻게 위임되는가? 그 원천은 국민이다. 전경련은 시장원리의 위대함을 믿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의 시장원리를 통해 자신의 자본과 권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공생의 미덕이 보이지 않는다. 생존에 허덕이는 다수의 생존윤리에 대한 일말의 측은지심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자본의 논리다.

 

싱크탱크 ‘한경연’ 정책토론회

 

재계 “국가개입 만능규범 안돼” 경제개혁 반대 여론몰이
개혁진보 성향 학자들 “재벌독재 유지하겠단 주장” 반박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회장 허창수)의 싱크탱크 격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경제민주화의 근간이 되는 헌법 119조2항의 삭제를 주장했다. 4·11 총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화두로 떠올랐을 때는 반대 목소리를 자제했던 재계가 새누리당에 다수당 자리가 돌아간 19대 국회의 개원을 계기로 반경제민주화 움직임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한경연은 4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연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법적 측면에서 본 경제민주화의 한계’(신석훈 선임연구위원)에서 “시장(실패)에 대한 국가개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경제민주화 근거조항인) 헌법 119조2항은 해석상 혼란만 가중시키기 때문에 삭제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밝힌 119조1항과 경제민주화 관련 119조2항은 원칙과 보완의 관계이기 때문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만능규범처럼 인식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정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도록 한 헌법 37조2항으로도 정부가 시장개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헌법 119조2항은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 적정 소득분배, 시장 지배력 및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간 조화를 위해 정부가 경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해, 경제민주화의 근거가 된다. 전경련 간부는 “재계가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헌법 119조2항의 폐기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연은 헌법재판소가 우리나라 경제 질서로 설명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독일모델)에 대해서도 “사회적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인해 시장경제일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독일에서도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허용함으로써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또 “최근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조항을 근거로 경제정책을 통한 성장과 사회정책을 통한 분배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경제성장을 위한 경제정책 담당 부분과 분배,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사회정책 담당 부분으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를 지지하는 법학자들은 한경연의 헌법 119조2항 폐지 주장에 반대한다. 이상영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119조 1항과 2항은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하고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시장실패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바로잡지 않으면 시장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독일에서도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말할 때 ‘사회적’과 ‘시장경제’는 주종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로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개혁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은 한경연의 발표는 재계에 경제민주화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한국 경제의 문제는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지, 과잉적용해서 생긴 게 아니다”라며 “재벌의 경제독재 체제를 바로잡는 것에 반대하고 계속 유지하겠다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시민단체들은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양극화 심화를 초래하는 기존 성장전략을 고수하는 한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며 경제-사회정책의 분리에 반대한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층에게 분배하자고 주장한 것은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라며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은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19대 국회 개원을 맞아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관련 입법안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에 맞춰 반대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경련은 각 정당의 복지공약을 이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분석한 내용과 대-중소기업 양극화가 대기업 책임이 아니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할 계획이다. 한경연도 이날 토론회에서 정치권이 추진하는 대기업의 부당한 납품단가 감액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하도급거래 개선정책과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 정책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