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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을 임명하며 대선 패배 이후 본격적인 쇄신작업에 돌입한 13일 오후 한 당직자가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 놓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흉상 옆을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민주당의 길을 묻는다] ① 무엇이 문제인가
제1야당 패배 악순환…‘당 얼굴’ 바뀌어도 계파담합 그대로
친노·주류 지도부 돌려막기…쇄신요구 민심에 귀 막아
총선·대선 등 잇따라 충격패
2004년 이후 21번째 지도부
뼈깎는 혁신없이 ‘바통터치’만
민주통합당(민주당)은 새해 들어 당 누리집(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새로 만들었다. 13일 현재 달랑 19개의 의견만 올라 있다. 이전에 올라온 글들은 모두 사라졌다. 대선 패배 직후 게시판을 가득 메웠던 당원, 지지자들의 분노의 목소리는 모두 지워졌다. 민심을 외면하는 민주당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북지역 민주당 의원 보좌관인 ㄱ씨는 대선 직후 주변 사람들이 보낸 차가운 시선과 냉소적인 말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당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그 당을 깨버리겠다고 하더라. 당신들이 호남 기득권 위에서, 호남 사람들 위에서 군림한 것 외에 한 게 뭐냐, 당을 해체해버리는 게 낫다고 하더라.” 그는 “
당내의 뿌리 깊은 계파주의와 패권주의를 청산하지 않으면 내년 지방선거부터 호남에서 무소속이나 신당 바람이 정말 거세게 불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박경주(34)씨는 대선 이후 뉴스를 끊었다. 구독하던 신문 2개를 절독했다. 사무실에선 포털에 접속하지 않는다. 집에 있는 컴퓨터 엘시디(LCD) 모니터엔 하얀 백지를 포스트잇으로 붙여 놨다. 포털의 뉴스창이 보이는 위치다. 뉴스가 보기 싫어 붙였다. 대선 때 그는 휴대전화 목록에 있는 300여명의 지인들에게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다. 보수적인 부모님도 집요한 설득 끝에 지지 후보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는 “늙은 민주당 때문에 안철수가 포기했고, 문재인도 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 지금까지, 민주당에서는 누구 하나 ‘내 탓이오’를 외치는 사람이 없다. 한쪽에선 안철수가 소극적이었다고, 이정희가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고, 비주류가 손을 놓았다고 탓했다. 다른 한쪽에선 문재인 후보가 ‘친노 패권주의’와 안철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고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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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다음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끌 비상대책위원들을 소개한 뒤 인사말을 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10년을 집권했던 민주당이 왜 이렇게 된 걸까? 9일 출범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는 2004년 17대 국회부터 따지면, 21번째 지도부다. 민주통합당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이렇게 4번의 중요한 선거에서 패했다. 패배할 때마다 지도부가 교체됐다. 19대 국회 들어서도 1년 만에 5차례 지도부를 바꿨다. 2004년부터 따지면 평균 5개월에 1번꼴로 지도부가 교체됐다. 혁신은 없이 얼굴만 바꾸는 변화는 패배의 재생산으로 이어졌다.
이런 악순환의 근본 원인으로 민주당의 ‘계파 담합형 리더십’을 꼽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이끈 한명숙 대표 체제의 별칭은 ‘당내 오너들의 세력연합’이었다. 시민통합당(혁신과 통합)으로 합류한 이해찬·문재인과 통합민주당 대표였던 손학규, 원내대표 박지원, 정세균 전 대표 등이 주요 오너였다. 4월 총선 지역구 후보 공천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이들로는 한명숙 당시 대표와 정세균 의원 등이 꼽힌다.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백원우 전 의원 등을 통해 ‘친노’로 분류되는 이들도 세력을 확장했다. 공천 심사에 참여했던 한 외부 인사는 “지역구에선 시민통합당 쪽 지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발한 탓에, 비례공천에서는 그쪽 인물들이 절반 이상 공천됐다”고 말했다. 계파 공천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박영선 당시 최고위원이 공천 심사 도중 “공천에 개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며 최고위원을 사퇴할 정도였다.
4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한명숙 대표가 물러난 이후, 패인을 엄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표 권한을 승계한 문성근 당시 최고위원은 “4월 총선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하겠다”며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에 총선 평가를 맡겼다. 문성근 대행은 평가보고서가 나오면 당내는 물론 언론 등 외부에도 공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민주정책연구원은 4월 말, ‘4·11 총선 평가와 과제’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작성해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 ‘4월 총선’ 한명숙 대표 체제
당내 오너들의 세력연합 ‘별칭’
“시민통합당쪽 지역공천 반발에
비례공천 절반 이상 할애 뒷말”
보고서는 4·11 총선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야당의 선거 실패가 여당의 승리 요인이 된 기현상이 나타난 선거’로 규정하고 그 실패의 주요 요인으로 △야권연대 전략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 그리고 △계파 안배로 인한 공천 실패를 꼽았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계파 사이에 공천책임론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정치적’ 이유로 대외비로 분류된 이후 당내 회람까지 금지됐다.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민주당 당직자는 “총선 평가 보고서가 나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세력들이 평가 보고서 공개를 막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전당대회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따지고 원인을 짚어 혁신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러나 전당대회는 혁신 방법을 놓고 경쟁하는 대신, 이른바 ‘이해찬-박지원 담합’을 둘러싼 논란 속에 진행됐고 결과는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체제’의 구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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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박지원 ‘담합’ 체제
총선 패배한 친노·주류 연합군
호남 일부 끌어들여 다시 패권
486그룹도 계파담합 구조 일조
민주당은 한명숙 대표 체제로 4월 총선을 치렀고, 이해찬 대표 체제로 대선후보 경선을 진행했다. 두 사람 모두 참여정부의 총리 출신이다.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하자, 이를 수습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문희상 의원이 뽑혔다. 문 후보와 문 의원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지도부 교체가 주도세력 교체로 이어지지 않는 계파 담합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민주당은 4월 총선에 앞서 ‘혁신과 통합’(시민통합당)과 통합하고, 대선에선 정치권 바깥의 시민사회 세력과 힘을 합쳤다. 하지만 외부세력 수혈도 계파 담합 구조 아래선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오히려 계파의 문제점을 가리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계파 담합 구조를 지탱하는 민주당내 3대 그룹으로는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문재인 후보 등 참여정부 출신이 주축인 ‘친노 그룹’, 정세균·문희상 의원 등으로 대표되는 중진그룹, 우상호·강기정·윤호중 의원 등의 ‘486그룹’이 꼽힌다. 이들을 한데 묶어 ‘친노·주류세력’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 그룹은 상황에 따라 협력, 경쟁하면서도 언제나 주류 연합군을 형성해 당의 의사결정권을 주도했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486그룹은 정세균-손학규-한명숙-이해찬 대표로 이어지는 지도부에서 핵심 당직을 차지하며 계파 담합 구조의 재생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체제는 총선에서 패한 친노·주류 연합군이 호남세력 일부를 끌어들여 다시 주도권 온존을 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계파 담합 구조의 폐해는 생각보다 크다.
정책이나 노선이 아니라 과거 인연과 친소관계를 중심으로 묶인 계파는 세력 극대화를 위해 당권, 공천권 경쟁에 몰두하며 계파 패권주의를 낳는다. 패권주의는 당의 결속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 민주당의 상황을 1990년대 이후 항시적 위기를 겪으며 끝내 정권을 잃었던 일본 자유민주당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다. 혁신을 바라는 민심을 외면한 채,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계파의 주요 인물들이 돌아가면서 당권을 나눠 갖는 계파 담합 구조가 똑같다는 지적이다.
당내에서도 대선 패배의 내부 원인으로 계파 담합 구조를 꼽는 이들이 많다. 한 재선 의원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야권 지지자들이 결집하고 야당의 승리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계파주의가 노골적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총선의 계파공천 파문이 그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때 안철수 캠프는 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당내 기득권 포기’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민주당의 계파 담합 구조를 해소하라는 요구였다. 안철수 쪽은 계파 담합형 리더십이 온존하는 상황에선 단일화를 해봤자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고, 새 정치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것도 요원하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한 인사는 “당시 상황을 보면 민주당은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 집단이었다. 민주당 주류들은 철저하게 안철수를 불쏘시개로 생각한다고 우리는 판단했다”고 말했다.
# 안철수 캠프 “기득권 포기” 주장
“계파담합 구조로는 새정치 요원”
‘주류 변화 거부’ 단일화 걸림돌
막판 ‘친노 퇴진’ 요구 끝내 외면
대선 막판에 당 안팎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의원직 사퇴와 이해찬-한명숙 의원의 2선 퇴진, 그리고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친노 인사들이 청와대에 가지 않고 정무직에 나서지 않겠다는 백의종군 선언을 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까지 나서 이런 의견을 문재인 후보가 받아들일 것을 권했다. 당내에선 박영선 선거대책본부장과 이상민 동행2본부장 그리고 이종걸 전 최고위원 등이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거듭 압박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를 둘러싼 친노·주류에선 이 요구를 끝내 외면했다.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와 선거대책위원회 그리고 민주당이 따로 움직인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계파간 권력투쟁이 만든 결과였다. 민주당엔 친노·주류 외에도 손학규계, 민평련계(옛 김근태계), 김한길 의원과 쇄신파 의원들이 모인 비주류계가 있다. 대선 캠프에서 주요한 구실을 했던 한 의원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계파들끼리 서로 믿지를 못했다. 계파들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이해찬 대표가 2선으로 후퇴하고 이른바 ‘친노 9인방’이 캠프에서 빠졌지만, 그 뒤에 만들어진 10인 공동선대위원장 체제 역시 각 계파들이 세력 균형을 맞추고 있었던 구조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선거 지휘부가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는 기형 구조로 짜인 것이다.
# ‘기형적’ 10인공동선대위원장 체제
‘친노 9인방’ 빠진 뒤 실권 잃어
모든 결정권은 후보·비서실로
안철수 면담 불발사태 등 낳아
당시 선대위에 참여했던 한 민주당 당직자는 “모든 일정은 문 후보의 확인을 받아야 확정이 됐다. 후보가 선대위에서 올리는 보고와 계획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외부에서 오는 전화와 문자를 확인하고 일정을 확정하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가 사퇴한 안철수 후보의 자택을 사전 통보 없이 방문했다가 만나지 못해 당내에서 논란이 인 적이 있다. 문 후보가 선대위 공식기구나 일정팀에도 알리지 않은 채 청와대 출신 한 의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잡은 일정이었다.
민주당의 계파 담합 구조는 기본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공백을 채울 ‘정치리더십 세우기’에 실패한 데서 비롯한다. 청산이나 해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계파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계파 패권주의를 해결하지 않는 한 민주당의 혁신은 요원할 것이란 지적은 당내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에서는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인물들을 영입해야 하는데, 현재의 계파 구조와 패권주의를 청산하지 않으면 어렵다. 새로운 인재들이 민주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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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비대위, 대선 패배 '참회의 3배'>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앞줄 흰 장갑 낀 이)과 비상대책위원, 국회의원, 당직자 등 150여명이 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한 뒤 ‘국민의 열화 같은 성원을 받고도 대통령선거에 패배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민주당의 길을 묻는다
② 어떻게 고칠 것인가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국립현충원에서 “통곡의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열화와 같은 국민의 성원에 부응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이제 거듭나겠다. ‘사즉생’의 각오로 거듭나겠다. 오직 국민만을 바로 보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겠다”며 참회의 삼배를 올렸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한 것은 12월19일이었다. 비대위원장을 선출한 것은 1월9일이었다. 비상지도부 선출에만 무려 3주가 걸렸다. 그동안 당내에선 ‘네 탓’ 싸움을 벌였다.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는 대선 패배의 책임이 대부분 민주당에 있고 지금의 지리멸렬한 민주당으로는 2017년 대선도 이길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올바른 처방에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문재인 전 후보는 대통령 선거 다음날 캠프 해단식에서 패배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1% 부족했다. 후보의 부족함 외에, 친노의 한계, 민주통합당의 한계, 진영의 논리에 갇혀 중간층으로 확장하지 못한 것, 바닥 조직의 빈틈과 공중전에 의존하는 선거 역량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야권의 대선 평가는 문재인 전 후보의 진단과 전혀 다르다. 우선 1% 부족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패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왜 패했는지 이유도 아직은 잘 모른다. 예를 들어 50대 유권자는 투표율이 왜 높았는지, 박근혜 후보를 왜 더 많이 지지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때문이라거나 ‘엔엘엘’(NLL)과 ‘이정희’ 때문이라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안철수 전 후보와의 단일화는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패배의 주요 원인이 선거 지형의 근본적 한계 때문인지, 선거 전략의 부재 때문인지도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① 패배원인 분석부터
집값대책 소홀·NLL·이정희…
단일화 효과 놓고도 논쟁중
선거지형 불리? 전략 부재?
실패 원인 찾는 게 ‘첫 단추’
하지만 대선 패배의 원인 중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명료해지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 신뢰의 상실, 둘째, 조직의 붕괴다. 신뢰와 조직은 정당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민주당이 기본에서 밀렸다는 얘기다. 당연히 민주당 혁신의 처방도 여기서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둘째, 조직을 재건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일 것이다.
신뢰 회복에 대해 이낙연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이 12월30일 ‘제3세대 민주당을 준비해야 한다’며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제안을 한 것이 있다. 요지는 ‘정당 문화’와 ‘정책적 태도’를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인권, 복지 같은 진보적 가치를 충분히 중시하지만, 그러나 막말이나 거친 태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접근은 싫어하는 성향을 ‘태도보수’라고 한다. 고령화, 고학력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태도보수의 유탄을 맞지는 않았을까?”
“어떤 정치적 주장에 동의해도 내 생활에 나쁜 영향을 줄지도 모를 변화는 거부하는 성향을 ‘생활보수’라고 한다. 빈곤층은 세상이 확 바뀌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당장은 저녁에 먹을 라면을 걱정한다. 민주당은 그런 국민들께 신뢰받는 정책을 꾸준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② 유권자 신뢰 회복
박 ‘약속 지키는’ 이미지 구축
민주당은 비전·정책 나열만 해
‘생활보수’ 유권자들 다 놓쳐
정교한 조세·복지정책 내놔야
민병두 의원(서울 동대문을)은 좀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평화통일 세 분야에서 우리가 내놓았던 공약의 타당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본격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있다. 노선이나 이념 투쟁이 아니라,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 그래야 ‘저 사람들 솔직해졌네’라고 국민들이 눈길을 주기 시작할 것이다.”
“유권자 분포가 달라졌지만 민주당에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역구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 민주당이 당선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아파트 친화적, 여성 친화적, 노인 친화적, 다문화 친화적 정책을 얼마든지 개발해서 내놓을 수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1월7일 대선평가 토론회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지난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구축했다. 따라서 그가 내놓은 공약은 ‘체화’된 것으로 유권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은 온갖 비전과 정책을 나열했다. 모든 것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비쳤다”고 지적했다. 비전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 지속적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는 제안이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같은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정치 이념을 재구성해야 한다. 보수진영이 내세우는 자유시장, 경쟁, 안보에 맞서 일관성 있는 정치이념을 제시해야 한다. 연대, 통합, 공동체라는 거대담론을 넘어 민생의제를 강조해야 하며 정교한 조세정책과 복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신뢰 회복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문화 및 태도의 변화, 맞춤형 정책 개발 및 우선순위 조정, 정치 이념 재구성 등은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다행인 것은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수도권 지역구 및 비례대표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구모임이나 정책모임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성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③ 무너진 조직 재건
과거에는 농성장이라도 제공
지금은 현장 소통 조직 ‘붕괴’
‘중산층·서민정당’ 계급성 찾고
중앙서 지역조직 재건 지원을
민주당 혁신에서 신뢰가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면, 조직은 하드웨어에 해당한다. 민주당의 전국 지역별 조직은 상당수가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을 때 만들어졌다. 호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호남향우회와 관련이 있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25년의 세월이 지나고 구성원들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호남향우회는 이제 조직으로서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풀뿌리 시민단체와 연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냥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새누리당 일선 조직이 기득권 세력과 관변단체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윤후덕 의원(경기 파주갑)은 “정당의 조직이 유지되려면 계급성과 지역성이 필요할 텐데, 민주당의 계급성은 완전히 없어졌고 지역성은 고립되어 버렸다. 진보정당이 건강하게 자라서 연대가 의미를 가질 때 집권 가능성이 열릴 텐데, 지금으로서는 아득하기만 하다”고 어두운 전망을 했다.
윤 의원이 지적하는 ‘계급성’ 실종은 야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내세웠다. ‘계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층’을 대변하겠다는 의지를 그렇게 드러낸 것이다. 그 뒤 집권여당의 지위를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차지했지만 계층을 대표하는 정체성마저 서서히 약해져 갔다.
우원식 의원(서울 노원을)도 비슷한 맥락에서 “‘야당 귀족주의’ 때문에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했다. ‘생활정치’ 조직을 재건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월소득 200만원 이하 계층, 50대 이상의 계층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 계층은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찾아가야 한다. 과거 중앙당에는 노동위원회, 농민위원회, 인권위원회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조직이 없다. 우리에게는 지금 ‘50대위원회’, ‘영세민위원회’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평민당 때 야당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농성장이라도 제공했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당사를 경찰이 지키고 있다. 중앙당과 지역위원회에 다시 현장과 소통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윤호중 의원(경기 구리)도 조직 재건을 민주당의 활로로 보고 있다.
“지역의 생활공동체는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다. 정당도 이제 거주지가 아니라 직장에 직장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서는 오히려 봉사나 취미활동, 캠페인을 중심으로 소통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야 한다.”
민주당이 신뢰를 회복하고 조직을 재건하려면 127명 국회의원이나, 각 지역 위원장들의 개인기도 필요하지만 중앙당 차원의 기획과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은 비대위 체제 이후 들어서게 될 민주당 지도부가 매우 중요하다. 확고한 신념과 계획을 가지고 달려들어야 민주당 재건이 가능하다. 문희상 위원장과 민주당 비대위가 민주당 재건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을까?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이런 제안을 했다.
“민주당 해체 여론이 있지만,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야권 전체를 보고 추상적으로는 ‘좋은 정당 만들기’를 해야 하고, 구체적으로는 ‘민주당 재편 또는 재건 운동’을 해야 한다. 괜찮은 정당 하나가 서야 나머지도 다 가능하다. 민주당은 좋은 대선후보를 당분간 잊어버려야 한다. 좋은 당 대표, 괜찮은 당내 리더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감’에 의존한 전략, 실패 불러…데이터 근거 ‘과학 선거’ 해야 |
등록 : 2013.01.16 20:24 수정 : 2013.01.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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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회초리 민생 현장 방문’ 이틀째인 16일 오후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천막농성장을 찾아 고 최강서씨 유족과 한진중공업 노조 관계자에게 절을 하고 있다. 부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민주당의 길을 묻는다
③ 현대화가 살길이다
민주통합당 핵심 전략가들은 대선 전 1300만표를 넘으면 문재인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단일화를 해서 65% 투표율에 1300만표를 얻으면 충분히 이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일화만 성공하면 승리할 것이란 낙관론이 넘쳐났다. 문 후보는 1469만여표를 얻고서도 패했다. ‘예기치 못한 패배’는 민주당의 좌절과 후유증을 증폭시켰다.
“높은 투표율=승리” 빗나간 예측
“투표율 100% 돼도 결과 같아”
전문가들 충고 귓등으로
데이터 취약해 전략 오락가락
계파 해체, 정당문화 개선 등 민주당의 혁신과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주문들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고 시급한 과제로는 선거 지휘부로서 당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꼽힌다. 정책과 전략, 홍보 등 당의 핵심 기능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해 유능하고 현대적이며 과학화된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일관된 전략 설정, 이에 기반한 맞춤형 정책 개발, 이를 이슈화해 선거전을 주도하고 민심을 사로잡는 캠페인 영역에서 모두 역량 부족을 드러내며 새누리당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보와 광고에서도 완패했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최근 독자적인 대선평가 보고서를 펴낸 강민 민주당 대의원은 “이번 대선은 (100만여표 차이였으니) 50여만표만 더 가져오면 승리하는 선거였다. 빅 데이터(디지털 기술로 수집·분석이 가능해진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마이크로 타기팅(분야별로 조금씩 표를 끌어오는 소수 맞춤형 전략)을 하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5060 증가 등 인구구성 분석
세대별 욕망과 불안 읽고
맞춤형 정책 제시 급선무
“50대 장기간 조사해 자료 쌓길”
미국 민주당의 사례는 시사점을 준다. 미국 민주당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한 것을 시작으로 내리 3차례의 대선에서 패한 뒤 89년 처절한 변화의 몸부림을 거치고서야 92년 빌 클린턴을 앞세워 정권을 탈환한다. 이때 민주당의 변화 기반을 닦은 이가 론 브라운이다. 그는 89~93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단 한 가지를 자신의 핵심 책무로 강조했다. 누가 당의 후보가 되든지 활용할 수 있도록 각종 선거와 관련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모으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에스엔에스(SNS) 컨설턴트인 유승찬씨는 “미국 민주당도 각자 계파의 이해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대선 전략과 정책을 만들었고 제대로 된 분석과 평가가 없었다. 브라운 위원장 이후에야 ‘데이터 선거’를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미국 민주당은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해 시대 흐름과 사람들의 욕망 구조를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그에 근거해 전략과 정책을 짜는 과학 선거의 시대를 열었다. 빌 클린턴이 내세운 ‘정책의 정치화’와 중도적 색채를 강화한 ‘신민주당 노선’도 브라운이 기획한 데이터 선거의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변화로 평가된다. 유승찬씨는 “이런 데이터 선거의 흐름은 버락 오바마에 와서 트로스팀이라고 불리는 280만명의 트위트 전담팀으로 꽃을 피웠다. 트위트 데이터 분석에 근거해 지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우세한 뉴욕 트로스팀은 대거 경합주로 이동해 활동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대선에서 전략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감’에 의존하는 기존의 낡은 습성과 결별하지 못했다. 오류로 드러난 세대전략과 투표율 전략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은 투표율 상승이 무조건 민주당 후보한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투표율 높이기 전략으로 투표시간 연장에 집착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정책과 핵심 슬로건 등 내용을 내세워 선거전을 펼쳐야 할 때 민주당은 투표시간 연장에 공을 쏟았다. 투표시간 연장이 투표율을 높이는 데 별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 근원적으로 투표율이 실제 선거 결과와 연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분석이 제기됐지만 민주당은 이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1987년 이후 국내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설령 투표율이 100%가 된다 해도 선거 결과는 거의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율이 높아질 경우 결과가 달라지는 선거가 딱 2번 있었지만, 이는 오히려 민주당이 승리한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승리로 뒤바뀌는 사례였다”고 말했다.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는 민주당의 전략적 판단 자체가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추정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얘기를 민주당 쪽에 전했지만, 민주당은 투표율에 더욱 매몰됐다”고 했다.
투표율이 높으면 무조건 유리할 것이란 착각은 잘못된 세대전략으로 이어졌다. 민병두 의원은 대선 패인을 분석한 글에서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의 세대전략은 20~30대의 ‘집단적 대폭발’이었다. 이것이 핵심 전략이었다. 그리고 스윙보터(swing voter·부동층)로서 40대의 우군화였다. 50대의 보수화와 결집을 등한시했고, 심지어 50대의 소외감을 방치하고 즐긴 측면도 있다”고 짚었다. 5060 세대의 증가라는 인구 구성의 변화와 안철수 후보 지지층의 분화 가능성 등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전제됐더라면 투표율 높이기와 2030 세대에 과도하게 목을 맸던 민주당의 전략도 달라졌을 수 있다.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정밀한 분석이 없다 보니 캠프의 전략 또한 오락가락했다. 문재인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 부산 유세에서 ‘박근혜 후보는 유신 잔당’이라고 공격하며 ‘박정희 대 노무현’ 구도를 자초했다. 뒤이어 ‘정권교체론’으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으나, 이 또한 과거 심판의 회고적 성격이 강해 문 후보의 비전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유권자들은 민생 비전이 아니라 정치공방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평가했다.
민주정책연 계파와 무관하게
당 싱크탱크로 발전시켜야
장기전략 집중·데이터 축적하게
“창조적 대안 제시 기구 활용을”
우위를 자신했던 정책 경쟁에서도 취약점을 드러냈다. 단일화 과정 관리 실패로 단일화 이후 민생 비전을 중심으로 문 후보의 강점을 살려나가겠다는 구상에 차질을 빚었다. 문재인을 찍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의 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인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와 반값 등록금, 0~5살 무상보육 등의 민생공약을 일부 마련하고도, 선거전의 핵심 의제로 이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단일화에 집착하다 보니 정책을 강조할 여력이 부족했던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김기식 의원은 “‘새정치’ 같은 추상적 구호에 매몰돼, 민생정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63%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찍은 50대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맞춤형 민생 공약 제시에서 역부족을 보였다. 세대별 욕망과 불안을 읽어내고 이를 달랠 맞춤형 정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갖췄더라면, 적어도 50대 89%(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가 ‘묻지마 투표’에 나서는 상황은 없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뒤늦게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지와, 이런 비전을 후보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체화해 유권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느냐의 두 가지에서 민주당이 모두 졌다”고 말했다. 유승찬 컨설턴트는 “이제라도 민주당은 50대 3000명을 장기간 세부 조사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대책을 세우는 식의 현대적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은 1980년대 3연패뒤
주먹구구 아닌 데이터 선거로 전환
사람들 욕망구조 냉정한 분석
‘신민주당’ 노선 내걸어 승리
당의 현대화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당의 연구 및 정책 기능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민주정책연구원을 계파의 부침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당의 두뇌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민주정책연구원은 연간 45억원의 국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집권을 준비하는 정책 싱크탱크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특정 정파와 지도부가 요구하는 단기 전술적 문제를 연구하는 데 역량이 허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강민 대의원은 “연구원은 장기 전략에 집중하고 데이터를 집약해야 한다. 당명이 바뀌고 선거가 끝나고 지도부가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자료를 관리하고 분석하며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단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유능한 정당이 중요하다. 선거 치르는 능력과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당료를 공채하고 당내 선거와 계파 다툼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민주당도 당력을 키워야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리더십 혁신으로 변화 인프라 만든 미 민주당 성공 살펴야 |
등록 : 2013.01.17 20:13 수정 : 2013.01.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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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후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민주당의 길을 묻는다 ④ 미국 민주당에서 배운다
기고 /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2004년의 미국은 대선으로 바빴다. 여론은 집권당인 공화당과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 ‘경제가 전년도에 비해 나빠졌다’는 여론이 45%에 이르렀고, 나아졌다는 여론은 고작 24%에 불과했다. ‘부시 대통령이 경제를 잘 운영하고 있다’는 여론은 41%인 반면, ‘그렇지 못하다’는 여론은 59%에 육박했다. 후보의 이름을 넣어서 벌인 여론조사에서도 부시와 민주당의 존 케리는 엎치락뒤치락했다. 투표결과에 대한 예측 조사에서도 13개 기관은 부시의 우위를, 5개 기관은 케리의 우위를 점쳤다.
2008년 지도부 교체가 ‘승리 배경…펠로시 강력한 리더십도 큰 역할
’하워드 딘 ‘지역 풀뿌리’와 결속, 대중적 열망 당으로 끌어들여
그런데 결과는 민주당의 패배였다. 반전 여론이 높아가는 상황인데도 전쟁 프레임을 받아들인 채 전쟁영웅인 존 케리를 맞춤 후보로 내세우는 전략을 민주당이 구사한 탓이다. 2.4%포인트의 석패였지만 사실 예정된 패배였다. 케리는 전쟁에 대한 분노와 빈곤의 증가 4500만의 건강보험 제외자, 고용불안과 임금 하락 등 미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에 공감하고, 이를 동원했어야 했다. 찰스 더버 교수는 케리 후보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지금 진절머리를 치고 있습니다. 부시와 기업들의 권력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케리 당신이 정치권과 민주당을 뒤흔들어 각성시킬 것이라고 그들이 믿는다면, 이 나라를 민주주의적 원칙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수백만의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될 것이며, 비로소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케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회경제적 쟁점을 만들지도 않고,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분명한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공화당보다 이라크 전쟁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하워드 딘 열풍을 만들어냈던 당내 풀뿌리 조직, ‘무브온’과 같은 진보적 조직들 사이에서 일어나던 열광적인 반전 흐름과 겉돌았다. 즉, 그 흐름을 이용해 민주당의 재포장(rebrand)을 추진할 뿐 근본적인 재창조(reinvent)는 없었다. ‘부시가 나라를 망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다’는 반부시 열망을 투표로 전화시키지 못했다.
2004년 케리는 ‘반 부시’에만 몰입…당의 근본적 재창조 못해 낙선
사회경제적 쟁점 만들지 않고 진보조직들 반전 흐름에 겉돌아
요컨대 민주당 지도부의 어젠더는 ‘부시만 아니면 누구라도 좋다’(Anybody But Bush)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보통사람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비전과 민생 해법을 갖고 있지 않으면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반사이익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2004년 선거에서 누굴 좋아해서 찍은 69%의 투표자 중에서 부시는 59%를 얻어 40%를 받은 케리를 크게 앞지른 반면, 누군가 싫어서 찍은 25% 중에서는 케리가 70%로, 25%의 부시를 압도했다. 케리의 표는 (케리) 호감이 아니라 (부시) 반감 투표였던 셈이다.
이 패배는 교훈을 던진다. 맞춤형의 ‘좋은 후보’가 승리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후보가 아무리 그럴싸해도 대중과 소통하는 정당, 소구력 있는 정책, 신뢰받는 리더십 등 ‘좋은 대안’으로 먼저 서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2008년 공화당과 존 매케인 후보가 패한 것도 신뢰할 만한 변화의 담대한 리더십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2년 대한민국의 민주통합당이 집권에 실패한 것도 같은 이유다. 민주당은 신뢰받는 대안, 수권정당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먼저 변화하지 않은 채, 차별화되는 사회경제적 전선도 없이 그저 괜찮은 후보를 내세우는 데 급급했다.
1992년 영국의 노동당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미 3연패한 터라 정권교체의 분위기가 만연했고, 노동당도 새로운 정책대안으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언론의 분위기도 그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선거 결과는 보수당의 승리였다. 대처가 없는 상황에서도 노동당이 패배한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다. 하나는 보수당이 공포를 동원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당의 취약한 리더십 때문이었다.
과거 실정 깨끗이 청산한 블레어, 영국 노동당 이끌고 집권 성공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이전 시대와 단절…리더십 못보여
여론조사를 통해 정권교체 분위기가 무르익자 보수당은 노동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공포를 부추기는 데 앞장섰다. 보수언론이 보조를 맞췄다. 노동당이 집권할 경우 세금폭탄, 주택융자금 급증, 인종 폭동, 국가의료제도의 혼란, 가계비 증가, 실직, 물가 앙등 등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당 패인의) 또다른 하나는, 당의 얼굴인 닐 키녹 대표의 취약한 리더십 때문이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보수당의 대표인 존 메이저에 대한 호감도/비호감도의 편차는 +55% 포인트인 반면, 키녹은 -12% 포인트로 나타났다. 키녹의 변화 상징성도 허약했다. “키녹은 노동당이 현대화되어야 하고, 현대화가 노동당의 선거 호소력을 높이는 본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노동당에는 잘못된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잘못된 것들 몇 가지에 대해서는 감상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언론의 평가다.
1997년 영국 노동당이 18년 야당 생활을 청산하고 집권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젊고 역동적인 블레어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노동당이 집권시절 보여줬던 실정의 잔재를 깨끗하게 청산했기 때문이다. 2012년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민주정부 10년의 공과에서 과가 주는 부담을 털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보통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 이전 시대와 단절하고,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와의 ‘쉽고 간명한’ 차별화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패배한 것이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뭘까? 2004년 초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이제이(E.J) 디온이 쓴 글이 적절한 함의를 던진다. “2002년 (중간)선거의 치명적 패배 이후 민주당에 필요했던 것은 지도부 교체였다. 민주당의 일반 당원들은 서슴없이 조지 부시와의 대결을 부르짖었다. 그 열망은 단지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당원들은 어깨너머로 부시의 지지율을 기웃거리는 짓을 하지 않는 지도자를 열망했다. 민주당원들은 협박과 항복에 진력이 나 있었다.”
한국 민주당, 2002년 선거모델 답습…바뀐 선거지형 적응못해 실패
대중과 소통으로 정책 만드는 등 ‘좋은 후보’보다 ‘좋은 대안’ 승부를
미국 민주당의 2008년 승리 배경에는 지도부의 교체가 있었다. 2005년 2월 하워드 딘이 전국위원회(DNC)의 의장에 선출됐다. 그는 전국을 돌며 그 지역의 풀뿌리 조직을 재건하고, 그들과 결속했다. 대중적 열망이 당으로 인입되도록 한 것이다. 하원 원내대표인 낸시 펠로시는 강한 리더십으로 2006년 중간선거를 승리로 이끈 뒤 하원의장이 됐다. 더불어, <뉴욕 타임스> 기자인 매트 바이가 2년 동안 발로 뛰어 기록한 책(
)에서 생생하게 증언하듯이, 자유주의자와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진보주의 흐름이 변화의 인프라를 형성해 새로운 지도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대중적 물결이 이라크 전쟁 반대 등 변화를 외친 버락 오바마와 조우하게 돼 2008년 승리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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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
민주당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승리 전략이 이번에 완벽하게 무너졌다. 2040 세대동맹의 유지, 동원이라는 세대 전략, 영남 후보에 의한 부산·경남 공략과 수도권 우위의 지역전략 등 2002년 선거 모델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신행정수도 이전이라
는 빅 이슈를 통해 충청에서 이겼고, 정체 대 변화의 구도를 만들어 선명한 후보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이번엔 인구학적 구성의 변화에 따라 선거 지형이 바뀌었음에도 10년 전 모델을 답습했고, 게다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 된 -1.0 버전으로 재연했다.
이제 민주당은 선거승리의 덫에 빠지지 말고 긴 호흡으로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고 계층 프레임으로 새롭게 대중적 지지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당내 패권 다툼의 정파 논리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열망을 정책을 담아내는 정당 문법에 충실할 때 비로소 좋은 후보도 나오고, 집권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