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3월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관련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중앙대 학생들이 서울 흑석동 교정 해방광장에서 인문학 글자가 적힌 팻말에 검은 띠를 두르고 투쟁선포식을 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인문학 지원 표방 ‘학진 체제’서
교수는 연구비 받을 논문 목매고
대학은 그 논문만 연구업적 인정
비판성 상실 ‘침묵의 공장’ 키워
인문학이 본디 돈 버는 학문인가?
자본으로부터 벗어난 공부 하라
기업인가, 학문의 산실인가. 기업이 아니라고 할 사람 많지 않다. 한국에서 대학의 현주소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열녀의 탄생> 같은 책을 써내며 대중과 호흡해온 강명관 부산대 교수(55·한문학)는 한국의 대학을 ‘침묵의 공장’이라 표현한다.
“대학은 공장이 되었고 첨단 테크놀로지로 관리되는 인간의 침묵, 인문학자의 침묵이 흐르고 있다. 산업자본이 성립하자 독립 장인들이 모두 설 곳을 잃고 산업노동자로 편입되었듯, 분업의 체제에서 노동이 소외되듯, 우리는 전공의 격자 속에서 연구에서 소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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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지음/천년의상상·1만1000원
레이철 카슨(1907~64)이 이제는 고전이 된 책 <침묵의 봄>에서 종달새의 지저귐이 사라진 봄을 까발리며 환경 문제를 고발했듯, 강 교수는 이번에 펴낸 <침묵의 공장>에서 비장한 어조로 자본과 국가에 휘둘리는 대학과 인문학 위기의 현실을 까발리고 있다.
이 책이 1차적으로 겨누는 것은 이른바 ‘학진 체제’다. 1998년 인문학 연구 지원을 표방하며 등장한 학진(옛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 체제가 자본(지원금)을 통해 대학간 위계, 대학내 학문간 위계를 심화시켰으며, 그 와중에 인문학은 본디 비판성을 상실하고 “복종하는 공부”에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그 질서 속에서 인문학은 추락했다. 최근 철학과 등의 잇단 폐지는 그 증거다. 그 중심에는 교육부와 학진이 있다. 강 교수가 선동 팸플릿처럼 날렵한 분량에 묶어낸 <침묵의 공장>에서 펴는 논지다.
학진은 자신이 만든 기준을 통과하는 학술지를 등재지라고 불렀다. 그 순간, 등재지가 아닌 학술지는 ‘식물인간화’했다. 대학은 등재지에 실린 논문만 연구 업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대학과 학문은 너무도 간단하게 학진의 통제 속으로 들어갔다. 모든 논문집은 등재지가 되기 위해 질주했고, 모든 논문집이 등재지가 되자 우스꽝스럽게도 학회와 논문집의 우열이 사라졌다. 과거에는 학회와 논문집에 자연스럽게 등급이 형성되어 수준 높은 논문과 수준 낮은 논문이 갈 곳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학진 지원이 시작되는 순간, 그 자연스러운 등급이 사라졌다. 학진은, 대학은 그것이 얼마나 진지한 연구인지를 묻지 않는다.
반면 일반 독자와 연구 성과를 나누고 소통하는 단행본 저술은 그 업적에 들지 않는다. 그러니 책을 쓰지 않는다. 학술출판계에서 저자를 구할 수 없다는 아우성이 나오는 이유다.
<침묵의 공장>은 논문 업적을 늘리려고 한 편으로 쓸 논문을 여러 편으로 쪼개어 쓴다거나, 실제 작성된 논문은 10쪽짜리인데 그 연구비 수주를 위한 신청서는 100쪽이 넘는 사례를 소개하며, 연구보다는 신청서가 더 화려하고 두툼해지는 현상이 대학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이상한 일은 등재지 논문이 양산되는데도 아무도 그 논문에 대해 토론하고 화제로 삼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학진 체제 속에서 연구비 수주 실적은 연구자는 물론 대학을 평가하는 중요 항목으로 부상했다. 여기에는 한 신문사(중앙일보)의 대학 평가가 한몫을 했다고 강 교수는 본다. “대학의 발전계획은 어떤 신문사의 대학 평가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구성된다. 대학 평가는 한국 대학의 위계를 결정짓는 권력의 작동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문사가 대학 평가에서 사용하는 측정단위들, 예컨대 논문 생산율과 에스시아이(SCI) 논문 등재율, 그리고 시설 구비 비율 등을 향상시키는 수단은 단 두 가지. 하나는 돈, 하나는 국가 지원이다.”
학진 체제에 갇힌 학문에 대한 비판은 그간 간간이 학계와 대학 바깥 인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제기돼 왔다. 이 책의 주장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일반 대중서로 발간돼 그런 현실을 일반 독자와 함께 고민해 보자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이 겨눈 것이 학진 체제만은 아니다. 거기에 길들여진 학계 내부, 곧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여 돌이키자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얼마나 변질했는지. 일상에서 대화가 얼마나 처참해졌는지. 학문의 내용은 사라지고 오로지 연구비나 학진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학문적 화두를 풀기 위한 내 연구의 현단계에 대한 자문은 사라지고 나의 대뇌를 지배하는 것은 ‘나는 올해 논문을 몇 편 썼어’라는 문장이다. 연구비를 받을 수 없거나 업적용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연구는 회피한다. 이것이 최근 우리 대학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돈을 타내어 돈에 복종하는 공부를 때려 치우고, 대학의 출발지인 길드(동업조합)처럼 다시 수공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은 태생부터 자본에 비판적이며, 비판적이어야 한다. 인문학의 유용성 담론은 출발부터 틀렸다. 그 유용성이 돈을 번다는 뜻이라면, 인문학은 본래가 유용한 학문이 아니다. “최대한 대학의 행정적 간섭에서 벗어나, 고통스럽지만 가능한 한 학진과 외부 기관을 우습게 알면서 그 의존도를 낮추고 최소한의 논문을 내고, 자율적인 연구모임을 조직하는 것! 대학 내에 자본, 국가로부터 해방된 공간을 만들고 증식하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유일한 생존로다.”
그는 인문학의 콘텐츠화가 살길이라는 주장도 정면 비판한다. “콘텐츠화는 인문학의 비판 기능을 박탈하고 산업화할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라는 자본의 요구다.”
강 교수는 지난해 8월부터 동료들과 부산대 총장실에서 해온 농성을 7개월여 만인 지난달 말 풀었다. 총장 직선제를 지키기 위한 이 농성은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그는 24일 전화 인터뷰에서 연구자가 지원금이라도 받아야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문학 분야 젊은 연구자들이 대학 강사 시절에 학문적으로 성장하는데 지금은 강사료가 형편없어서 생존을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교육부와 학진이 비케이(BK)다, 에이치케이(HK)다, 엑셀(비케이 후속사업)이다 돈을 갖고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지원사업) 기간이 끝나면 연구자는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 돈으로 강사료를 올리라는 겁니다. 인문학 발전시키려면 프로젝트로 사람 옥죄지 말고, 강사들 생활조건 개선에 올인하라는 겁니다.”
<침묵의 공장>에는 한문학을 포함하는 국문학이 대중과 어떻게 만날지를 고심하는 글 등 세 편의 글도 함께 실려 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