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0. 12:46ㆍ파놉틱 평화 읽기
남북관계의 출구찾기 | ||||
'고르디우스의 매듭' 비핵화, 그 매듭 끊을 칼은 개성공단 정상화 논의 | ||||
| ||||
| ||||
남북관계라는 말을 하기도 난망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출구는 보이지 않고 암초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실낱같은 희망처럼 얘기되었던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도 남북관계 개선의 구체적 방향과 내용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황당하게도 '윤창중 사건'만 정상회담 이후 회자되고 있다.
이미 한미정상회담 이전부터 남북관계와 관련해 전향적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6일 미국 CBS와 인터뷰에서 "북한은 변해야 한다. 그것만이 북한이 살길이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북한변화론'을 언급했다. 뒤이어 대니얼 러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북한이 올바른 결정을 하고 비핵화에 관한 국제 의무와 그들의 약속을 준수하는 조처를 취한다면 북한을 지원하겠다"며 '점진적 관여'(incremental engagement)를 제시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은 변해야 하며 변화를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그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이 정도 수준이면 기존 입장과 거의 변화가 없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협상 포지션을 유지하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비핵화만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압박하고 있다. 양측 모두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에 응당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레토릭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한․미와 북한의 시각차가 이 정도라면 비핵화라는 단어는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다.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는 예상한 수순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변할 수밖에 없도록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론'을 강조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동조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을 것이지만 대화의 문은 열어놓겠다는 '점진적 관여'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북한 당국이 당장 공식입장을 천명하지는 않았지만 일정 냉각기간이 지나면, 여전히 강력한 '레토릭 전투'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비핵화라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핵을 가진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을 비핵화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북한의 변화를 주장하지만 실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무엇인가? 북한이 어떤 첫 단계의 행동을 보여야 이에 상응하는 후속 프로세스가 진행될 수 있는 것인가?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비핵화와 핵보유의 간극은 심연(深淵) 그 자체다. 북한의 변화를 얘기하지만 채찍만 준비되었지 당근은 줄 채비가 안 된 것 같다. 또한 핵보유국을 선언한 북한이 먼저 양보의 카드를 내밀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기 위한 '우회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의 정상화가 언제 시작될 것인지, 금강산관광이 언제 재개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대화의 통로는 막혀버렸다. 적어도 대화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일차적이다. 미국을 통하든 중국을 통하든 개성공단 재가동 협상이 진행될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이에 덧붙여 비정치적이며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패키지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그 매듭을 끊을 수 있는 '알렉산더의 칼'은 없다. 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남북이 합의하여 실천했던 일들을 다시 일상적으로 가동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쏟아지고 있는 다양한 레토릭과 접근은 어찌 보면 도덕적이고 이상적이며 자의적인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어차피 현실은 '리얼(real) 정치'의 장이다. 북한은 미중관계와 동북아 지역정치 환경에 대한 '정확한(도구적 합리성의)' 손익계산, 남북관계 중단이 미칠 영향과 변수에 대한 '정확한' 고려 속에서 핵무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있어서도 위의 변수와 함께 남북한 공히 내부정치의 영향에 의한 자기한계 등을 고려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 계산의 정치는 '쫀쫀하게' 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선(先) 대화만으로도, 대화 없는 압박과 무시만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일단 숨을 고르고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계산도 끝나지 않았고, 협상은 개시되지 않았으며, 저질러진 일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엉클어진 상황이다. 서로 호흡을 고르고 다시 계산에 들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핵실험에 성공한 북한에게 비핵화협상 카드만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할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판단해봐야 한다. 북한도 기존의 호전적인 방식에 의해 주변국들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핵을 가진 북한을 인정하라는 논리는 주변국들에게 수용될 수 없다. 중국도 일정한 전략적 수정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을 틈타 일본은 '보통국가화'를 재촉하고 있다. 러시아의 동북아지역에 대한 전략적 이해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아시아로의 복귀(pivot to Asia)'를 선언했다.
북한 핵문제라는 복잡한 퍼즐 위에 더욱 복잡한 동아시아의 퍼즐이 겹쳐지고 있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길을 차근차근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입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한 상황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환경은 변했다. 그러나 입구를 찾는다면 그 해법은 이미 관련국들이 합의한 사항을 현실에 맞게 적용하면 된다. 앞으로 한중정상회담이라는 또 다른 계기도 있다.
전쟁과 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조건에서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남과 북의 갈등 지속은 분노를 증폭시키고 분쟁의 일상화를 만들어낼지 모른다. 이제 그 출구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합의하여 서로에게 이익을 제공했으며, 남북관계 완충에 있어 긍정적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럴 때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풀어야 하는 것이지, 화내고 호통 친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파놉틱 평화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사 인용과 분석] 2016년 북한 신년사 전문 (0) | 2016.01.01 |
---|---|
북한 2014년 신년사에 대한 단상 (0) | 2014.01.01 |
동아시아, 냉전의 예열과 경제적 열전의 복합적 위기 (0) | 2013.03.14 |
[단상] '요동치는' 동아시아의 지정학과 우리 안의 '두려움' (0) | 2013.02.22 |
[단상]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을 보면서 (0) | 2013.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