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예산제

2013. 5. 27. 14:34tech_coop_agri

 

주민이 시예산 결정 25년…학교가 생기고 길이 포장됐다

 

등록 : 2013.05.26 20:56 수정 : 2013.05.27 08:43

브라질 남부 포르투알레그리시 카발랴다에 있는 ‘네우자 골라르치 브리졸라’ 초등학교에서 4월26일 오후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학교 마당에 나와 놀고 있다. 이 학교는 1996년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세워졌다.

‘주민참여예산제’ 발원지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주민들이 지역의 어떤 사업에 세금을 얼마나 쓸지를 직접 결정한다. 이런 ‘주민참여예산제’가 1989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최초로 날갯짓을 시작한 이래 세계 1100개 도시로 퍼져나갔다. 25년 동안 포르투알레그리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브라질 남부 도시 포르투알레그리의 카발랴다에 있는 네우자 골라르치 브리졸라 초등학교에서 4월26일 정오께(현지시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쉴새없이 터져나왔다. 축구를 하거나 미끄럼틀을 타는 등 노느라 떠들썩했다. 이 초등학교는 1996년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세워졌다.

“인근에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이사 오게 됐는데 자녀들을 맡길 학교가 없었어요. 참여예산제를 통해 학교 건립을 요구했고, 시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지요.” 수학·체육 담당 교사 구스타부(42)가 설명했다.

이 학교는 오후 5시까지 부모를 대신해 학생 380여명의 돌보미 구실을 한다. 클라우저(46) 교장은 “부모 대부분이 온종일 밖에서 일하므로 학생들이 집에 돌아가면 길거리를 배회하기 십상이다. 오후에 방과후 과정으로 음악, 미술, 체육 등을 가르친다. 시 정부가 예산을 부담하는데, 주민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시 파르테농지구의 산비탈에 주민참여예산제로 계단과 가로등이 설치돼 있다.

 

가난했던 마을의 놀라운 변화
방과후도 책임지는 학교 서고
음악·컴퓨터 주민교실도 생겨

 

카발랴다는 마약과 범죄가 성행했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주민참여예산제가 이 지역을 바꿔놓았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수거하는 마차가 있고 허름한 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어 빈민촌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고, 쓰레기 분리수거조합을 조직한 아데미르 카스트루(58)는 말했다.

 

17년째 참여예산 주민대표(델레가두)로 활약해온 재클린(36)은 “어린이 60여명을 돌보는 보육시설을 짓고 도로를 포장한 것도 참여예산을 통해서였다. 음악·컴퓨터·무용 교육은 참여예산과 자원봉사자들의 협조로 이뤄진다. ‘그들’이 결정하던 예산을 ‘우리’가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포르투알레그리시가 1989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주민참여예산제는 공무원과 지방의원들이 결정하던 예산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참여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제도다. 브라질 국내를 비롯해 프랑스·스페인·벨기에·캐나다 등 각국의 1100여 도시가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르투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제를, 유엔 해비타트(인간정주위원회)는 ‘공동체 참여와 도시 거버넌스’가 가장 우수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세계은행(IBRD)은 정부와 시민사회의 성공적인 협력으로 평가했다.

 

1988년 개정된 브라질 헌법에 ‘참여민주주의’ 조항이 포함됐고, 포르투알레그리 시장에 당선된 노동자당(PT) 올리비우 두트라 등이 참여예산제를 도입했다. 군사정권 시절이던 1970년대 브라질에서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이 일어났고, 빈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민단체, 교육포럼 등 다양한 조직들이 결성됐다. 1983년에는 주민단체연합(UAMPA)이 결성돼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시에 전달하는 구실을 했다. 이들 단체가 참여예산제도 시행의 뿌리가 됐다고 한다.

 

도시 남쪽지역 헤스칭가 지구의 동사무소 격인 지역행정센터에선 마을 주민 10여명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강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강사 비우마(35)는 “주민들의 반응이 좋다. 교육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부업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시의 헤스칭가지구 지역행정센터의 컴퓨터실에서 주민들이 무료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다.

주민 “의견 표현할 길이 생겨”
지역총회에 누구나 참여 가능
예산사용 우선순위 투표로 정해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당시부터 델레가두로 활동했던 주민 호잘리나(56)는 “배운 게 없고 참여할 기회가 없던 빈민들이 의견을 표현할 길이 생겼다. 빈민촌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르테농 지구의 산타마리아 지역은 급경사인 산등성이에 집들이 붙어 있다. 길도 나지 않아 비가 오면 집에 갈 수도 없었는데, 1992년 참여예산으로 도로를 포장하고 계단과 가로등을 설치했다.

 

참여예산제는 준비모임으로 시작된다. 시가 사업·투자 계획을 설명하고 시의 각 부서들은 주민들의 요구와 실행 가능성 등을 분류한다. 도시의 17개 지구별로 지역총회에서 투자 우선순위를 정한다. 지역총회에는 모든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으며, 공무원과 시장도 참석해 의견을 나눈다. 지역총회는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며, 주민투표로 이듬해 예산의 투자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지난해부터 의결을 전자투표 방식으로 한다. 올해는 이달 들어 일주일에 2~3개 지역씩 17개 지구에서 주민총회에 들어갔다. 이어 참여예산평의회는 각 지구에서 2명씩 선발된 평의원들이 정례 회의를 열어 시 공무원들과 논의하면서 예산 배분 우선순위와 예산안을 결정한다. 이어 시의회의 의결을 거친다.

 

포르투알레그리와 인접한 카노아스의 변호사 다니 레오나르두 지아코미니는 “주민들이 스스로 예산 사용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주민참여예산제는 훌륭한 제도다. 카노아스도 참여예산제도를 채택했다”고 말했다. 헤스칭가 지구의 보건소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는 시의회 의장 치아구(41)는 “참여예산제는 신뢰에 바탕을 둔 제도로서 따로 법률이 없다. 그렇다고 시장이 주민들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시가 주민참여예산에 투자하는 연간 예산은 전체 예산의 20% 안팎이다. 10%는 도로 포장과 가로등 설치 등 사회기반시설에, 나머지 10%는 교육·문화·위생 분야에 투자한다. 참여예산평의회 집행과장인 호나우두 엔들러는 “주민들의 요구를 다 수용하면 100%가 넘는다. 사업의 우선순위를 둬 장기사업과 1년 단위 사업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참여예산을 통해 요구한 분야는 1990년대까지는 주로 주택 건설과 도로 포장, 위생 개선 등 세 가지였으나, 지금은 교육과 공중보건 등이 많다고 한다.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한 지 25년이 흐르면서 제도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2005년엔 ‘지역연대 거버넌스’ 제도를 도입해 시, 민간부문, 시민단체, 시민과 지역사회가 지역발전의 공통의제를 놓고 논의하고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참여예산제 시작 시기를 2월에서 3월로 바꿔 시의 회계연도와 맞췄다. 시 정부의 지역거버넌스 담당 국장인 부자투는 “참여예산 주기와 시청의 예산 편성을 연결시킨 것은 25년 참여예산 역사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변화”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말에는 조제 포르투나치 시장이 지역행정센터를 12곳에서 17곳으로 늘려 참여예산제를 지구별로 가동했다. 분권을 강화하고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시 쪽은 밝혔다.

 

노동자당 소속 시장이 16년 동안 이 제도를 도입하고 추진해오다, 2004년 이후에는 브라질민주운동당(PDMB)과 민주노동당(PDT)의 시장들이 당선됐다.

 

제도 운영 방법이 바뀌었다고 해도, 변하지 않은 것은 주민들의 의식 속에 공고화된 ‘참여의식’이라고 했다. 브라질에서 참여예산제와 관련해 가장 많은 경험이 있는 시민단체 ‘시다지’(CIDADE)의 우비라탕 소자 고문은 “25년 동안 참여예산제도는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 삶의 질을 개선해 왔다”고 말했다.

 

포르투알레그리(브라질)/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주민들은 이제 잘 알아요, 참여하면 변한다는 걸”

기획재정담당관 이자베우 마치

“부모와 함께 총회 다녔던 아이들
참여예산제의 힘 보고 자라”

이자베우 마치

 

“참여예산제도의 힘은 ‘참여’와 ‘변화’입니다. 참여는 우리 문화의 일부분이자 유전자(DNA)가 됐어요. 주민들 스스로 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변화의 문화’를 알게 됐고, 시장과 시 관리들은 주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한 가장 큰 학습효과입니다.”

 

4월26일 만난 포르투알레그리시 기획재정담당관 이자베우 마치의 말이다. 그는 “주민들이 지역총회에 가서 자신이 요구하고 찬성투표를 할 때마다 사회기반시설 투자가 이뤄지는 것을 직접 본다. 도로가 포장되고 학교가 건립되고 집이 개선되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이것이 참여예산제도의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25년 전 부모와 함께 참여예산 지역총회 현장에 갔던 아이들은 이제 참여예산제도의 주역이 됐다. 마치 담당관은 “이제 참여예산제도에 참여하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 어릴 때 부모의 손을 잡고 가서 축제의 현장을 본 아이들은 30대가 됐고, 그들은 이 제도의 힘을 알고 있다. 참여예산제도는 과거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의 도전과제는 해마다 참여예산제도 시행에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참여예산이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예산제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시 예산의 100%를 투자해도 모자라기 때문에,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려면 투명하게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시장이 당선된다 해도 주민참여예산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마치 담당관은 단언했다. 그는 “시장이 ‘올해는 시행하지 않겠다. 나는 이를 이행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면 참여예산제를 시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장은 재선될 수 없고, 내란 같은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참여예산제는 굉장한 경험이다.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포르투알레그리(브라질)/글·사진 허호준 기자

 

 

국밥집·야생화축제·복지관…‘주민참여’ 보폭 넓힌다

 

등록 : 2013.05.26 22:14 수정 : 2013.05.27 08:43

 

 

서울 은평구 경로당 어르신들이 재배한 콩나물로 국밥을 만들어 파는 ‘은평꼬부랑 콩나물 국밥집’ 식당에서 지난 24일 오후 직원들이 국밥을 나르고 있다. 은평구 제공

[수도권 쏙] ‘주민참여예산제’ 우리는 어디까지 왔나

주민참여예산제가 의무화된 지 세해째에 접어들었다. 주민 자치 수준과 삶의 질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일각에선 성과도 보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지난달 29일 서울 은평구청 옆에 ‘은평꼬부랑’이란 콩나물 국밥집이 문을 열었다. 개업식에 김우영 은평구청장과 구의원들이 두루 참석했다. 김 구청장은 “지역경제를 살릴 큰 사업”이라며 치켜세웠다. 국밥집에 무슨 ‘거창한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시작은 ‘매바위 마을공동체’의 엉뚱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이 마을공동체는 은평구 응암2동 주민자치회와 부녀회 등이 중심인데, 경로당 어르신들이 콩나물을 기르는 걸 보고 고민에 빠졌다. 콩나물의 안정적인 판로가 없을까? 국밥집을 하자, 주민참여예산제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뒤따랐다. 은평구를 통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신청해 2억3000만원의 예산을 받아냈다. 어르신들 일자리도 생기고, 어르신들이 싼값에 국밥집에서 식사도 할 수 있게 됐으니 일석이조다.

 

경로당 재배 콩나물로 식당 열어
노인고용 창출에 식사 싼값 제공
축제 등 공동체 문화행사 만들고
장애인 직업체험 교육관도 설립

‘경제·복지’ 두 마리 토끼 잡기
지역 문제 환기시키는 효과도

주민참여예산제

주민들이 직접 예산 편성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다. 1989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시가 처음 도입한 뒤 전세계로 번졌고, 우리나라에선 2004년 3월 광주광역시 북구가 가장 먼저 도입했다. 2011년 8월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은 이 제도를 시행하도록 제도화됐다.

매바위 마을공동체의 송영흠(53) 대표는 “매달 10만~15만원의 경로당 운영비를 지원하는 등 국밥집 수익의 3분의 2를 사회적 목적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 국밥집엔 취약층 8명이 일한다. 포장·납품을 위해 어르신 4명을 더 고용할 계획이다. 송 대표는 “주민참여예산제가 없었다면 출자금 모금 등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1일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3동 운곡공원에서 비산3동의 옛 지명을 딴 ‘날뫼 야생화 축제’가 열렸다. 12종 3만포기가 넘는 야생화가 시민들을 맞았다. 축제 준비에 1억원이 들었는데, 역시 시민들이 안양시에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제안하고 시가 이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 주민들은 이 야생화 축제를 지역의 대표 문화예술행사로 가꿔갈 계획이다.

 

올해로 시행 2년째를 맞은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서울에선 지난해 5월 관련 조례를 제정해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늦게 제도 시행에 들어갔지만 조금씩 정착해가고 있다. 지난해 150명을 뽑는 주민참여예산위원 공모에 1664명이 응모했고, 올해는 127명 모집에 1383명이 몰렸다. 외국인, 은퇴자들도 눈에 띈다.

 

2010년부터 한국에 살았다는 일본인 무로야마 도카(32)는 “대학에서 국제개발을 전공하면서 주민참여예산제를 처음 접하고, 서울시 예산위원에 지원했다. 사업 선정 때 자치구끼리 경쟁하는 분위기도 있던데, 외국인이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오래 일했다는 권문야(71)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활동한다. 권씨는 “지난해엔 9월에 예산 한마당을 열었다. 급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올해는 더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산 500억원을 주민참여 방식으로 편성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올해 예산사업 가운데 24건 638억원을 주민참여로 편성했는데, 지난해 23건 136억원에서 4배 이상 늘린 규모다.

 

초기에 토목·건설 쪽에 쏠렸던 주민 제안사업의 내용도 다양화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는 올해 ‘장애인 직업체험 교육관’ 설립에 8억300만원의 예산을 주민 제안으로 편성했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장애인·교육·여성 등의 분과회의를 둬 얻어낸 결과다. 서대문구 주민참여예산 담당 김선희 주무관은 “장애 청소년들은 고교 졸업 뒤 자립을 돕는 사회적 장치가 전무하다. 장애분과 위원으로 참여한 장애 청소년 학부모가 주민참여예산위원들에게 간절히 호소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역 문제에 주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계기도 된다. 서울 종로구 화동 고갯길 평탄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주민 제안으로 추진됐지만 주민 2000여명이 반대 서명을 했고, 지난달 초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옛길의 멋을 잃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화동 고갯길이 큰 화제가 되면서 종로구는 여러 차례 설명회와 토론회를 열었고, 주민들은 북촌 전체의 개발·보전에 대한 ‘건강한 고민’을 시작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조금씩 진화·발전하고 있다. 서울시는 다른 광역자치단체와 달리 시민단체·집행부·시의회 등이 협의하는 ‘참여예산지원협의회’를 설치해 제도 운용의 개선점을 논의하고 있다. 은평구는 전국 최초로 주민 제안사업 선정을 위한 구민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다. 손종필 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예산위원장은 “서울시 예산편성권의 일부를 시민들에게 돌려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더 다양한 주민들 의견을 반영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김기성 홍용덕 정태우 기자 xeno@hani.co.kr


도입 3년 드러난 문제는

시간 부족한 주민들엔 ‘남의 일’
전문성 약한 예산위원 ‘거수기’

 

주민참여예산제가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시행 초기여서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설적으로 ‘주민 참여의 부족’이라는 점에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의한다. 수십년 동안 시정·구정에 간여한 이들이 통·반장이나 관변 단체 회원들로 국한돼왔기에 초기엔 이들이 앞장설 가능성이 크다. 참여 경험이 거의 없는데다, 직장 생활 등으로 시간도 부족한 주민들에게 ‘딴 동네 이야기’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서울 은평구 관계자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모바일 투표를 할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절대다수 주민들의 참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원구의 주민참여예산위원도 “예산위원들이 처음엔 대부분 기존의 관 사업에 연계됐던 인사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첫해 사업의 90%가 건설 쪽이었다”고 말했다.

 

의욕을 갖고 참여예산위원으로 나서도 녹록지 않다. 관공서의 서류를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데, 자칫 ‘거수기’가 되기 쉽다. 참여예산위원들의 경험 축적과 교육이 필요한 대목이다.

 

주민참여예산제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참여 예산의 규모가 아직은 작다. 기초자치단체 대부분이 광역단체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실정이라 운신 폭이 매우 좁다. 은평구에선 지난해 주민 총회까지 거쳐 선정한 32개의 주민 제안사업 가운데 17개 사업에만 예산이 배정됐다.

 

기득권 구조가 제도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 지방의회 쪽은 자신의 고유 권한인 예산 심의 및 의결 권한을 침해한다고 못마땅해한다. 주민제안 사업의 예산을 삭감하는 경우가 잦다.

 

주민참여예산위원의 권한 범위를 정립하는 것도 과제다. 경기도의 남상중 재정발전전략팀장은 “주민참여예산위원들의 권한 이양 요구가 늘고 있다. 예산 편성권은 광역자치단체에, 심의권은 광역의회에 있어 요구에 맞추기 쉽지 않다. 참여 절차를 개선하고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창현 홍용덕 기자 bl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