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 조례가 내 삶을 바꾼다

2013. 7. 29. 14:40lecture

 

 

법은 ‘멀고’ 주먹이 앞선다고?…조례는 ‘가깝다’

 

       

 

[현장 쏙]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내 삶을 바꾼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에 견주면 지방선거에 쏠리는 관심은 한정되곤 한다. 그런데 지역의 단체장·의원들이 바뀌면 시민들의 일상이 바뀌는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그 핵심에 ‘조례’가 있다. 헌법·법률의 시대를 지나 조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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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의회는 지난 15일 ‘순천시 지속가능한 에너지 조례’를 의결했다. 에너지 절약과 신재생에너지 사용, 에너지 빈곤층 지원 등을 담았다. 조례에 따라 순천시장은 5년마다 지역에너지계획을 세워야 하고, 위원회를 따로 꾸려 집행해야 한다. 에너지 정책, 특히 원자력발전소 찬반 논란은 전국 차원의 사안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인구 27만명의 소도시가 원전 의존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보겠다고 직접 나선 것이다.

이 조례는 순천 시민의 일상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전기요금을 줄이는 만큼 지원금을 주는 ‘탄소 포인트 제도’를 확대하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교체비용 지원을 확대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공공건물의 에너지 절감과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화를 끌어내려면 시민의 삶이 지금보다 불편해질 수도 있다. 건물 신축 때 더 강화한 에너지 절약 기준을 적용하게 하거나, 기업들에 에너지 절감을 압박할 경우 부담 증가나 규제 강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에너지 조례 제정에 이르게 된 계기는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다. 이 사고 뒤 지역 시민단체 10여곳이 ‘핵 없는 사회를 위한 순천시민연대’를 꾸려 1년 동안 조례 제정에 힘썼다. 이 단체 박종택 공동대표는 “지역에서 대안 모델을 만들어야 ‘전기가 부족하니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를 깰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집권형 에너지 정책에서 지역분산형 에너지 정책으로 바꾸자는 문제의식이다. 경기도 안산시의회도 지난 1월 이와 비슷한 내용의 ‘안산시 지속가능한 에너지 도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순천·안산시 ‘에너지 조례’ 눈길
지구적 문제에 지방정부 팔걷어
지역모델이 전체로 확산되기도

지방정부의 조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여러 한계에도 지방자치의 성과가 쌓이고 있고, 그 제도적 표현이 조례인 까닭이다.

순천시·안산시의 에너지 조례는 에너지 위기라는 지구적 문제를 지방정부가 나서 풀어보려는 사례다. 탈원전 문제는 물론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 불평등 같은 전지구적 문제에 접근하는 시도로 이른바 ‘지역 모델’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식량 위기에 대한 대비도 지역의 농업과 도시농업이 활성화되고, 여기서 생산된 건강한 먹거리를 지역 주민이 먹는 ‘지역 먹거리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지역 안에서 건강한 먹거리가 순환하는 체제이다.

지역 차원의 대안 모델이 먼저 나올 때 국가 수준의 변화가 더 용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 브라질의 한 지역 도시인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확산됐고, 우리나라의 지방재정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국가의 정책 결정에 따른 ‘하향식 변화’는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전국에 자전거도로를 많이 만들었지만, 지역에 따라 그 효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전 희망제작소 조례연구소 소장)은 “지방정부는 몸집이 가볍고 유연하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 사회를 바꾸는 데 위로부터 혁신도 있지만, 좋은 조례는 아래로부터의 혁신인 셈”이라고 말했다.

조례가 시민들의 일상에 끼치는 영향이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조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조례가 시민들 일상의 혁신에 밑돌이 되기도 하지만,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 조례는 2010~2011년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다. 학생 가정소득 수준을 따지지 않는 전면적 무상급식을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이 조례로 확정하자,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복지 망국병’이라고 공격하며 주민투표까지 주장하다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여권의 주요 인사가 조례를 두고 시의회와 갈등을 빚다가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이다.

2009년 서울시민 8만여명이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자는 조례 개정 청구안에 서명했고, 이듬해 서울시의회는 조례를 개정했다. 그런데 오 전 시장은 개정 조례의 공포를 거부하고 대법원에 무효확인 소송을 내며 정치적 갈등이 고조됐다.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12월 대법원 소송을 취하해 2년 동안 끌어온 논란이 마무리됐다.

경남도립 진주의료원 폐업을 밀어붙인 경남도와, 이에 반대한 노동·시민단체 등 사이의 대립에서도 조례 개정이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진주의료원 근거를 삭제한 조례 개정안 처리를 야권 경남도의원들이 저지하려 했으나, 다수인 새누리당 경남도의원들이 몸싸움을 감행한 끝에 ‘날치기’ 처리했다. 국회에서나 봤던 날치기 안건 처리가 지방의회 본회의장에서 연출된 것이다.

정치평론가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유권자들은 국민, 시민, 주민이란 정체성을 갖고서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 임한다. 지방자치 경험이 누적되면서 시장과 구청장, 지방의원들이 바뀌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짐작하기 시작했다. 헌법의 시대와 법률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조례의 시대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과 법률의 시대를 지나 조례의 시대가 부각되기 시작”

조례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한다는 분석도 있다. 주민 피부에 와닿는 생활의 변화는 지방정부 수준에서 곧잘 영향을 준다. 이를테면 주거 문제에서 중앙정부는 주택 공급물량 조절 등 아파트 숫자를 결정하지만, 지자체는 건물 용적률과 주변과의 조화 같은 ‘아파트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은 “서울시의 주거환경을 국가 수준에서 정리하는 것은 사실상 끝났다. 이제는 시의회 조례로 이를 조절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1년도 남지 않은 내년 지방선거에선 두루뭉술한 공약보다는 구체적인 정책을 담은 조례 제·개정을 약속하는 공약이 더욱 주목을 끌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약이 지켜지기 위해선 조례 제정 같은 제도적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지금은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는 경구가 절실하다. 지역의 정치세력들이 조례를 중심으로 경쟁할 때 지방자치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사진 강창광 신소영 이정아 기자

 

독특한 조례들 뭐가 있나

등록 : 2013.07.28 20:36수정 : 2013.07.28 21:19

강원, 우리말 간판에 지원금
부산, 근대 건축물 지정 보호
서울, 건강음식점 선정 관리

[현장 쏙] 지자체 조례가 내 삶을 바꾼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에 견주면 지방선거에 쏠리는 관심은 한정되곤 한다. 그런데 지역의 단체장·의원들이 바뀌면 시민들의 일상이 바뀌는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그 핵심에 ‘조례’가 있다. 헌법·법률의 시대를 지나 조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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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대목까지 챙기다니….”

전국 광역시·도의회와 시·군·구의회가 제정한 조례 가운데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조례가 적지 않다. 의미와 재미를 함께 갖춘 것이 제법 된다.

강원도는 지난 2월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국어 진흥 조례’를 만들었다. 한자와 외국어, 어려운 행정용어가 넘쳐나는 공문서와 건물 간판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도는 이 조례를 근거로 우리말 간판을 내거는 이에게 지원금을 줄 예정이다. 조례를 대표 발의한 홍건표 강원도의원은 “한글 사용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조례를 통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우리말을 널리 사용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회가 제정한 ‘국기게양일 지정 등에 관한 조례’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일인 8월29일에 해마다 조기를 내걸도록 했다. 후손들이 치욕의 역사도 알아야 더 큰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취지에서였다.

부산시의회는 2010년 ‘근대건조물 보호 조례’를 제정해 개항기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설립된 지역 건축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부산시는 이 조례를 근거로 부산 최초의 민간 종합병원인 옛 백제병원,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처녀작인 부산대 인문관 등 6곳을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지정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역사가 살아 숨쉬는 부산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의 선거 공약에 따라 지난해 10월 전국 최초로 ‘어린이·청소년 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5월 제정된 ‘건강음식점 지원 조례’는 건강음식점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의 모범음식점이 자치구에서 관리하고 위생 중심으로 지정하는 것과는 달리, 소금·나트륨 함유량을 줄이는 저염음식에다 영양기준까지 적용한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춰 시가 직접 관리하도록 했다. 이밖에 ‘협동조합 활성화 지원 조례’, ‘공유 촉진 조례’, ‘작은도서관 지원 조례’, ‘주민 참여예산제 운영 조례’,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 등 60여건을 새로 제정했다.

서울시는 산하기관인 <교통방송>(tbs)을 통해 이른바 ‘핫이슈 조례’라는 제목으로 이런 조례들을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정석윤 서울시 법무담당관(변호사)은 “조례는 법과 현실의 간격을 메워주는 잔뿌리, 실핏줄과 같다. 시민들도 점차 조례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 수원 부산/박수혁 홍용덕 김광수 기자, 안창현 기자

psh@hani.co.kr

 

정부가 손놓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에…광주시, 지원 손길

등록 : 2013.07.28 20:35수정 : 2013.07.28 22:32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돼 일하고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화자 할머니가 지난해 6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겠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머리를 책상에 대고 있다. 나 할머니 같은 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에 중앙정부도 손 놓고 있자, 광주광역시가 지난해 4월 조례를 제정해 생활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복지 사각지대’ 메워주는 조례

[현장 쏙] 지자체 조례가 내 삶을 바꾼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에 견주면 지방선거에 쏠리는 관심은 한정되곤 한다. 그런데 지역의 단체장·의원들이 바뀌면 시민들의 일상이 바뀌는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그 핵심에 ‘조례’가 있다. 헌법·법률의 시대를 지나 조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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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멀고’ 주먹이 앞선다고?…조례는 ‘가깝다’
독특한 조례들 뭐가 있나
정부가 손놓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에…광주시, 지원 손길
지방자치 22년…‘조례’ 앞엔 아직도 높은 장벽

“그 조례가 생긴 뒤 가슴속 분노가 절반은 풀렸어. 귀한 사람으로 대접해주는 게 기쁘고 감사해.”

양금덕(84·광주 서구 양동) 할머니는 25일 <한겨레> 기자에게 말했다. 양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겨우 15살 나이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돼 일본 군수공장에서 일하고도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다. 양 할머니 같은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책은 없다.

중앙정부가 손 놓고 있자 광주광역시가 지난해 4월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양 할머니 같은 피해자 15명한테 다달이 생활보조비 30만원과 병원 진료비(월 20만원 한도) 등을 지원해오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양 할머니는 기초급여와 별도로 지난해 7월부터 광주시로부터 다달이 생활보조비 30만원을 받는다. 생활보조비는 형편이 어려운 할머니들의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됐던 ㄱ(83·광주 양3동) 할머니는 “광주시의 생활보조비 없으면 살아갈 방도가 없다.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이 조례 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선호 광주시의원은 “일제에 강제동원됐던 고령의 피해자들이 해마다 소리 없이 세상을 등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피해 보상을 해야겠지만 이제 우리도 피해자를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에 이어 경기도의회가 지난해 10월, 전남도의회가 지난 5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는 2008년 6월 현재 전국에서 611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중앙정부의 복지체계의 빈틈을 지방정부가 조례를 만들어 메워가고 있다. 정부가 각 지역의 특수한 사정까지 일일이 챙기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모두 챙기겠다고 나서면 행정비용이 많이 들고 효율성도 떨어질 수 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조례
광주 이어 경기·전남서도 만들어

경남도의회가 2011년 12월 제정한 ‘경남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 조례’도 그런 경우다. 경남지역엔 생존한 한국인 원폭 직접피해자의 절반에 가까운 1009명이 산다. 경남도는 조례를 통해 직접피해자뿐 아니라 2·3세 등 후손까지 지원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1945년 8월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 직접피해자 2600여명에게만 다달이 10만원씩 주고 있을 뿐이다. 원폭 직접피해자 후손의 상당수가 대물림된 원폭 후유증에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이들은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후손까지 지원하도록 한 건 조례 제정 당시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이 조례가 처음이다.

1만여명에 이르는 국내 원폭 피해자 후손들을 제대로 조사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경남지사는 이 조례에 따라 원폭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종합적 시책을 마련하고 정기적인 실태조사도 해야 한다. 현재 실태조사를 하고 있으며, 다음달 첫 조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다른 지방정부들도 조례를 만들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려 하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경기도 보호자 없는 병원 지정 및 지원 조례’를 의결해 올해 하반기부터 경기지역의 도립의료원 가운데 1곳과 민간병원 1곳에서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시범 운영한다. 한달 200만원 넘게 드는 간병서비스를 저소득층한테는 하루 1만~2만원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경기도와 도의회는 5대 권역별로 1곳씩 공공산후조리원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을 논의중이다.

경남 ‘원폭피해’ 후손도 끌어안아
강원은 ‘재난 피해 지원’ 첫 추진

지역적 특색이 확연한 ‘맞춤형 지원’ 조례도 꽤 있다. 충북 음성군 농민들은 지난해 1월 제정된 ‘음성군 농축산물가격안정기금 설치와 운용에 관한 조례’ 덕에 2018년부터 농산물값이 폭락하면 군 등이 조성한 기금에서 피해액의 일부를 지원받는다. 기금은 음성군이 2017년까지 50억원을 출연해 관리하기로 했다.

재난·재해가 빈번한 강원도에선 전국 처음으로 ‘지역 재난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지진·해일 등 자연재해뿐 아니라 화재, 붕괴, 가축전염병 등 인적·사회적 재난도 피해자한테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법적 지원 대상이 아니라 보상을 못 받던 재난도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제주도는 지난달 ‘제주도 농어촌학교 학생 교통비 지원 조례’를 제정해 고등학교를 통학하는 읍·면지역 농어업인의 자녀들한테 1인당 연간 30만원가량 교통비를 전국 최초로 지원하기로 했다. 자영업자나 회사원 자녀에게는 교통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농어업인 교육비 부담 경감과 읍·면지역 학교 살리기 등이 이 조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김은정 간사는 “중앙정부가 모든 걸 하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고 또 할 수도 없다. 지역 사정을 소상히 파악한 지자체가 주민의 삶을 살펴 그에 맞는 복지 지원을 할 때 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성도 높이고 진정한 지방자치의 의미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 창원/정대하 최상원 기자, 안창현 기자

daeha@hani.co.kr

 

지방자치 22년…‘조례’ 앞엔 아직도 높은 장벽

등록 : 2013.07.28 20:00수정 : 2013.07.28 21:38

‘법령 범위’ 넘어서면 안되는 탓
창의적 조례가 빛 못보고 사장
지역간 경쟁·유권자 이해도 부족

[현장 쏙] 지자체 조례가 내 삶을 바꾼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에 견주면 지방 선거에 쏠리는 관심은 한정되곤 한다. 그런데 지역의 단체장·의원들이 바뀌면 시민들의 일상이 바뀌는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그 핵심에 ‘조례’가 있다. 헌법·법률의 시대를 지나 조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관련기사>
법은 ‘멀고’ 주먹이 앞선다고?…조례는 ‘가깝다’
독특한 조례들 뭐가 있나
정부가 손놓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에…광주시, 지원 손길
지방자치 22년…‘조례’ 앞엔 아직도 높은 장벽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0년이 넘었다. 시민감사관제와 주민자치예산제가 시행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방정부의 의미있는 조례들이 법률 제정에 영향을 준 사례도 여럿 있다. 1991년 충북 청주시의회의 ‘행정정보 공개 조례’는 7년 뒤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이어졌다. 당시는 공공기관이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이 낯설던 때라 청주시가 대법원에 무효 소송까지 냈지만, 민주화·투명화의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이는 지방정부의 조례가 법률 제정을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례로 ‘조례 역사의 금자탑’으로 불린다. 경기도 안산시의 2003년 ‘안산시장 등의 업무추진비 공개 조례’는 2010년 중앙정부의 ‘지방자치단체 업무추진비 집행 규칙’ 제정에 영향을 끼쳤다.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는 최근 각 지역의 우수한 조례를 뽑아 상을 주고 있다. 이달에는 서울시의 시민 공익활동 촉진 조례 등이 선정됐다.

하지만 헌법-법률-명령(시행령·시행규칙)-조례 차례로 위계적 구조로 돼 있는 법체계에서 지방자치 법규의 수준은 아직 미흡한 게 현실이다. 지방정부의 입법권인 조례 제정은 현행 지방자치법에서 “법령의 범위 안에서” 만들도록 돼 있다. 혁신적인 착상의 조례를 내놓는다 해도, 법률과 정부의 시행령·시행규칙이 정한 범위를 넘을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조례 제정권의 범위를 ‘법령의 범위’가 아니라 일본처럼 ‘법률의 범위’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례 제정 범위가 너무나 좁고 해석을 둘러싼 혼란이 일자, 참여정부 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법령에 위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로 개정할지를 검토했다가 그대로 둔 바 있다. 지방정부의 창의적 조례안들이 소리소문 없이 잊혀지는 사례가 많다는 게 조례 전문가들의 얘기다.

또다른 현실적 장벽은 ‘지방정치’가 아직 활짝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선·총선의 종속변수로 바라보거나, 정권 중간심판론과 정권 안정론의 구도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정치권에서 우세하다. 그 영향으로 지방선거에서 정치세력 사이에 정책 대결이 본격화하지 못한 양상이다. 좋은 지역 수준의 정책 경쟁이 빈약하니, 이를 제도화하는 좋은 조례도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조례의 위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이해도 두텁지 못하다.

한상우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지방자치연구소장)는 “지방의회 의정 보좌인력 부족 등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유권자들도 지방선거에서 정당이나 후보와의 친소관계만 볼 게 아니라 정책 공약을 살펴야 한다. 이런 측면의 시민정치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