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책 60년 역사 ‘빼곡’ 헌책방

2013. 7. 29. 14:43lecture

 

 

한국 책 60년 역사 ‘빼곡’ 헌책방, 나에겐 무엇인가

등록 : 2013.07.28 18:52수정 : 2013.07.29 10:27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있는 우리글방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 지난 22일 이곳 카페에서 보수동 책방골목 발전을 위한 부산과 서울의 문화인들 및 관계자들 토론회가 열렸다.

한 주를 여는 생각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의 상징 같은 책 든 사람 동상.

“문화자산 중에 부산이 서울을 앞지를 수 있는 건 보수동 책방골목, 이것 딱 하나뿐이다.”

“헌책방 하면 부산 보수동!”

“보수동 책방골목 60여년 역사가 한국 책의 역사다.”

지난 22일 오후 4시, 부산 중구 보수동1가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부산과 서울 등지의 내로라하는 ‘책벌레’와 ‘책쟁이, 출판쟁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곳은 총길이 250미터, 너비 몇 미터의 좁다란 골목을 사이에 두고 50여개 점포가 늘어선, 전국 최대이자 거의 유일한 헌책방 거리다. 6·25전쟁 부산 피난 세월과 역사를 함께하는 이 고색창연한 책방골목 한복판에 있는 헌책방 북카페 ‘우리글방’ 벽에는 이날 이런 펼침막이 걸렸다. ‘부산과 서울의 문화인들·관계자들 함께 토론하기-보수동 책방골목 문화사적 의미 새롭게 인식하기, 어떻게 잘 보존하고 키워낼 것인가.’

부산 쪽 참석자 20여명, 서울 쪽에서 간 10여명 등 50여명의 참석자들은 장서 20여만권이 빽빽하게 에워싼 자그마한 카페 우리글방을 빈틈없이 메웠다. 이들은 저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현재를 진단하고 ‘보수동 살리기’의 묘수를 설파했으며, 서로의 의견들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보수동 책방을 세계적인 문화 명소로 키우자”는 얘기도 나왔다. 10여년 전 한때 침체기에 빠져 책방 수도 줄었으나 최근 다시 회복세를 보이면서 활기를 띠고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은 그런 희망 못지않게 걱정도 많은,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가 사라지고 인사동 고서점들조차 지리멸렬해진 서울에는 지금 헌책방 100여곳이 흩어져 있으나 예전의 헌책방 거리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전통 있는 몇몇 대형 헌책방들이 서울을 빠져나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헌책방뿐만 아니라 서점(오프라인) 자체가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과 책 순환의 핵심고리 가운데 하나인 헌책방의 국내 유일한 메카 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에 부산·서울의 문화인들이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일본이 세계 최고·최대의 헌책방 거리로 자랑하는 도쿄 간다 진보초의 고서점 거리에는 약 180개의 헌책방이 밀집해 있다. 도쿄도에는 그 3배인 약 600개, 일본 전국적으로는 2500여개의 헌책방이 있다고 한다. 일본은 정부가 진보초를 ‘일본의 향기로운 거리 100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는 등 관심과 지원 속에 ‘일본의 긍지’로 키우고 있다. 우리에게 보수동 책방골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부산/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뒤지면 또 나오는 변함없는 그 골목 ‘헌책의 향기’

보수동 책방골목을 보지 않고 부산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 안으로 전쟁의 깊은 상처가 있기에 우리의 마음을 붙잡으며 발길이 머물게 한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가난하던 우리의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느린 시간 속에서 지나간 세월들을 떠올리게 한다.

 “부산 구경을 오시는 분들은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을 보고서야 부산을 보았다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책방들이 마주보고 있는 좁은 골목길, 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탐스러운 것들은 상처를 겪은 후에야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속에 안으로 깊은 상처가 있기에 우리의 마음을 붙잡으며 발길이 머물게 합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가난하던 우리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에 느린 시간 속에서 지나간 세월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옛것은 아름다우나 요란하지 않고 잔잔한 감동으로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오늘 걸어가는 이 길을 향한 희망을 말없이 선물합니다.”(문옥희 보수동 우리글방 대표)

부산시 중구 보수동 1가. 폭 몇 미터의 좁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헌책방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좁다란 골목이 있다. 50여 개의 헌책방들이 들어찬 그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게마다 층층으로 쌓인 수많은 책들이 별세계를 연출한다.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남은 헌책방 거리라는 보수동 책방골목이 여기다.

 “들어오는 입구가 예전과 좀 달라졌지만, 이 골목은 처음 생겨났던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입구쪽이 옆 도로 확장공사 때 좀 깎여나갔어요.” 임춘근 신천지서점 대표는 그 깎여 나간 자리에 생긴 로터리 한쪽에 서 있는 책읽는 소년 동상 터가 바로 보수동 책방골목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6·25전쟁이 터지고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밀려들 때 보수동 인근에 각지에서 피난 온 학교들도 천막으로 임시교사를 세워 수업을 계속했다. 날마다 책보따리를 들거나 진 학생들이 그 골목을 수없이 지나다녔다. 평양에서 온 청년과 전북 김제에서 온 처녀가 거기서 만나 결혼한 뒤 포장지를 깔아놓고 책 노점상을 시작했다. 처음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만화책 몇 권 놓고 번역문을 오려붙여 빌려주다가 본격적으로 헌책을 모아 팔았다. 가난했기에 오히려 헌책장사는 승승장구했다. 두어칸 문칸방을 빌어 연 가게들이 번창하자 비슷한 책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보수동 책방골목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로터리 동상 있는 자리가 바로 그 터요.” 임 대표는 김제서 온 처녀의 동생이었고, 13살 때부터 지금까지 50여 년 헌책을 팔고 있다. 지난 5월 보수동 책방골목의 원조인 그의 매형, 평양서 온 사나이 손정린씨가 아흔살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1세대들은 거의 떠났고, 2세대도 후세들에게 일을 넘겨주고 있다.

평양 청년과 김제 처녀가
눈이 맞아 책 노점상을 시작했다
가난했기에 헌책은 승승장구했다
문간방을 빌린 가게들이 번창했다

평일 2천명 정도가 찾아온다
관광상품으로서 가치는 높아졌지만
책의 가치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다
그래도 문 닫겠다는 사람은 없다

 22일 책방골목 행사 취재차 들른 ‘우리글방’ 서가에서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이 피서객들로 뒤덮인 그 한여름 복더위에, 그는 수십만 권의 책들이 복층의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 는 그곳에서 ‘책 사냥’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아, 그 분인가?’ 했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경제면 칼럼과 함께 실린 사진으로 가끔 본 그 사람. 하지만 자신이 없어 잠깐 시선이 마주칠 때 살짝 목례만 하고 행사장으로 갔다. 서울로 올라온 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맞아요. 내가 바로 그때 거기에 있었습니다.”

 대구에 사는 이 교수는 그날 저녁 부산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에 보수동에 들렀다. 그날 책방골목 행사는 있는 줄도 몰랐다. “부산 갈 때마다 보수동에 가요. 약속시각 2시간 쯤 전에 부산에 미리 가서 보수동 책방골목부터 찾습니다. 1년에 서너차례는 부산에 가는데 갈 때마다 그렇게 합니다. 헌책방 뒤지는 건 수십년 전부터 계속해 온 내 취미생활이지요. 미국이나 영국 갈 때도 헌책방에 가지요. 일본 진보쵸에도 물론 가봤습니다.” 주로 역사와 경제관련 책들에 관심이 있지만 분야에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책이 나오면 국내서든 일본책 등 외서든 바로 산다. 그날 그는 4권 사는데 2만원을 썼다. 10만원어치 이상 살 때도 있단다. 직접 책을 만지면서 책방 주인과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는 헌책방이 너무 좋지 않느냐고 했다. “부산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순박해요. 우리 글방 정말 괜찮은 책방입니다. 옆의 대우서점 등에도 가는데 좋아요. 이런 책방들이 좀 더 많아져야 보수동 책방골목도 더 발전하지 않을까요. 내가 외국 나갈 때도 반드시 헌책방들을 가 보는데,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책방을 가더라도 책방 주인들이 하나같이 다 착하고 선하다는 겁니다. 영리목적으로 양심을 속이고 바가지를 씌우는 짓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도 절대 값을 깎지 않습니다. 주인이 제시하는 가격대로 삽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 값을 부르겠지요.”

 이 교수는 “헌책방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지난번에 뒤졌으니 이젠 없겠지 하고 가 보면 살 게 또 보여요. 그러니까 또 가게 되지요. 어디서 자꾸 나오는지. 우리 출판문화가 예전부터 저력이 있었다고 봐야지요. 그 어려운 시절에도 그런 책들을 만들었으니.”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 헌책방에 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수업시간에도 헌책방에 가 보라고 계속 얘기하는데도 안 가요. 경북대 바로 옆에 경북지역 최대규모의 헌책방이 있는데도 별로 가질 않습니다. 책 읽기 자체가 예전같지 않아요. 책 좀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너무 인턴넷 쪽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책과 인터넷은 정보와 지식의 깊이가 달라요. 책은 또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파트 자택 방 2개와 교수 연구실까지 책으로 채우고 있는 1만권 장서가이기도 한 이 교수는 “애서가는 부인이 고생하는 법”이라며 웃었다.

 그날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은 이는 얼마나 됐을까?

 1978년부터 36년째, 보수동에서 큰책방들 중 하나로 꼽히는 대우서점을 꾸려 온 김종훈 사장은 평일엔 하루 50명쯤, 주말엔 1백명, 많을 땐 수백명 정도가 자신의 가게를 찾는다고 했다. 들쑥날쑥해서 단정적으로 얘긴 못하지만 대충 그런 것 같다고 했다. 10만권 장서 중에 국문학 서적만 3000여 권인데, “요즘은 예전 국문학 서적들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우리 글방 문옥희 대표는 “평일 조용한 날엔 하루 30명 정도?”라고 했다. 주말에 많을 때는 1천명도 넘어, 복층 서가를 연결하는 철제계단에 사람들이 줄을 설 때도 있다고 했다. 문 대표는 요즘 활기가 좀 되살아나긴 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해운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좀 아쉽다고 했다. “영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 남포동 극장가들이 중심이었지요. 남포동은 여기서 걸어가도 10분 정도 거립니다. 그때는 축제기간에 매일 수천명씩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았어요. 영화 끝나면 손님들이 바로 가지 않고 이곳을 들렀다 갔어요. 우리도 영화관련 책들 특집을 기획해서 매대도 따로 마련했지요. 그때는 영화제 특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전당이 해운대에 서고 영화제 중심이 그쪽으로 옮겨 가면서 그 열기가 꺾였어요. 영화제 기간에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는 사람은 예전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보수동 책방골목 또 하나의 터주대감격인, 장서 20여 만을 헤아리는 고서·고미술 전문 책방 고서점의 양수성 총무는 구매력 있는 손님들은 평일 하루 10~20명, 관광차 둘러보러 온 사람들은 50~100명 정도라며 “보수동 책방골목 전체로 보면 평일 2천명 정도, 주말에는 그 2~3배 정도가 찾아 온다”고 했다. 양 총무는 몇년 전이긴 하지만 보수동 책방골목 전체의 월 매출을 1억5천만에서 2억원 정도로 추산한 적이 있다며 “지금은 그보다 못하다”고 했다.

 10년 전에 부친한테서 남양서점을 물려받은 황도영 대표는 “하루 매출 10만원도 안 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조금 비관적이었다. 그는 보수동 책방골목이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지만 인터넷 시대에 책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의식수준은 떨어지고 있다며 반농담조로 “철조망 쳐서 입장료 받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도 했다. 그는 자신의 가게 인터넷 판매와 대면(오프라인) 판매의 비율은 9 대 1 정도라고 했다. 문 우리글방 대표는 황 대표와 같은 생각을 가진 가게주도 책방골목 내에는 상당히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가게 문을 닫겠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황 대표는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를 “지인들, 단골들 때문”이라고 했고, 양 고서점 총무는 “비관적일 정도는 아니다”고 했다.

 책방골목에서 인터넷 판매를 하고 있는 가게는 절반 정도. 토론회에서 대단한 장서가요 독서인이기도 한 번역·저술가 박종일씨는 일본 진보쵸와 비교하면서 필요한 책을 찾는데 너무 시간이 걸려선 곤란하다며 분야별로 좀 더 쉽게 필요한 책을 찾아내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이에는 전산화가 필요한데, 양 고서점 총무는 가게주가 대부분 고령이어서 70% 정도가 ‘컴맹’상태라며, 아르바이터를 고용해 기초작업을 하는데만도 한 가게당 100만~200만원씩 드는 데다 계속 유지비가 들기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자신이 세계 곳곳의 책방들을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우리글방에 전시하면서 이번 모임을 주도한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한길사 대표)은 “1960년대 초 고교시절 부산에서 만난 보수동 책방들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며 “보수동 책방골목은 부산문화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리고 서울 집중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대에 부산 책방 주인이나 출판사들은 서울로 옮겨갈 생각일랑 아예 하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그날 참석자 몇 분의 얘기를 발언 순서대로 한 마디씩만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부산의 상징이다. 근래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책과 문화가 어루러지는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여가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겠다.”(김은숙 부산 중구청장)

 이 대목에서 성악가 김현식 테너가 토론회 축하곡으로 <보리밭>을 멋지게 불렀다.

 “그 시대는 그 시대만이 만드는 책이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헌책의 정체성이다. 새것들만 환영받는 시대에 보수동 책방골목은 책의 피맛골이다. 독서열차 인문학 순례 프로그램 같은 것 만들면 좋지 않을까.”(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지금은 가게들이 꼭 같아지고 있다. 이 소중한 거리가 획일적으로 개발되는 데 반대한다. 옛모습을 복원하고 가게마다 특성을 살려서 누구나 여기 와 보고 싶어 못견디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건 대학교수들이 아니라 여기 사는 여러분들이 해야 하고 전문가는 의논상대일 뿐이다.”(주경업 부산민학회 회장)

 “옆에 있던 육군병원에 입원환자 면회 온 사람들이 책방을 이용했고, 그 소문이 퍼진 것도 보수동 책방골목이 알려지는데 한몫했다. 6·25 당시 배타고 온 사람들이 부두에 버린 책이 모인 곳이 보수동이다. 내 나이 80, 50년 책방하면서 외솔 최현배 선생같은 훌륭한 분도 많이 만났다.”(김여만 학우서림 대표)

 “서울 인사동이 관광명소가 되면서 예전 고서점 거리가 없어졌다. 발전하되 지킬 것은 지켜갔으면 좋겠다.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도 여기사람이고 해결해야 하는 것도 여기사람이라는 주경업 선생님 말씀에 동감한다.”(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사무처장)

“전국 6천명의 회원들이 자원해서 일하는데, 지역주민과도 연대한다. 도서관이 많아지면 책방이 안 될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도서관을 사랑하고 책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책방도 잘 된다. 도서관 2000개만 있으면 잘 굴러갈 것이다.”(여희숙 도서관친구들 대표)

 “책방골목을 문화적 맥락에서 얘기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외부에서 문화적 시선으로 이곳을 봐 주는 것은 좋은데, 개별 점포 하나하나를 보면 사정들이 어렵다. 문화가 매출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권영규 보수동책방골목 번영회장)

 “보수동 책방골목은 내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다. 지금은 잘 오지 못하는데, 앞으로 활성화 방안 논의한다면 적극 참여하겠다.”(강수걸 산지니 대표)

 “현실도 냉정히 보면서, 책방골목을 문화사회 욕구에 맞춰 재정립해야 한다.”(김민수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내후년이 광복 70주년이다. 가장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게 책이 아닐까. ‘광복 70년 책이 말하다’ 같은 기획을 할 수 있겠다. 검정고무신, 통일벼 같은 광복 뒤 70년을 대표하는 제조품들 70가지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살피는 책 70권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보수동 책방골목 자체가 한국 책 70년 역사다.”(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

 “텔레비전 프로 ‘1박 2일’에 (보수동 책방골목이) 1시간 나간 게 50년 홍보효과보다 크더라. 씁쓸하지만 그것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때 파주 출판단지로 옮겨갈까 생각도 했으나 포기했다. 이제까지 40년, 앞으로 40년 더 보수동을 발전시켜 보자고 마음 먹었다.”(양수성 고서점 총무)

“관에서 개입하면 땅값 올라간다. 대표적인 게 서울 청계천 개발이다. 무조건 따라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간다 진보쵸의 한국 고인쇄 전문서점에서 내가 찾던 옛 조선활자 관련 책을 찾았다. 책 찾는 사람 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박종일 번역·저술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이여 영원하라.”(정지영 영화감독)

 “50개 점포 중에 자기 점포 소유한 사람이 많지 않다. 영세하다. 외부행사 때 책방 주인들이 참석하려 해도 가게를 비울 수 없어 못간다. 보수동 책방골목을 도와줄 외곽조직이 필요하다. 서울 손님이 내방객의 절반이 넘는다.서울을 앞지를 수 있는 유일한 부산문화는 보수동 책방골목이다.”(김종현 대우서점 대표)

 “문화는 다양성이 관건이다. 헌책방 하면 부산 보수동! 이 돼야 한다. 21세기 세계적 문화공간으로 키우자. 그러려면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 필독서 선정 등을 통해 독서문화를 증진시켜 독서인구를 늘려야 한다.”(남송우 부산문화재단 이사장)

한승동 기자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