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촛불집회, 시민불복종인가요 저항권 행사인가요

2013. 9. 3. 12:03lecture

 

촛불집회, 시민불복종인가요 저항권 행사인가요

 

등록 : 2013.09.02 20:38 수정 : 2013.09.02 20:38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9차 범국민대회가 열린 지난 8월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며 특검으로 진상규명이란 펼침막을 흔들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NIE 홈스쿨] 촛불집회와 저항권

국가정보원의 대선 불법 개입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도 잇따랐습니다. 지난 6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가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 이후, 학계와 종교계는 물론 청소년들까지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말까지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인원만 해도 1만 8000명에 달합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국정원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을 유린했다고 비판합니다. 다른 한편 국정원의 불법 행위를 바로잡아야 할 국회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합니다. 지난 정권에 이어 집권 여당이자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이뤄진 국정원의 불법을 들춰낼 의지가 없습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진상을 규명할 힘이 부족합니다. 더구나 상대는 기밀 취급 기관인 국정원입니다. 예를 들어 국정원은 연간 4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비상대비용’으로 따로 받으면서도 그 씀씀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통제나 국회 심의도 받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자구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촛불집회와 시국선언 등 ‘거리의 정치’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 ‘거리의 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탓이기도 합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국민 전체가 국가와 정부의 모든 공적 결정에 일일이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기본권에도 불구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와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만큼 민주주의의 원리가 무력화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이 그 예입니다. 우리나라의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직접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는데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책임자 처벌은 요원합니다. 이에 시민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뜻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광장으로 모여들어 촛불을 밝힌 것입니다. 이처럼 주권자인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국가와 정부의 공적 행위와 결정을 헌법상 보장된 정치적 기본권으로 시정할 수 없을 때 ‘정의와 양심에 따라’ 공적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거부하는 행위를 ‘시민 불복종’이라 합니다. 시민불복종은 국민이 자신의 주권이 침해당했다고 여길 때 선택하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시민들이 광장에 나왔습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이
헌법정신을 유린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 원리가 무력화했을 때
소로는 정부의 공적 결정을
거부하라고 합니다
로크는 계약을 깬 권력에 맞서
시민 스스로 지켜내라고 합니다

 

시민 불복종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흑인 노예 제도를 당연시하고, 영토 확장을 위해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소로는 이에 항의하며 세금 납부를 거부했습니다. 이 일로 감옥에 갇히게 된 그는 개인의 자유에 반하는 국가권력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저서 <시민 불복종>은 그러한 사유의 결과물입니다. 그는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커서 참을 수 없을 때는 정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권리”를 강조하며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그 법을 어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소로의 시민 불복종은 영국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며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마하트마 간디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도덕과 정의의 원칙을 위반한 악법을 가려내고, 그 법에 불복종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간디의 주장 밑바탕에는 소로의 ‘시민 불복종’이 깔려 있습니다. 미국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이끌었던 흑인차별 철폐 운동,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징집을 거부했던 미국 젊은이들의 반전 시위 또한 그 사상적 배경은 소로의 시민 불복종이었습니다.

 

시민 불복종은 ‘저항권’의 형태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근대적 의미의 저항권은 17~18세기 서구의 사회계약설에서 싹텄습니다.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국가권력이란 자연상태의 인간이 누리고 있던 자기 보존의 자연권을 사회 계약을 통해 국가에 이양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종종 권력을 남용하여 시민을 보호하는 대신 오히려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때 사회 계약은 무효가 됩니다. 시민을 보호한다는 계약 조건 자체가 파기된 셈입니다. 시민들은 계약을 파기한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기 방어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항권’입니다.

 

존 로크는 저항권을 처음 정립한 사회계약론자입니다. 그는 인간을 다른 사람의 생명과 신체,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지 않는 이성적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다만 어느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침해할 경우 자연상태에서는 인간 서로간의 적대 행위가 연쇄적으로 일어나 전쟁이 그칠 날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회 계약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각자의 안전을 보다 더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한 수단인 셈입니다. 정부는 개인 간의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중재할 때만 필요할 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로크의 이러한 사상은 그가 활동하던 17세기 영국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결과입니다. 당시 영국 국왕은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고 시민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하는 등 절대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정부의 절대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로크는 몸소 체감했던 셈입니다. 따라서 로크는 절대 권력에 대한 일반 시민의 저항권을 옹호하게 됩니다. 정부는 최소한의 권력만을 가지며, 필요에 따라 존속시킬 수도, 해체할 수도 있는 선택사항으로 보았습니다. 존재가치가 없는 정부는 폐기하고 다른 정부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패한 정부에 대한 혁명은 시민의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교과서 펼쳐보기 | 정치권력의 정당성

정치권력은 민주적 절차에 따른 합법적 선거를 통하여 창출되고, 국민의 자발적인 지지와 동의를 얻을 때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였다고 해서 곧바로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이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정의 실현을 추구하는 가운데 법에 근거하여 행사되어야 한다. 또한, 시민, 정당, 시민 단체, 이익 집단, 언론 등 다양한 참여 주체들의 활발한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이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할 때 정당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부당하게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 시민들은 복종을 거부하거나, 실력행사를 통하여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등학교 사회>, 교학사, 222쪽)

 

책으로 확장하기 | 시민 불복종과 저항권

엄밀하게 구분을 하자면 저항권과 시민 불복종은 서로 다른 조건에서 생겨나고 강조점이나 원칙도 적지 않게 다르다. 저항권은 일반적으로 국가와 법이 국민 주권의 원칙을 부인하고 군사력과 같은 강제력에 의존하여 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권이 전면적으로 부인되는 상황, 그리하여 정의에 대한 억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법과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이 자연법적 원리로 주창되었다. 실정법을 중심으로 한 법적인 해석과는 무관하게 저항권의 존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살아 있는 힘으로 작용해왔다. 보통은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하여 수많은 혁명이 저항권 개념을 통해 사후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시민 불복종은 이와는 다른 상황과 조건 속에서 논의된다. 기본적인 민주주의 절차가 보장되는 헌정 체제에서는 전면적인 저항으로서의 저항권이 아니라 부분적인 부정의에 대한 저항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가 보장된다 하더라도 다수에 의해 부정의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화된 체제하에서도 부당하고 나쁜 법이 제정될 수 있으며, 단견적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형태로 법을 집행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적극적인 저항의 방법으로 시민 불복종이 제시된다.”(<히스토리아 대논쟁 3>, 서해문집, 122~123쪽)

 

논제로 정리하기 | 시민 불복종의 정당화

2000년 서울대 수시 논술에서는 ‘정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글을 제시한 후, 제시문에서 주장하는 불복종이 수락될 수 있는 조건을 정리하고, 사회에서 소수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를 쓰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존 롤스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도 다수결의 원칙이 반드시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다수가 제정한 것을 준수해야 할 책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결정 자체가 정의롭다고 간주해야 할 의무나 책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시민 불복종의 개념에 대해서는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비폭력적이어야 하고, 도덕심에 바탕한 양심적인 것”이라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논제의 제시문을 살펴보면 롤스가 주장하는 시민 불복종이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