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홈스쿨] 선거권 연령 제한

2013. 9. 17. 14:50lecture

 

19살은 돼야 투표할 수 있다는 논리는 합리적일까요

 

등록 : 2013.09.16 19:51 수정 : 2013.09.16 20:42

 
 

 

제18대 대통령과 서울시교육감 등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 2012년 12월19일 오전 서울 중랑구 중화동 장안중학교 투표소 앞에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유남규(19)씨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NIE 홈스쿨] 선거권 연령 제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여러 사안에 관해 적극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정치적 권리가 바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응당 가져야 할 인권이며 주체로 바로 설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이다.”

 

지난 5월24일 국회에서 선거권·피선거권 연령 하향 입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토론에 참석했던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 ‘내놔라’ 운동본부 서준영(16)군의 말입니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일에도 투표소 앞에서 청소년 투표권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였습니다. 한마디로 ‘선거가 왜 19금이냐’는 말입니다.

 

올해 2월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선거권 연령 기준과 관련한 의견표명 뒤 선거연령을 ‘18살 이상’으로 바꾸자는 법률 개정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의 입장 배경은 ‘국민 대다수가 공교육 혜택을 받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쉽고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식정보화 사회로 진입, 정치적 판단능력을 갖추었다고 여겨지는 나이가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학생들에게 선거권을 주었을 경우 정치화할 우려가 있고 및 대입 준비에 지장이 생겨 교육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에 ‘모든 만 19살 미만 청소년이 대학 진학을 앞둔 것은 아니며, 선거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투표하는 데 지장을 둘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공직선거법 15조를 보면 19살 이상의 국민에게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대한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주민투표법이나 지방자치교육법, 정당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은 만 25살로 제한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청소년은 본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교육감선거나 무상급식 주민투표나 학생인권조례 발의에도 참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청소년의 선거권 제한은 18살은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숙하고 학생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청소년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청소년은 주체적으로 집회를 열기 힘들고 선거 때 정치집단에 휘둘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학생들도 충분히 정치적 활동이 가능하며 심지어 역사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1919년 일제강점기 3·1운동 때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도 당시 17살이었습니다. 또 1960년 4·19혁명도 대구에서 일어난 고등학생의 시위가 도화선이 됐습니다. 이후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에 대거 참가하자 정부는 학생들의 결집을 막으려고 휴교 조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소의 수입금지를 주장하며 촛불집회를 시작한 것도 바로 소녀들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만 놓고 봐도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는 얘기는 믿기 힘듭니다.

 

선거권 연령 제한을
‘18살 미만’으로 낮추자는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인권위도 기준을 조정하잡니다

미성년 기준은 법에 따라 다릅니다
참정권은 기본권인데
정치적 성숙도를
나이와 연결하는 게 합당할까요

 

성인에 대한 기준은 헌법에 규정되는 게 아니라 민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민법에서는 지난해 2월 미성년 기준을 기존 만 20살에서 만 19살 미만으로 낮추어 올해 7월부터 적용됐습니다. 하지만 형법상 형사미성년자는 만 14살 미만입니다.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청소년보호법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연 19살 미만’을 미성년으로 봅니다. ‘연나이’란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뺀 나이로 생일과 상관없이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똑같이 미성년이 되거나 성년이 됩니다. 또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아동복지법 등에서는 미성년을 ‘만 18살 미만’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법마다 성인의 기준 나이가 각각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요? 어떤 법을 제정하면서 그 취지와 목적에 따라 어느 정도의 불일치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최근 이것을 일치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민법상 성년의 나이를 만 20살에서 만 19살로 개정해 시행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능력은 사람에 따라 발달의 정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것이므로 만 20살을 전후해 획일적으로 성년·미성년을 구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선거연령의 각국 입법례를 보더라도 2011년 기준으로 전세계 232개국 중 92.7%인 215개 국가가 선거연령 하한을 18살 이하로 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는 일본(20살 이상)과 우리나라를 제외한 32개국이 18살 이하로 선거권 연령을 정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숙도는 나이와 직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청소년이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투표연령을 낮춤으로써 투표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과 시민의식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무조건 나이로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책으로 확장하기 | 우리는 ‘덜된 사람’이 아니다

 

2011년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펴낸 <인권, 교문을 넘다>(사진)는 두발·복장·체벌·연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학생인권에 관련된 쟁점을 다룬 책입니다. 그중 미성숙과 중립이라는 잣대를 들어 학생들의 집회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에 대한 부분도 나옵니다.

 

특히 이 책에선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단순히 ‘나이가 어린 사람’이 아니라 ‘덜된 사람’, ‘사람이 되어가는 존재’로 취급된다고 말합니다. 청소년은 미숙하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미리 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은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전에 어른들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청소년은 충동적이기 때문에 휩쓸리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시’해야 할 존재라고 합니다. 이 책은 “국민의 20%를 차지하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본 관점이 이런 식”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에게 인권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할 청소년에게 자유와 권리는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것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한국보다 앞서 청소년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사회에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나서 “우리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고 덜된 사람도 아니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미래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을 잘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우선돼야 합니다.

 

관련자료 들여다보기 | 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

 

2012년 1월26일 공포된 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 제5절 양심종교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중 제17조 의사 표현의 자유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습니다. ① 학생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학생은 서명이나 설문조사 등을 통해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모을 권리를 가진다. ③ 학생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 다만, 학교 내의 집회에 대해서는 학습권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학교규정으로 시간, 장소, 방법을 제한할 수 있다. ④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 이를 지도·감독할 수 있다. 다만, 부당하고 자의적인 간섭이나 제한을 해서는 안 된다. ⑤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교지 등 학생 언론활동,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 등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이에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논제로 정리하기 | 소수자와 소수집단을 위한 배려

 

2007년도 부산대 모의 논술 문제는 소수자나 소수 집단에 관한 배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고등학교 교과서와 고전 등에서 발췌한 제시문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하나의 관점을 골라 우리나라에서 갈등하고 있는 사회적 쟁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하라는 문제를 냈습니다.

 

제시문 (가)는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되 타자의 자기중심적 사고까지 수용할 수 있는 관용의 태도를 강조한 고등학교 시민 윤리교과서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나)는 그런 태도에 기초해 국제연합에서 ‘규약’으로 정한 인권선언문의 일부이며, (라)는 (가)의 태도를 일정하게 수용한 민족주의를 설명한 글입니다. 이들 글은 소수자나 소수집단에 대한 배려와 관용을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다)와 (마)는 앞서 소개한 글과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함축하는 글입니다. (다)는 소수자나 소수 집단의 ‘양심’을 내세우는 목소리를 비판하는 근거로, (마)는 소수자나 소수 집단에 대한 배려와 관용이 국가 사회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각각 활용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나 양심적 병역거부자, 여성에 대한 인식이나 처우 문제처럼 청소년 또한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 집단에 속합니다. 특히 다수결의 원칙에 기초하는 대의 민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소수 집단의 목소리가 국가 정책에 반영되는 통로가 매우 제한돼 있습니다. 우리가 국가 사회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소수자 혹은 소수 집단의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