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는 왜 인권 문제일까요

2013. 10. 22. 11:29lecture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는 왜 인권 문제일까요

등록 : 2013.10.21 19:52 수정 : 2013.10.21 19:52

 
 

 

2011년 5월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국방부 앞에서 몸으로 ‘PEACE’(피스·평화)를 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NIE 홈스쿨] 양심의 자유와 병역 거부

10월1일, 독립영화감독 강의석씨가 국군의 날 대규모 시가행진에 반대하는 알몸시위를 벌여 화제가 됐습니다. 강씨는 고교 시절, 미션스쿨이었던 학교 쪽이 학생들에게 개신교 예배를 의무화한 것에 반발해 단식 농성 등 시위를 펼친 바 있습니다. 당시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종교 선택의 자유 및 퇴학 무효 등에 대해 진정을 넣었고, 대법원 최종심에서 승소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입니다. 지난 8일에는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청년운동가 박정훈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입대 예정일이던 이날 박씨는 “정의롭지 못한 폭력과 탄압에 맞서고 국가로부터 배제된 국민의 편에 서기 위해 병역을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양심’이란 뭘까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양심의 자유’에서 말하는 ‘양심’의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우리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를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합니다. 다른 말로 “인간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내면적 기초가 되는 각자의 윤리의식과 사상을 자유롭게 형성하고 그것을 외부에 드러내도록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 그리고 그 윤리의식이나 사상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입영 자체를 거부하면 병역법 제88조에 따라 입영기피죄로, 입영 후 집총을 거부하면 군형법 제44조 항명죄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면서까지 집총을 거부하는 이유는 내면의 신념, 즉 양심의 자유를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런 사람들에게 주목한 것은 불과 10년밖에 안 됩니다. 그 전까지는 여호와의 증인 등 특정 종교인들의 ‘반사회적 행위’ 정도로 치부됐습니다. 그러다 2001년 12월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하고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알려진 오태양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유호근, 나동혁, 임재성씨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적 배경을 지닌 이들의 양심적 병역거부가 잇따르면서 이 문제를 ‘양심과 인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왜 ‘양심’이 인권의 문제가 될까요? 내 신념에 따라 행동할 자유를 얻지 못한다는 말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병역거부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여호와의 증인 쪽 통계를 기초로 하면 한국에선 1950년부터 2012년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1만7000여명이 감옥에 갔습니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 갖는다
우리 헌법 19조의 규정입니다
양심이란 뭘까요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존재가치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진지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는 ‘정신적 기본권’으로 불리는
숭고한 가치입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개인의 신념과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사례입니다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이유는 제각기 다릅니다. 사람들의 양심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2011년 5월2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던 이준규씨는 “때리지 않는 선생이 되겠다”며 교대에 들어갔지만 대학 문화 속에서 다양한 폭력성을 경험하고 병역을 거부하게 됐습니다. 2003년 3월 풀무학교에 다녔던 최준호씨는 농부와 전쟁이 상반된다는 생태주의 신념으로 병역거부를 선택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는 개인의 신념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한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로 ‘병역의 의무’를 듭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39조 1항, 병역법 제3조 1항은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는 헌법과 병역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병역에 복무할 의무를 진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보다 병역의 의무가 더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1991년 이래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이 규약이 규정하는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서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1993년에 채택한 일반논평 제22호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사상과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 자유권규약 제18조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도 내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경험했고, 여전히 징병제가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양심의 자유보다는 병역의 의무가 우위에 있다고 바라보는 분위기가 짙습니다.

 

일찍부터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준 외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상으로 대체복무제가 활발합니다. 민간에서 대체봉사를 하거나 군에서 비무장복무를 하는 식입니다. 2010년 기준, 징병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83개 나라 가운데 이스라엘 등 31개 나라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징병제 국가인 대만·덴마크·독일 등은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면 될 일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간단하진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병역 문제는 무척 민감한 사안입니다. 사회지도층의 병역면제 또는 기피 현상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자칫 병역 기피를 위한 빌미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헌법 판례를 보면, 양심의 자유에서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지,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양심이 아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신념, 가치관, 내면의 소리는 그것 자체가 추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양심은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를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사람들도 나올 수 있습니다.

 

헌법학계의 통설로 양심의 자유에서 ‘양심’의 범위에 ‘사상’까지 포함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상의 자유와 관련한 사건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사건들이 대표적입니다. 1960년 6월에 제정한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인데요.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하면서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이 있었습니다.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판단의 범위 규정부터 어렵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받아도 되는 걸로 그냥 놔둬야 할까요. 양심의 자유는 흔히 ‘정신적 기본권’으로 불리는 숭고한 가치입니다. 이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물론이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주면서 충돌하는 다른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책으로 확장하기 | 한국 사회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다양한 연구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 법학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펼쳐진 적이 있었을까요? 서울대 조국 교수가 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사진)는 민주화 시대가 왔음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계속되고, 빨갱이 콤플렉스 등 사상 공포증도 여전한 우리 사회가 헌법정신에 입각한 민주주의 사회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수의 목소리를 무조건 추종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이성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할 때 사회 모순이 해소되고 진보도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교과서 펼쳐보기 | 기본권의 보장과 제한-자유권

개인이 자신의 자유로운 영역에 대해 국가 권력에 의한 간섭이나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를 자유권적 기본권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유권적 기본권은 절대 군주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끝에 획득한 권리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특성이 있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오래된 기본권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자유권적 기본권으로는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이 있다.(고등학교 <법과 정치>(천재교육)·99쪽)

 

논제로 정리하기 | 국가는 무조건 정의로운가?

서강대 2004학년도 정시 논술 모의고사에서는 ‘다음 제시문을 논거로 하여 ‘국가정의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논술하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제시문으로는 <맹자>,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이청준의 <신화를 삼킨 섬> 등이 주어졌습니다. 국가는 국가보안법으로 핍박받은 수많은 사람과 그들의 가족, 대체복무를 요청하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안보 혹은 국가 이익을 이유로 보장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때를 잘 보여줍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