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05 03:00
[양반가 여성 직접 쓴 '自己錄' 7년 만에 번역한 김경미 교수]
200년간 고서실에 있던 책 발굴된 뒤 현대어로 번역
"남편의 뒤따라 죽지 않고 자녀 이끈 현명한 여인들"
-
/장련성 객원기자
21세기 어느 화목한 가족 풍경이 아니다. 18세기 후반 한양에 살았던 양반가 얘기다. 남존여비(男尊女卑)로 상징되는 조선시대 가부장적 통념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 이 책의 제목은 '자기록(自己錄·나의 시간)'. 풍양 조씨 집안 둘째 딸로 태어난 저자 '풍양 조씨'가 어린 시절과 부모와 형제에 관한 기억, 청풍 김씨 집안으로 시집가 남편과 시부모와 함께한 일상을 한글로 세세히 기록했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실에서 200년간 잠자다 한 고전 연구자에 발굴된 이 책은, 남편의 발병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치밀하게 기록하며 추모한 애도문학(哀悼文學)으로서도 평가받는다.
김경미(55)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는 7년에 걸쳐 이 책을 현대어로 번역했다. "'한중록'처럼 왕가의 여성(혜경궁 홍씨)이 아니라 양반집 평범한 여인이 쓴 자전적 기록이라는 게 놀라웠죠. 조선시대 여인들 삶을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여성들의 글쓰기 수준을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200자 원고지 500장 분량의 자기록은 풍양 조씨가 남편과 사별한 1년 뒤에 쓴 글로, 상황과 사실 묘사가 돋보인다. "남편과 관련해서는 마치 병상일지처럼 하루하루 달라지는 병세와 처방한 약, 왕진 온 의사의 이름까지 상세히 적혀 있죠. 간병하는 동안 꼼꼼히 메모해둔 것 같습니다."
한데 풍양 조씨는 왜 '자기록'을 남겼을까? "흔히 남자가 죽으면 집안에 여자를 잘못 들인 탓이라 하고,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는 관습이 남아 있던 조선시대 아닙니까? 풍양 조씨는 일종의 자기 해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책에는 남편 병이 악화된 이유로, 냉골이다시피 추웠던 집과 약 대신 미역국과 쌀밥으로 병을 고치려 했던 시부모의 안이한 대처 방식이 나옵니다.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칼을 빼들었으나 시부모와 친척들이 만류하는 장면도 나오죠. 자신이 살아남은 정당한 이유입니다. 굉장히 정치적인 글쓰기라 할 수 있지요."
-
조선 말기 화가 기산 김준근의 풍속도첩 중 하나인‘녀인 말탄 모양’. 조선시대 문학을 통해 당대 여성들의 생활사를 연구해온 김경미 교수는“침묵 속의 저항이라고 할만큼, 조선시대 여인들은 가부장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분투했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자기록 원본 중 일부. /김주호 기자·나의시간 제공
'자기록'에 나오는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저자의 친정어머니다. "비록 아들을 낳으려 애쓰다 죽지만, 풍모와 도량이 큰 여인이었죠. 여자 중 최고의 선비란 뜻의 '여중군자(女中君子)'가 이 시대 여성에 대한 극찬이었는데, 그 면모를 갖췄다고 할 수 있죠." 자녀와 노비를 대하는 태도가 특히 그랬다. 하인을 야단치는 자식들에게 "종이 비록 귀천이 다르지만 또한 사람이요 지각이 있다. 어릴 때부터 마음을 낮추고 몸을 부지런히 해야 다른 집안에 가서도 공손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고 꾸짖는다. 김 교수는 "조선시대 유교 이데올로기에 유감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자식만큼은 요즘처럼 사사롭고 편협하지 않게 가르쳤다는 걸 볼 수 있어요. 비복(婢僕)을 다룰 때도 주인과 종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적 도리를 중시했지요."
이 밖에 '자기록'에는 밟혀 죽을 만큼 인파로 붐볐던 과거시험장 풍경을 비롯해 과거급제의 압박에 시달린 양반가 남자들의 고민이 생생히 묘사된다. 김 교수는 통절한 애도문학으로서의 격을 강조했다. "망자에 대한 기억을 오래 붙들지 않는 요즘, 죽음에 대한 예(禮),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