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퍼옴]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_황태연

2015. 1. 9. 11:54Book

서양의 ‘정의’보다 공맹의 ‘인애’

공자 사상 바탕한 새 ‘인간과학’
인의·행복국가 위한 ‘공감의 해석학’
황태연 교수는 “공자와 맹자의 윤리학이야말로 오늘날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합하다”며 ‘공감적 해석학’을 새로운 윤리와 국가를 이루기 위한 기반이론으로 내세웠다. 청계 제공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 1·2
-공자 윤리학과 정치철학의 심층 이해를 위한 학제적 기반이론
황태연 지음/청계·각권 4만8000원

동서양을 넘나들며 정치철학과 다른 학문들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를 해왔던 황태연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과)가 그동안 천착해왔던 공맹사상을 현대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독창적인 연구서를 펴냈다. 우선 200자 원고지 1만1900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읽는 이를 압도한다. 게다가 부제는 ‘공자 윤리학과 정치철학의 심층 이해를 위한 학제적 기반이론’이다. 지은이는 이번 기반이론을 토대로 삼아 앞으로 ‘도덕과 국가의 일반이론’도 출간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지은이의 독창적 연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공자가 ‘대동’(大同)의 이념으로 꿈꾸었던 ‘인의·행복국가’는 오래된 미래로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의·행복국가’의 대척점에 근현대 국가들의 공통 목표였던 ‘정의·복지국가’를 놓는데, 이는 정의를 제일 중요한 잣대로 삼아온 서양의 사상적 사조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정의제일주의가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적대적 반목과 자기모순, 자연의 초토화 등을 야기해왔다는 진단이다. 지은이는 정의보다 ‘인애’(仁愛)를 앞세운 공자와 맹자의 윤리학이야말로 오늘날 새로운 윤리와 국가의 패러다임에 적합하다고 보며, 이번 책에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기반이론’을 만들고자 한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기반이론의 주된 열쇳말은 ‘공감’과 ‘해석학’으로, 공자의 사상을 준거로 삼아 인간이 자아와 타아의 존재 의미를 알 수 있는 새로운 인간과학의 이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논증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지은이는 ‘충서’(忠恕)라는 말 속에 공자의 ‘공감’ 개념이 녹아있다고 본다. ‘서’를 파자하면 ‘여심’(如心)으로 공감을 뜻하고, ‘충’은 ‘일관성’으로 경험지식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객관적·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인간은 타고난 공감 역량에 따라 자아와 타아의 존재와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으며, 이를 이론으로 집성한 ‘공감적 해석학’은 복지·정의국가와는 다른 새로운 인애·행복국가의 이론적 기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은이는 ‘공감적 해석학’을 정립하기 위해 수많은 사상·이론과 최신의 뇌과학, 신경과학, 정신병리학, 진화인류학 등 수많은 학문 영역들을 조각조각 들여다보는 ‘패치워크’를 감행한다. 특히 지은이는 서양의 철학 사조, 해석학 영역에서 ‘공감’이란 주제가 제대로 부각된 바 없다는 점에 비판의 날을 세운다. 17~18세기에 이르러서야 섀프츠베리, 허치슨, 흄, 스미스 등에 의해 공감과 비슷한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시대적 붐을 일으킨 해석학 영역에서는 감정·공감이론과 동떨어진 ‘관념적 해석학’ 단계에서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는 것이다. “사물의 속성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는 방법론이 ‘인식론’이라면, 인간자아들의 존재와 행동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방법론은 ‘해석학’”이란 차원에서 지은이의 논의는 결국 기존의 해석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해석학을 구축하는 작업으로 수렴된다.

특히 지은이는 근대 해석학의 흐름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역지사지’의 방법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한다. 딜타이, 가다머의 ‘관념적 해석학’이나 하버마스의 ‘합리적 해석학’ 등은 인간의 ‘공감’ 역량을 논의하는 대신 상대의 자리에 자신을 가상적으로 집어넣어 상대를 유추하는 방식을 고집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인간의 공감·교감 능력은 그 자체로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이며, 역지사지의 과정 없이 관찰자의 입장에 있더라도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은이는 ‘거울뉴런’을 연구한 자코모 리촐라티와 비토리오 갈레세의 연구를 인용하는데, 그들은 우리의 뇌 안에는 타인들의 행동과 감정을 복제해 타인들의 행동과 감정의 의미를 직접 이해하는 신경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신경생리학적으로도 입증했다는 것이다.

‘공감적 해석학’이 가능하다면, 하버마스가 제시한 ‘언어소통적 공론장’보다 더 근본적이고 선험적인 ‘공감장’ 역시 가능하다. 책 끄트머리에서 지은이는 자신의 논의를 정치행위의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모든 정치행위는 근본적으로 ‘대의행위’라 할 수 있는데, 공감능력은 여기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지은이는 “모든 정치행위는 국민의 공리적·유희적·미학적·도덕적 정체성과 감정을 공감하고 종합하여 대표하는 공감적 대의행위”라고 말한다. 또 기반이론을 기틀로 삼아 앞으로 2년 안팎에 ‘도덕과 국가의 일반이론’을 펴낼 것이라고 약속한다. “서양 주류의 정의제일주의와 정의국가론에 맞서 ‘정의’보다 ‘인애’가 앞선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고, 19~20세기풍의 낡은 ‘정의·복지국가’를 대체할 21세기의 새로운 ‘인애·행복국가’론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는 다짐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