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비평: 한겨레 칼럼을 읽고] 서글픈 한겨레

2017. 11. 25. 23:01파놉틱 정치 읽기


토론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성적 사고 또는 비판적 지적이라는 방패를 무기 삼아 이념의 잣대나 감정적 적대를 드러내는 것은 옹졸하며, 비인간적이고, 사람에 대한 존중도 사랑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어느 기자의 마지막 표현대로 그 기자가 진짜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예상하는 건 ‘서글프다’. 그러나 그 ‘서글픔’은 현실로 지면화 되었고, 그것이 하필이면 한겨레신문이다. 
이 기자가 ‘서글픈’ 이유는 안철수가 유승민과 손을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적대적인 세력과 손잡고 권력을 꾀할 것으로 예상한다. ‘적대적인 세력’은 누구인가? 탄핵당한 대통령을 뽑은 많은 국민들이 선택한 정당이며 인물들이다. 정당정치를 ‘전쟁정치’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의제에 의해 유권자에게 선택받는 정당정치에서 ‘적대적인 세력’은 바로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 오직 적의와 비난에 초점을 맞춘 글이다 보니 도대체 근거도 기준도 납득되지 않는다. 
“대통령제 아래서 ‘중도’는 신기루일 뿐이다.” 중도를 표방한 프랑스의 마크롱 당선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공화정과 대통령제도로 운영되는 프랑스에서 중도라는 신기루를 표방한 후보의 당선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인지? 마크롱은 프랑스 발 ‘사쿠라’인지? 미국보다 더욱 이념적 갈등이 심해서 극우 르펜과 결선투표까지 간 프랑스의 선택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인지? ‘상충적 유권자’는 어차피 좌나 우 두 편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인지? 특정 사안에는 우파적 선택을 또 다른 특정 사안에는 좌파적 선택을 하는 ‘생각 없는 유권자’는 어떻게 좌우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인지?
오바마를 지지한 공화당원인 ‘오바마칸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복음주의자보다 3~7% 이상의 지지를 더 받은 ‘오바마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오바마의 중산층 전략과 중도전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그는 “전국적으로 정치적 이행이 일어나고” 있으며, “국민은 좌우의 첨예한 분열을 깨뜨리려” 한다고 주장했고, “매우 절대주의적인 우파가 있고 동일하게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좌파”가 있고 그리고 “중도에 80%의 국민이 있다”고 한 오바마의 발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오바마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공식들은 끔찍한 것”이며, “이것들은 쓸모없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너무나 많은 의문을 남겨준 칼럼이고, 너무나 적나라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칼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느 때는 특정 후보에게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강한 권력 욕구가 없다고 질타하며 권력욕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 결기는 정반대의 잣대로 다른 이에게 들이댄다. 야당은 거대한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의 중심인 청와대와 집권당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한 책무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발 심리로 격하된다. 이제 야당의 비판은 대통령에 대한 반발 심리다.
기자는 권력에 맞서 또는 기득권에 맞서 비판의 펜을 놓지 말아야 한다. 무제한적일 정도의 수준만큼의 언론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 거대한 권력에 맞서 강력한 견제의 힘을 가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의 핵심은 주권자인 국민이고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위해 행사될 때, 언론의 자유와 정의는 실천될 수 있다.
선입견처럼 굳어진 중도에 대한 혐오, 오랜 시간 지속된 특정 정치인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와 결합된 언론의 자유는 진짜 국민을 ‘비극’으로 몰아갈 수 있고, 그토록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특정 정당과 특정 인물을 고립시키고 국민들과 멀어지게 하는 ‘마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한겨레신문의 칼럼이 ‘서글프다’.


[박찬수 칼럼] ‘중도’에 집착하는 안철수의 비극

등록 :2017-11-22 17:03수정 :2017-11-2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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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논설위원실장

“연대와 통합을 통해 국민의당은 3당에서 2당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도 정치세력이 모인) 2당이 되면, 집권당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당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면, 그의 행로는 분명해 보인다. 원내교섭단체가 무너진 바른정당과 통합해서 ‘중도보수’ 정당으로 집권을 노리겠다는 뜻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다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어떻게 제2당이 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건, ‘안철수의 셈법’으론 무의미하다. 홍준표라는 ‘돈키호테’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은 어차피 ‘중도보수’의 자장 속으로 빨려들어올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밖에선 현실화 가능성을 낮게 보지만, 안철수의 셈법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중도’만큼 강력하고 폭넓게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지점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자신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포기한 적 없고, 실패한 적 없는 ‘안랩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아닌가.


하지만 정치에서, 특히 대통령제 아래서 ‘중도’는 신기루일 뿐이다. 여야가 서로 싸우지 말고 중간쯤에서 타협해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현대 정치에선 어느 나라든지 정치세력들이 점점 더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정파적 다툼을 심하게 벌이는 게 현실이다. 여야 정당이 자꾸 양극단으로 치달리는 것 같으니, 광활한 중앙을 기반으로 한 ‘중도정당’ 가능성은 훨씬 커진 것처럼 보인다. 착각이다.

한국만큼이나 당파적 대결이 첨예한 미국에서 ‘중도층’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에드워드 카민스 인디애나대학 교수 등 일단의 정치학자들은 40년간 미국 선거 결과를 면밀히 조사한 끝에 “스스로를 ‘중도’(moderate)라 규정하는 유권자들이 실제로는 보수 또는 진보 성향이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중도 유권자’란 진짜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수·진보·무당파가 섞여 있는 것이며, 결국 ‘중도층의 선거반란’은 잡을 수 없는 파랑새와 같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중도=사쿠라’라는 등식에 익숙한 한국 유권자들은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안 대표가 그렇게 ‘중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안 대표는 처음부터 진보-보수의 이념적 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정책적 지향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대표가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했던 말, 품었던 생각을 돌아보면, 이런 주장만으론 가릴 수 없는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2012년 정치에 들어서기 직전 펴낸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엔 그가 왜 정치를 하려는지 설명되어 있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한 제정임 교수에게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기억을 얘기하며 “그렇게 무력한 사람들은 사회가 돌봐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보고 참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또 척박한 보육환경을 예로 들며 “서민들은 물론 중산층까지 이런 형편인데, 낙후된 복지를 조금 확충하자는 정도의 얘기를 갖고도 ‘포퓰리즘’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고도 했다. 안철수의 이런 말에서 ‘사회 변화에 대한 의지’를 읽고, 젊은층과 진보 인사들이 그를 지지했다. 2017년 안철수의 말에선, 대중과의 공감은 사라지고 앙상한 정치공학과 자기합리화만이 묻어난다.

정말 궁금한 건, 굳이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어도 될 사람이 그렇게 변화무쌍한 변신을 하며 정치적 생존에 급급해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꼭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강한 권력욕구,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발심리 외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무력한 사람들을 보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으로 점철된 인생에 실패의 오점을 남길 수 없다는 사업가적 오기로 정치를 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물론 안철수 대표는 ‘진보-보수’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있고, ‘민주 대 반민주’라는 역사적 맥락에서도 비켜서 있다. 그래도 5년 전 대중이 자신에게 기대했던, 많은 젊은이를 열광케 했던 원천이 무엇인지는 되돌아봐야 한다. 그건 ‘중도’라는 환상을 좇아선 결코 얻을 수 없다. 사회 변화의 열망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가 종국엔 그 변화에 적대적인 세력과 손잡고 권력을 꾀하리라 예상하는 건 서글프다.

pcs@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0223.html#csidx25504098532b5a8b1c3f617ea1449c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