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미정상회담 취소 서한에 대한 밤늦은 단상

2018. 5. 25. 15:57파놉틱 평화 읽기

신뢰가 없는 사람들이 약속에 사인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신뢰는 단기간에 생기지 않는다. 그것도 서로가 서로를 반복적으로 속이고 속였던 관계였다면, 어쩌면 신뢰는 그저 자신의 계산에 필요한 레토릭일지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북한의 북미정상회담 요청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트럼프의 오케이로 두 달여의 장밋빛 같던 꿈이, 이제 끝나버린 것 같다. 어쩌면 꿈이 아니길 바랐던 우리들의 바람이 현실을 더 아름답게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합의와 결렬의 반복이었다. 6자회담의 참여국들이 모여서 말 대 말로 합의하고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매번 합의사항은 벽에 막혔다. 그 핵심은 신뢰의 부재다. 이거야 시간과 행동이 누적되어야 생기는 것이니 그렇다 치자. 그 다음 문제는 이 잘난 척 하는 전문가와 기술 관료들의 문제다. 또 한 축은 지독히도 자신의 신념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이데올로그들이다.
미국의 진보든 보수든 전문가와 기술 관료들은 일괄타결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의 비핵화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안 될 것이라고 지속적‧반복적으로 불가능성을 기술전문성이란 것으로 포장해서 선전했다. 그것이 선의이건 아니건, 그 정도의 신념이라면 트럼프에게 그 사실을 인지시키고 비핵화를 위한 가능한 경로를 제안하는 것이 그네들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애당초 생각지도 않은 것 같다. 그냥 자신의 전문성만 확인되면 그만인 게다.
볼튼과 같은 보수 이데올로그들은 자신의 북한붕괴 신념에 입각해서 모든 현실을 이념에 집어넣으려 한다. 안 들어가는 대도 꾸역꾸역...어떻게 너무나도 다양한 현실을 자신의 이념에 집어넣을 수 있는가. 자신의 신념과 다르게 현실이 작동하면 작심하고 분탕질을 해댄다.
이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군부를 위시한 권력을 유지하는 자들도 자신의 핵 고도화가 대단한 것인 양 선전하고,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인지...쓸데없는 고집만 부린다. 인민의 삶을 살리겠다는 노동당과 김정은 이야기는 진심 없는 레토릭이 아니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최고 존엄이다. 뭐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다. 이걸 가관이라고 한다.
협상은 서로가 더 많은 것을 가져가려는 고도의 싸움이 전개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서로 으르렁대기도 하고, 상대를 으쓱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판을 깨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을 지켜본 전 세계인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회담의 가능성은 남겨두고, 북한과 미국을 압박해야 한다. 이 위기는 북한과 미국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느끼고 있다. 우리 모두는 평화로울 권리가 있고, 공포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
북한의 위협적 태도에 맞서 어떠한 것도 불사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전쟁이 무서워 굴복할 수는 없다. 그것을 불사할 수도 있다는 평화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전쟁을 넘어설 수 있다. 북한의 저 무도한 태도도 넘어설 수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동맹에 대한 신뢰가 허망한 것이라면 동맹도 깰 수 있다는 자세로 가야 한다.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데 동맹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누구도 평화를 만들 생각이 없다면,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미국이 뭐라고 하던 북한이 뭐라고 하던 중국이 뭐라고 하던 일본이 뭐라고 하든,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이젠 모든 것을 펼쳐놓고 길을 걸어야 한다. 극단이 무서워서 공포를 감내하는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해서도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 참 난감하고 답답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