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씨,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2002. 5. 10. 14:16파놉틱 정치 읽기

요즘 몇달간 글을 올리지 않았더니 상업성 글만이 내용을 채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바쁘기도 했고 언라인/오프라인을 통해서 정치관련 내용들이 난무하는 상황이어서 저의 글이 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젠 좀 정신을 차리고 글을 올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항상 하는 얘기지만 한정연 사이트는 침묵으로 세상을 비판하고 냉소로 세상을 변혁시키는 무한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이트는 온통 다양한 논쟁들로 불을 뿜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뭔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최근에 다시 '자보사이트'를 통해 글을 쓰기 시작한 친구가 저의 대학 과 동기라는 사실을 알고 참 반가웠습니다. 공희준이라는 친구인데 글을 참 재미있게 쓰더군요. 寸鐵殺人의 글발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단 투박하지만 직설적으로 대상을 박살내는 진중함이나 진솔함이 적었던 점은 아쉬웠지만 말입니다.

최근의 논쟁은 몇 가지로 압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주로 선거를 매개로 한 내용들이죠.

하나는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싼 논쟁입니다. 옥석논쟁이라고 하더군요. 이문옥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진중권씨에 의해 논쟁이 촉발되었고, 강준만교수에게 직설적으로 공개제안을 했던 모양입니다.(ohmynews를 통한 논쟁)

둘째는 신민주연합을 둘러싸고 YS에 한 노무현 행위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입니다. 희화적으로 표현하면 "90°논쟁"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도처에서 논쟁중)

셋째는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는 노풍과 색깔문제가 게시판을 채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jabo를 통한 논쟁)

앞으로 세 번에 걸쳐 글을 올릴까 합니다.

첫째 글, "진중권씨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둘째 글, "신민주연합이 아니라 정책연합으로". 셋째 글, "노풍을 잠재우려는 자들은 지금 무엇을".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진중권씨의 논의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일견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⑴ 부패정국에서 이문옥후보와 같은 분이 새로운 희망으로, 실제적 득표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에 두손들고 환영한다(그렇다고 내가 이문옥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망설여진다). ⑵ 이문옥후보가 노무현후보처럼 지역차별의 희생자라는 측면에 대해서도 일면 수긍이 간다.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낙선한 것이나 호남에서 민주당 간판을 걸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낙선한 것이나 행태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중권씨는 강준만씨의 책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빚대어 이문옥에 대한 국민사기극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적어도 총선의 투표행태에만 한정지을 필요가 있다. ⑶ '옥석논쟁'을 제기하며 김민석후보의 과거 행태에 비추어볼 때 이문옥후보가 훨씬 좋다는 내용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민석에 비하면 이문옥이 여러 면에서 훌륭한 후보다. 그렇기 때문에 이문옥을 선택해야 한다고 그렇게만 말하면 좋겠다. 또 더 이상 어설픈 '비판적 지지' 비판논리를 끌어오는 것에는 반대다. 그리고 그럴만한 증거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이 다음의 글부터 진중권씨는 약간 평상심을 잃기 시작하는 것 같다.

⑴ 서울시장 선거(지방선거)와 대선과 상관이 있다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한번도 입증된 적이 없는 가설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장만큼은 1,000만 서울시민을 위한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논지다. 서울시장선거가 대선의 전초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논거는 무엇인가?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 즉 부정과 부패를 저지른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주요한 이슈가 될 것이고, 야당의 주요 공격포인트가 될 것이다. 전국을 강타하는 선거전술이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만약 모두가 이번 지방선거가 대선과 연관이 없다면 정치인이건 국민이건 그다지 논쟁에 휘말리거나 지방선거에 목을 멜 필요는 없다.

왜 민주당은 그다지도 부산시장 선거에 매달리는 것인가? 영남표의 획득을 위한 전초전으로서 부산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선거는 왜 중요한가? 인구의 절반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서울은 1/4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선거 때이건 영남의 득표력과 수도권의 득표력에 예의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정당이 수도권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 점은 인정하고 난 후에 이문옥후보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 선거는 정당을 대표하는 후보에 의해 선거가 진행된다. 따라서 인물과 정당을 동시에 놓고 진행되는 선거이다. 단지 인물이 좀 더 훌륭하다고 그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절반의 논리이다. 진중권씨가 이문옥후보에 대해 적극적인 자기논리를 펼치는 것처럼 노무현을 지지하는 민주당 지지층도 자신의 논리에 근거하여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즉 당선될 사람을 밀어줘서 사표를 방지하자라는 얘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나라당 후보를 묵사발을 내서 당선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더욱 긍정적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나라당의 2중대니 하는 비난은 합리적 판단력을 상실한 더티플레이 이기에 반대한다(단, 일부 민노당 지지논객들의 어설픈 비판도 이 지점에서 혐의를 받을 만 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자). 따라서 진중권씨는 적어도 비판의 수위를 넘어가는 꼬짱과 같은 논지에 대해서는 칼날 같은 비판의 기준을 가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는 이성적으로 이해 가능한 논의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내세운 자기논리에 자기가 빠져버리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지역주의 피해자란 측면에서도 궁금한 점이 있다. 이문옥후보는 그렇다면 서울시장 후보에 나온 이유가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인가? 노무현과의 차이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지역적 차별의 슬픔을 자신의 정치적 소명으로 알고 이것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즉 국민통합, 개혁추진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말이다. 이문옥후보는 왜 부산에서 출마하지 않았는지? 왜 호남에서 총선에 나오셨다가 서울시장후보로 나오셨는지 묻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참정권, 공무담임권을 제약하는 도발적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노선과 입장을 국민들에게 개진하면 된다. 김민석이 구시대적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하면 된다. 그리고 이문옥후보는 부정부패를 척결할 적임자라고 주장하면 된다.

⑵ 노무현지지층에 대한 비판이다. 거기에는 노혜경시인의 공개적 이문옥후보 지지를 담은 견해를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특히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기 의사를 미래를 위해 투명하게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소위 전략적 투표, 정치적 고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용주주의적 지지자들은 이런 투명한 표를 전략적인 실패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자리를 더 많이 마련해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진중권씨가 왜 하필 이 글을 끌어왔는지 모르겠다. 우(遇)측일지는 모르지만 진중권씨의 구도는 이런 것 같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가 아니며 최근 노풍을 통해 무관심층에서 노무현지지 쪽으로 경사된 유권자) 중에서 노혜경 시인 같은 건강한 상식과 진보적 상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아직도 노풍에 감염되어 민주당을 노무현당으로 보는 노무현지지층이 존재한다고 설정하고 이런 분들에게 노무현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강준만교수를 통해 우회적인 비판과 함께 동참할 것으로 촉구하는 선거전술상의 고도의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 또한 약간을 빗나간 논의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무현을 지지했던 것처럼 김민석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예 노골적으로 향후 지방선거가 본격화되면 이런 현상이 폭발적으로 나타날지 몰라 미리 예방주사를 주는 것이라고 실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유인 즉 서울지역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 이회창은 50:30이었지만 김민석 대 이명박은 30:30정도의 수준이다. 따라서 노무현을 지지했던 20정도는 아직까지 어느 후보도 정하지 못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야박하게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혐의도 없는 사람들에게 강준만교수에 대한 공개질의라는 형식을 이용해 압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지지했던 것처럼 현명하게 서울시장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어느 누가 노풍을 알았겠는가? 그 노풍은 이름 없는 시민들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희망의 선택으로 가능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가능한 토양을 만들어 가는데 민노당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구를 탓할 필요도 누구를 비난할 필요도 없다.

진중권씨의 마지막 표현대로 민주당을 지지해서도 개인 노무현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노무현을 마지막 희망으로 보는 시민의 염원을 알기에 노무현 개인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조중동의 부당한 공격에 대해서는 엄호하겠다는 건강한 연대의 자세에 찬사를 보낸다.

필자는 그렇다. 노무현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의 정책이 향후 우리가 나아갈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최대강령의 희망과 비전은 있다. 그것을 실현할 수 없는 사회에서 최소한 토양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데 주목하는 것이다. 즉 최소강령이라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민노당 활동을 하는 분들과는 다른 방식의 운동을 하고 있다고 평가해주기 바란다. 애써 민노당후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한나라당후보를 비판하기에도 아깝고 짧은 시간인데 왜 그런 시간 남는 한량놀음을 하겠는가.

우리는 수구반동의 사회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 시점 우리의 최대강령은 수구반동의 사회로 가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개혁적 정권을 만드는 것이다. 일단 노무현을 등장시켰으니 개혁적 단초는 마련한 셈이다. 이제 수구반동과의 일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중권씨도 하기 싫은 너무나 짜증나는 일이겠지만 한나라당 비판에 좀더 많은 글을 써주는 것이 함께 가는 아니 느슨한 연대를 이루는 그런 것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