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북문제의 정치화, 권력화

2001. 11. 15. 08:54파놉틱 평화 읽기

21세기 남북한은 '적대적 의존관계'에서 '상생적 공존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 진화는 일시적인 우여곡절은 있지만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이 확연하다. '적대적 의존관계'는 상호 대립적 관계에 처해있지만 이 관계를 통해 쌍방 정권차원의 이익을 공유하는 역설적 관계를 칭한다. 그 예들은 남북관계사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북한의 위협은 남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이지만 특정한 정치적 일정과 결합할 때는 집권보수집단에게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역으로 남한의 T/S등의 위협은 북한의 대내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런 역설적 관계가 냉전시대를 관통하며 유지되어 왔고 역대정권들은 이것을 단골매뉴처럼 활용해 왔다. 그러나 21세기 탈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양상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적대적의존관계'가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상생적 공존관계'가 대체해 가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관계가 뒤틀려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전변 할 위험성이 짙다. 마치 지뢰밭을 걷고 있는 것이 현재의 남북관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과거 몇번의 전쟁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서 역으로 이것은 남한도 몇번의 전쟁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한반도문제의 국제화'를 최소화하고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북문제가 국제적 논의의 문제로 번질 경우, 외부세계의 다양한 변수에 의해 우리가 이끌려 다녀야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미 핵무기개발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문제가 국제화됨으로 인해 남한이 한반도문제에 있어서 어떤 이니셔티브도 쥐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경험이 있다. 현재 대북화해협력정책의 진행결과 많은 국가들에서 정책에 대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에 조금씩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MD추진 이후 남북관계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즉 한반도문제에 있어 핵심축이 북미관계이고 그 보조축이 남북관계로 변동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빈 라덴에 대한 대테러 선전포고 이후 북한의 남북당국간 회담 요청으로 다시금 경색국면이 풀려나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변화를 보면서 우리는 한반도문제에 있어서 남북당사자의 입장이 존중되고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대북문제의 정략적 활용의 봉쇄문제가 제기된다. 보수진영과 야당에서 계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정상회담 밀약설(총선을 앞두고), 제2차 정상회담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 등 수 없는 '설'들을 사전에 제기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북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했다고 판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설'들이 대북문제의 진전을 가로막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만약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답방을 해서 정계개편이 이루어지는 것이 한나라당의 차기집권에 큰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에 답방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 타당한 논리인지, 아니면 남북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김정일위원장 답방을 위해 초당적 협력을 기울여서 답방을 성사시키는 것이 타당한 논리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단연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나라당의 보수진영 달래기 차원의 대북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라면 이것은 위험천만 발상이며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라면 민족문제도 중요치 않다는 논리일 수 있다. 이제 대북문제는 곳곳에 숨어있는 지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즉 대북문제가 정치화되고 있으며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권력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상생적 보완관계를 유지할 남한의 정치환경이 조성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향후 남북관계의 변동은 남한의 정치일정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극단의 논리들이 등장할 수 있다.
어차피 이념적 대결은 겪어야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와 사회적 분열은 발생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모든 국가들에서 겪었던 인고의 과정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상황은 너무나 극적이다. 분단이라는 문제에 놓여 있다. 쌍방이 일시에 상대방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악수를 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한의 이념적 대결은 생산적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앞길을 예측할 수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대북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특히 이념을 매개로 대북문제를 통해 권력화를 도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건 공멸의 길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북한이 현재와 같이 내부의 문제와 외부의 요인에 의해 남쪽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남갈등은 남북간의 긴장만을 초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