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6개월] ‘귀막은’ 독주·통제…선진화 내세운 ‘역주행’

2008. 8. 25. 11:42discourse & issue

[이명박 정부 6개월] ‘귀막은’ 독주·통제…선진화 내세운 ‘역주행’
‘촛불’ 강경진압…방통위·YTN 등에 낙하산, 포털은 통제
검·경·감사원·국세청까지 도구화…당청관계는 삐거덕
한겨레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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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6개월(8월25일)을 맞아 24일 낸 자료에서, 지난 기간을 “대내외 어려움 속에서 삶의 선진화를 준비한 6개월”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선진화를 표방하며 과거로 회귀하는 시기였다”고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실제 과정은 김 처장의 진단에 가까운 듯하다. 이 대통령의 지난 6개월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 잘못으로 촉발된 거대한 민심의 ‘촛불’을 맞닥뜨리고, 그 수렁에서 헤어나오려 몸부림친 과정이 거의 전부였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할 만한 갖가지 권위주의적 처방을 선보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은 ‘정권 퇴진’ 요구로까지 치달은 촛불에서 벗어나고자 두 차례나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고, 청와대 참모진 전면 개편과 개각까지 단행하면서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그밖의 행동에서 정부는 정치·사회·언론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였고, 사회 갈등은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심화됐다.

무리한 방송 장악과 인터넷 통제가 대표적이다. 출범 전부터 터진 ‘고소영·강부자’ 인사파동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방송통신위원회, 스카이라이프, 아리랑티브이, 한국방송광고공사, 와이티엔(YTN)에 측근들을 속속 앉혔고, 감사원과 검찰까지 활용해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해임했다. 방송의 촛불시위 보도를 보면서 ‘방송 장악’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는 게 여권의 인식이다. 정부는 또 촛불 초기부터 광우병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를 ‘괴담’으로 치부하고 인터넷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고,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인 네티즌들을 민사소송 사례까지 들이대며 구속해버렸다.

촛불 돌파 과정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는 ‘법치’라는 이름으로 위축됐고, 검찰·경찰·감사원·국세청 등 권력기관은 정치적 도구화됐다. 경찰은 촛불시위 강경진압에 이어 여성 연행자에게 속옷 탈의까지 강요했다.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내쫓는 데 감사원과 검찰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통일되게 움직였다. 검찰은 전담팀까지 꾸려 문화방송 광우병편 관련 수사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촛불로 어려워지자 종전의 ‘탈여의도’ 대신에, 한나라당에 손을 내밀었다. ‘화합’을 내걸어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고, ‘친박’ 복당도 허용함으로써 나름의 여권 정비에 성공했다. 그러나 장관 인사청문특위를 구성하려 한 여야 원구성 합의를 청와대가 뒤집고 나선 사례는, 청와대에 의한 국회 무시 행태가 되살아났다는 지적을 낳았다. 각종 정책 추진에서도 청와대가 주도하고 여당이 뒤늦게 끌려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촛불 사과 때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행동은 그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촛불은 이 대통령에게 ‘앞만 보고 내 갈 길을 간다’는 교훈을 안긴 듯도 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이 대통령은 ‘촛불’이라는 정부 대 국민의 대치 구도에서 ‘법치’를 내세워 언론 독립성 훼손 등 강경몰이로 보수결집과 권위주의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단기적 효과에 그칠 그런 처방보다는 시민사회와 활발한 소통을 통한 사회통합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소통 없는 ‘CEO 리더십’에 국정 우왕좌왕
MB 리더십 문제는
한겨레 권태호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일찍부터 ‘최고경영자(CEO)형 리더십’을 표방했다.

이 대통령의 ‘시이오 리더십’이란, 국정 운영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나라를 ‘통치’하는 게 아니라, ‘경영’하려 한다”고 자주 말해왔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은 집권초 ‘전봇대 뽑기’, ‘경찰서 방문’, ‘직접 커피 타기’, ‘얼리 버드’ 등의 나름대로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이를 청와대는 실용, 현장 중시, 탈권위, 부지런함 등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분초 단위로 보고하라”는 식의 과도한 속도감과 재벌 그룹에서 요구되는 일사분란한 효율성에 치중한 70년대식 ‘시이오 리더십’의 부작용은 곧바로 나타났다. 방법론에 가까운 ‘실용주의’를 국정 기조로 채택한데다, 속도·효율성만을 강조한 탓에 정부 전체가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방향성 없이 우왕좌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쇠고기 수입 협상’이 대표적인 예다.

무엇보다 물리적 성과에만 집착한 탓에 ‘과정’과 ‘합의’를 중요시하는 ‘정치’ 영역을 무시했다는 것이 ‘시이오 리더십’의 가장 큰 문제였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학자 시절인 지난 1994년 쓴 책 <대통령의 경제리더십>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 자체를 국가발전을 위해 쓸모없는, 심지어는 해로운 것으로 간주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대통령의 ‘시이오 리더십’과 묘하게 겹치는 느낌이다.

청와대에서 이제 ‘시이오 리더십’을 주창하는 이는 더이상 없다. 대신에 새로운 화두로 ‘섬김’, ‘소통’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실제 행동을 ‘섬김의 리더십’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법치’, ‘힘있는 국정 운영’이 걸맞는다. 참모들의 홍보논리와 별개로, 이 대통령은 여전히 ‘불도저식 리더십’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함성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 대통령의 시이오 리더십은 스피드, 효율성, 일방향의 옛날 시이오 리더십으로, ‘박정희식 리더십’”이라며 “대사회적 관계, 쌍방향 소통, 아량과 타협,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요즘의 ‘시이오 리더십’과는 달라, 시대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함 교수는 향후 이 대통령의 리더십 전망에 대해 “이 대통령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 문제점을 파악하면 빨리 고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민생 대책 등) ‘스몰 윈’(Small win)을 계속 이뤄내야 지금의 리더십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데, 최근 흐름을 보면 여전히 ‘빅 프로젝트’를 통한 ‘빅 윈’(Big win)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올림픽 특수’ 지지율 30%대…경기회복 기대감 낮아 추락할 수도
MB 국정주도권 회복 전망은
한겨레 이유주현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주도권을 회복하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굵직한 ‘이명박 브랜드 국정과제’들을 취임 6개월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정주도권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는 국정지지율은 최근 회복세가 뚜렷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이하 한사연)의 지난 19일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24.8%로 지난 12일 23.4%보다 1.4%포인트 상승했다. 이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이르는 다른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도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 수치들은 조사시점의 특수성 때문에 향후 전망까지 말해주기 어려운 편이다. ‘올림픽 열기’가 정부여당 프리미엄으로 작용한다는 점에는 전문가들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향후 전망에도 기대감을 표시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지지율 회복은 이탈했던 지지층들이 법치에 기반한 국정운영에 지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앞으로 추진할 민생정책의 효과가 국민들의 피부에 닿게 되면 지지율은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식 의원도 “단순히 올림픽특수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제 고비는 넘겼고 전환점이 마련된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전망도 존재한다. 한사연 조사에서 ‘정부가 민생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기대된다’고 답한 응답자는 38.7%에 불과했다. 이 대통령이 내년말 경제가 회복된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37.9%만이 공감했다. 부동산 규제완화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은 44%로 찬성 34%보다 높았다. 청와대가 내세우는 국정과제들에 대해 만만찮은 우려가 드러난 것이다. 한귀영 한사연 연구실장은 “이 대통령의 강력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 기대감도 낮다”며 “이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을 표방하면서 당선된 것을 상기하면 정책에 대한 기대감은 지난 6개월을 거치면서 급격히 저하됐을 뿐 아니라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88올림픽 때 청와대의 고위직을 맡았던 한 정치인도 “당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 정권이 안정될 것으로 봤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지금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 인사 정책 등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지지율은 오히려 연말에 최악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빠듯해진 살림, 아파도 병원 안가
‘MB 노믹스’ 아래 서민경제 어떻게 달라졌나
2분기 의료비 지출 7%↓…담배·전화통화도 줄여
한겨레 정남구 기자
» 가계 보건의료 서비스 지출 추이
대외 환경 탓에서 비롯된 바 크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속돼온 고물가, 고금리의 여파로 저속득층 가계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름값과 교육비는 큰 폭으로 뛰는 반면, 소득은 그다지 늘지 않는 한계적 상황에 이르자 병원행마저 삼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돼 씁쓸함을 더한다.

24일<한겨레>가 통계청의 가계수지 동향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가계는 올 2분기에 보건의료비로 월평균 11만3617원을 지출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나 줄였다. 보건의료비 가운데 가장 큰 항목인 보건의료 서비스(병원 외래 및 입원 진료비 등) 지출은 지난해보다 11%나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구주가 질병 등으로 의료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무직자 가구의 의료비 지출은 2분기에 23%나 줄어들었다. 소득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근로자가구의 의료서비스 지출도 2.1% 증가에 그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보건의료 서비스 지출은 지난 1분기에도 전년동기대비 0.8% 증가에 머문 바 있다. 살림을 꾸려가는 게 어려우니 ‘아파도 참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담배값이나 전화비 지출도 줄어들고 있는 것 또한 서민층의 형편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가계의 2분기 월평균 담배값 지출액은 2만194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2% 감소했다. 통신비 지출은 0.9% 줄었는데, 주로 통신요금의 인하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교양·오락비는 1분기에는 전년동기대비 7.7% 늘었다가 2분기 들어 0.3% 감소로 돌아섰다. 2분기 의류·신발에 대한 지출은 3.2% 증가해 전체 소비지출 증가율(4.6%)를 밑돌았다. 물가 급등, 소득 정체에 펀드나 부동산 같은 자산 가치마저 추락하면서 기댈 언덕이 없어짐에 따라 한 푼이라도 씀씀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는 서민 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기름값보다 교육비에 허리 더 휘청




» 가구주가 40대인 가구의 교육비 지출
물가 급등으로 어려워진 살림살이에도 사교육비를 중심으로 한 가계의 교육비 지출은 급증세를 이어가며 서민층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교육비 부담을 집중적으로 떠안고 있는 40대가 가장인 가구의 경우 부담이 크게 늘고 있다.

24일 <한겨레>가 통계청의 가계수지 동향 자료를 분석한 결과, 40대가 가장인 가구는 올해 상반기에 월 평균 362만5천원의 소득을 거둬, 지난해보다 월 소득이 17만7천원(5.1%) 늘었다.

이 가운데 조세 및 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에 쓰인 3만7천원 가량을 빼면, 가처분 소득은 14만235원 늘어났다. 늘어난 가처분 소득으로 교육비에 추가 지출한 돈은 4만7585원이었다. 가처분 소득 증가분의 3분의 1 이상(34%)을 교육비로 추가 지출한 셈이다. 식료품비로는 소득 증가액의 22%(3만301원), 교통비로 18%(2만5179원)를 썼다.

가구당 평균 교육비 지출 규모는 51만5460원으로 지난해(46만8천원)보다 10.17%나 증가했다. 교육비 가운데 납입금의 증가율이 13.7%에 이르렀고, 비중이 가장 큰 보충교육비는 9% 늘었다. 이들 가구의 교육비 지출액은 전체 소비지출의 무려 20%를 차지한다. 새 정부 들어서도 사교육비 부담은 확대 일로를 걸어온 셈이다.

교통비로 쓴 돈은 월평균 28만9천원으로 지난해보다 9.5% 늘었다. 교육비가 교통비보다 지출 증가율이 더 큰 것은 가계가 연료가격 상승에 맞춰 개인교통 이용을 줄였으나, 교육물가가 뛰는 상황에서도 교육에는 더 적극적으로 나선 탓으로 보인다. 상반기에 기름값이 폭등했으나, 교육비가 교통비보다 훨씬 큰 부담이었던 셈이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자료를 보면, 교육 물가는 지난 6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5.5%, 휘발유값은 22.8% 올랐다. 온라인교육사이트 등의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교육비는 가장 나중에 줄일 항목으로 꼽혀 가계의 교육비 부담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정남구 기자

환율·물가 ‘헛발질’…부동산 투기는 ‘부채질’
[이명박 정부 출범 6개월]
‘타이밍’ 거스른 운용…성장·일자리·경상수지 낙제
시장 자율-개발시대 방식 ‘오락가락’ 시장신뢰 잃어
한겨레 김병수 기자
» 코스피 지수 추이
‘성장, 일자리 만들기, 물가, 경상수지 등 어느 것 하나 나아진 게 없다.’ 이명박 정부 출범 6개월간 경제 성적표를 두고 나오는 평가다. 정부 출범 초기 6%로 잡았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4.7% 안팎으로 낮춰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 수준까지 치솟았다.

경상수지 적자액은 올들어 벌써 70억달러를 넘어섰다. ‘연간 35만개 일자리 창출’을 호언했으나 그 목표는 20만개로 줄였다. 투자도 부진하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총고정자본의 전년동기 대비 실질 증가율은 올 상반기 중 0.5%로 2001년의 마이너스 3.6% 이후 가장 낮다. 거기다가 2분기 가계수지동향을 보면 가계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소득격차는 더 커지는 양상이다.

정부로선, 세계 경제환경이 워낙 나빴고 다른 나라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냐고 항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외 환경이 악화해도 대응능력에 따라 충격이 크게 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 6개월은 국민한테 큰 실망을 안겨줬다. 상황을 잘못 판단했고 경제정책은 우왕좌왕했다. 대외 여건과 동떨어진 성장 목표를 잡았다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충격을 키웠다는 게 지배적 평가다. 지난 7월에 들어서야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대폭 수정해 성장에서 물가와 민생안정으로 고쳐 잡았지만 믿음을 주진 못하고 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타이밍’을 거스른 경제운용이 실패의 큰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엉뚱하게 원-달러 환율을 올리더니, 정작 환율 상승 압력이 있을 때는 억지로 낮추려 한 게 대표적이다. 금리도 진작 올렸어야 했는데 정부는 인하하는 쪽으로 압박을 했다.

» 소비자물가 상승률

경제운용 방식도 문제였다. 시장원리와 시장 자율을 내세우면서도 현안이 떨어지면 곧 ‘개발시대 방식’이 돌출했다. 정부 출범 초기 환율정책과 물가정책이 그랬다. 지금도 그런 모습은 여전하다. 추석물가 안정을 위해 장관들한테 시장에 나가 점검하라는 건 ‘흘러간 레코드’를 다시 트는 격이다. 여권 일각이 재벌 총수들한테 ‘사면해줬는데 왜 투자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모습은 30여 년 전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경제전문가들은 뚜렷한 경제철학이 없고, 정부 안에 조급한 성과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탓이라고 진단한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건 경제 앞날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인데, 이런 정부의 모습은 되레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정부는 그간은 ‘워밍업’(준비운동) 기간이었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경제살리기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워밍업 시간이 길었고 체력 소모가 너무 컸다. 앞으로도 미덥지 않다. 그간의 미숙한 정책운용이 낳은 시장의 신뢰 상실부터가 넘어야 할 벽이다. 게다가 기껏 먼저 내놓은 게 부동산 경기를 부추겨 경제에 활력을 넣어보겠다는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다. 과거 수없이 부작용을 낳았던 대증적 경기요법이다.

유종일 교수는 “가계부채, 단기외채, 중소기업 채무 등 악재들이 쌓여있는 상황”이라며 “새출발한다는 생각 아래 방향을 잡고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경제불안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는 “지금이라도 비전을 세워야, 적어도 정책 운용이 오락가락하는 일은 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병수 선임기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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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8-08-25